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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베룰루스코니의 ‘포퓰리즘 유산’…글로벌 경제 흔들 시한폭탄

장기 집권하며 과도한 복지지출 … 초고령화 따른 저성장, 높은 국가부채비율 등 구조적 위험
이탈리아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이 연정 총리로 내세운 법학자 주세페 콘테(오른쪽)가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와 악수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이 연정 총리로 내세운 법학자 주세페 콘테(오른쪽)가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와 악수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였다. 국가 재정의 부실과 정치적 불안이 유로존 또는 유럽연합(EU) 체제를 위협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유럽의 변방 그리스의 재정 부실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었고, 유럽연합의 중심이었던 영국도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선택하면서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 이후 오랜만에 평온한 시간이 이어지다가 올 들어 이탈리아가 다시 불안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발단은 이탈리아 총선이었다. 지난 3월에 열린 이탈리아 총선에서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이 33%를 득표하면서 제1당으로 등극했다. 오성운동은 이념적으로 재단하기 힘든 정당이다. 오성운동은 이탈리아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베페 그릴로가 중심이 돼 2009년에 출범했는데, 오성(五星)운동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은 ‘공공 수도’ ‘인터넷 접속 권리’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 ‘지속 가능한 개발’ ‘생태주의’를 나타낸다. EU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복지지출 확대를 지향하고 있다. 다분히 범좌파 정당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독일의 녹색당처럼 진보진영으로 묶이지는 않는다.
 
정치적 불안에서 위기 싹터
아무튼 이단아 오성운동이 이탈리아 의회의 다수당이 됐지만 득표율은 50%에 한참 못 미쳐 다른 정파와의 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하게 됐다. 오성운동이 택한 연정 파트너는 극우동맹(우파정당들의 연합체)이었다. 극우동맹은 일반적인 유럽 우파의 색채를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시장의 자율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또한 이민자들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등과 같은 유럽 극우 정당들과 매우 비슷하다.
 
오성운동과 극우동맹의 지향점들을 조합해 보면 이렇다. 정치적으로 유럽연합 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복지지출 확대라는 좌파의 전형적 주장과 감세라는 우파의 전형적 주장이 우스꽝스럽게 결합된다. 시장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재차 이탈리아의 EU 탈퇴 논의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보다 먼 미래에 대한 우려와 이탈리아 정부의 재정 악화라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우려를 자산가격에 반영했다.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은 급등했고, 올 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던 유럽 주요국 증시들도 급조정을 받았다.
 
이탈리아발 불안은 6월 들어 진정됐다. 오성운동과 극우동맹 연정이 지명했던 파올리 사보나의 경제장관 취임이 철회됐기 때문이다. 경제 관료였던 사보나는 “유로존 가입은 큰 실수”라며 노골적으로 EU에 적대감을 표시해온 인물이다.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의회 다수당이 정부 조각권을 갖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대통령도 의회에서 선출한다. 그렇지만 의회에 쏠린 과도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은 장관에 대한 승인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의회가 행정부보다 힘이 센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없어 정파 간 합의를 통한 연립정부 구성이 빈번한 이탈리아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각료 비토 권한이 실질적 힘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다. 친EU 성향인 마타렐라 대통령은 “국민과 해외 투자자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제장관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주식과 채권시장도 큰 동요를 나타냈기 때문에 오성운동-극우동맹 연정도 사보나의 경제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게 부담스러워졌고, 결국 이를 철회했다.경제장관 자리에 지오반니 트리아를 재지명했다. 로마 토르베르가타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인 트리아는 EU의 경제 관여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사보나처럼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 인물이다. 사보나에게는 경제장관이 아닌 EU담당 장관을 맡길 계획이다. 경제장관 자리에 지오반니 트리아를 재지명했다. 로마 토르베르가타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인 트리아는 EU의 경제 관여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사보나처럼 이탈리아의 EU 탈퇴를 주장하는 강경파는 아니다. 사보나에게는 경제장관이 아닌 EU 담당장관직이 돌아갔다.
 
