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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서 수많은 말보다 상대를 두렵게 만드는 침묵

기자
류재언 사진 류재언
[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20)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제4차 회의에서 미국 측 티모시 베츠(오른쪽 두 번째) 한미방위비협상대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제4차 회의에서 미국 측 티모시 베츠(오른쪽 두 번째) 한미방위비협상대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우리는 성공적인 협상을 꿈꾼다. 하지만 노련한 상대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교묘하게 나를 흔들고 압박해 온다. 협상 테이블에서 노련한 상대방이 당신을 공략하기 위해 활용하는 10가지 협상 전략과 대응전략을 정리했다.


1. 강력한 첫 제안으로 기준점 선점하는 전략 
노련한 상대방은 강력한 첫 제안으로 기준점을 선점해 당신을 묶어두려고 할 것이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노리는 것인데, 앵커링 효과는 알면서도 당할 정도로 협상 테이블에서 강력한 임팩트를 준다.
 
이 경우 일단 상대방의 첫 제안을 허물어라. 상대방이 제시한 첫 제안의 근거를 물어보고, 이를 통해 반박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본다. 이와 함께 상대방의 첫 제안을 무너뜨릴 수 있는 다른 기준점을 제시해 앵커링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2. 협상 쟁점과 관계없는 인신공격
“제가 듣기로 협상 테이블에서 흥분 잘하기로 업계에서 유명하시던데, 오늘도 역시 그러시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제안과 무례한 태도로 자극한 건 상대방인데,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게 된다. 상대방은 협상의 쟁점과 별 상관없는 인신공격을 통해, 우리의 언행을 극도로 얼어붙게 한다. 노련한 협상 상대방이 즐겨 쓰는 협상 스킬이다.
 
이 경우 협상 쟁점과 신상의 문제를 명확히 분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상대방의 인신공격을 받아넘긴 뒤 곧바로 중요한 쟁점을 되묻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긴장시키는