이탈리아 재정수지, GDP 성장률 회복세
사보나의 경제장관 임명이 철회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정을 찾고 있다. 합리적 반응이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최근에 벌어진 정도의 정치 불안정이 시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가능성은 작았다. 유로존 경제 전반이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이탈리아 경제 상황도 수년 전보다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5%를 기록하면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경제는 2012년에 -2.8%의 역성장을 기록한 이후 완만하지만 개선되고 있다.
 
경제가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정부의 재정수지도 개선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재정수지는 2009년에 -5%대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적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2.3% 수준까지 개선됐다. 재정수지가 적자이기는 하지만 유로존의 권고 수준인 -3% 이내까지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GDP 대비 정부부채가 130%대로 아직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라 살림살이가 개선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평가 받아야 한다.
 
이탈리아가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의 재정부실 국가 그룹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 묶여있던 2011~12년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7%를 넘기도 했다. 이탈리아 국채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정부의 원리금 미상환 가능성을 우려해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비하면 현재 이탈리아 장기 금리는 3%를 오가는 수준이다. 저점에서는 적지 않게 올랐지만 이탈리아의 국채 상환 능력에 대한 본질적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탈리아 사태는 단기적으로는 해결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탈리아 문제는 언젠가는 다시 리스크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서유럽 사회가 직면해 있는 여러 모순이 모두 중첩돼 있는 대표적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고령화와 지역간 불균형, 경제적으로는 저성장과 과도한 정부부채, 정치적으로는 뚜렷한 포퓰리즘적 경향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사회가 직면한 모순 중첩된 대표적 국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이탈리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의 본질적 기원을 꼽자면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1%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이 비율은 일본·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특단의 해법이 없는 한 사회가 늙어버리면 저성장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경제 성장은 요소 투입량과 생산성의 함수이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극적으로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이 감소하면 성장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성장률이 떨어지더라도 은퇴 세대에 대한 지원을 소흘히 할 수는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적자생존에 가까운 정글 자본주의에 가깝지만, 유럽식 자본주의는 국가가 구성원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국가 모델에 가깝다. 이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재성장률은 1% 내외로 하락했는데, 고령화의 진전으로 복지지출은 오히려 늘어나니 국가부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GDP 대비 130%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비율은 일본과 그리스에 이어 세계 3위이다.
 
대체로 65세 이상 인구비율과 국가부채 비율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 정도가 다소 예외(고령화 비율 세계 2위, 국가 부채비율 10위)이지만, 독일은 나름의 특수한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통화 증발에 따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트라우마로 인해 재정 규율을 엄격히 지킨 측면도 있지만 유로존 출범에 따른 수혜가 독일 경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유로화 도입의 최대 수혜국가이다. 독일처럼 수출 제조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안정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곤 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 자국 통화가치 절상의 압박을 받는데, 독일이 유로화 출범 이전처럼 마르크화를 썼다면 그 가치가 엄청나게 절상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일은 유로존 공동의 유로화를 쓰다 보니 자국의 펀더멘털 개선만큼 유로화 가치가 상승하지 않는다. 유로화 가치는 독일처럼 경제를 잘 운용하고 있는 국가뿐만 아니라 그리스처럼 형편이 나쁜 국가의 펀더멘털까지 반영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독일은 유로화 도입 수혜로 성장률을 일정 수준 방어할 수 있었고, 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정수지 유지로 이어졌다.
 
독일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탈리아는 고령화에 따른 성장률 둔화와 복지지출 확대에 따른 국가부채 증가라는 ‘늙은 국가’들이 걷는 보편적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너무 남용되고 있지만, 이탈리아 정치야말로 포퓰리즘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과 관련해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문제적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이후 가톨릭과 미국의 비호를 받은 기독민주당(기민당)이 장기 집권해왔다. 기민당은 1992년까지 다수당의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1992년은 소련의 해체로 동서냉전이 종식된 바로 다음해였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주도한 ‘보수혁명’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위력을 떨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권력은 이념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
 
삶의 규범으로서 종교(가톨릭)가 가지는 힘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나타난 동서 이념 대결의 종식은 기민당의 존립 기반을 흔들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였다. 베룰루스코니는 1971년 케이블 TV회사인 텔레밀라노를 세웠는데, 방송사라고는 공영방송 라이(RAI) 하나 밖에 없었던 미디어 환경에서 선정적인 콘텐트를 매개로 방송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80년대 후반에는 이탈리아 민영 3대 방송사를 모두 장악하는 미디어 재벌로 성장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축구팀 AC밀란을 인수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집중 투자로 AC밀란은 전통의 강자인 유벤투스와 더불어 이탈리아 축구계를 선도하는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았다. AC밀란의 응원구호였던 ‘전진하라! 밀란(Forza! Milan)’은 홈구장이었던 산 시로에 울려퍼졌고, 1990년대 초 유럽 축구의 변방에 있었던 이탈리아의 세리에A는 일약 유럽의 톱리그로 도약했다.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도 군사정권이 이른바 ‘3S(Sports, Screen, Sex)정책’을 통해 대중을 우민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베를루스코니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AC밀란의 인기를 등에 업고 베를루스코니는 ‘전진 이탈리아당(Forza Italia)’을 창당했다. 정당 이름은 AC밀란의 응원구호를 노골적으로 차용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이후 세 차례나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고, 총리 재임기간은 9년 4개월이나 됐다. 그는 2011년 미성년자와의 매춘 혐의로 총리직에서 실각했는데, 정치적 영향력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번 이탈리아 연정의 한 축인 극우 연합에도 베를루스코니의 입김이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베를루스코니가 미디어와 스포츠를 통한 상징조작 외에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은퇴자들을 위한 연금지급액 인상이었다. 여기에 세금 감면까지 내걸었으니 장기간 지속 가능한 정책의 조합은 아니었다. 베를루스코니가 뿌려 놓은 포퓰리즘의 유산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늙은 선진국들의 재정 문제는 글로벌 경제 뇌관
한편 이탈리아의 지역 불균형도 포퓰리즘의 고착화에 기여했다. 섬유산업이 발달한 밀라노와 피아트 자동차 공장이 있는 토리노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북부는 매우 부유하다. 그렇지만 나폴리와 팔레르모 등이 속한 이탈리아 남부는 척박한 토지와 마피아의 본산이라는 오명이 있을 뿐 뚜렷한 산업적 기반은 없다. 가난한 이탈리아 남부는 포퓰리즘의 온상이다.
 
먹고 사는 일이 극단적으로 힘든 사회는 오히려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이민을 많이 보낸 나라이다. 20세기 초 신대륙으로의 이주 러쉬는 미국 내 이탈리아계 소사이어티를 만들었고, ‘엄마 찾아 3만리’의 배경이 된 아르헨티나 역시 이탈리아인들의 대거 이주한 곳이다. 2차 대전 이후에도 독일과 스위스 등 중부 유럽으로 많은 이탈리아인이 떠났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이탈리아 남부 출신들이었다. 1950년대 스위스에서는 시내공원에 ‘개와 이탈리아인은 출입금지’라는 모욕적인 문구가 붙어있기도 했다는데, 이런 이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정당이 최근 연정의 한 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동체는 고령화됐고, 이를 타개해야 할 정치적 리더쉽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총선 이후 이탈리아 집권 연정의 구성 정당들이 내놓은 공약에는 베를루스코니의 유산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재정 문제는 글로벌 경제의 호황기에는 봉합되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늙은 선진국의 재정 문제는 글로벌 경제의 불안을 부를 뇌관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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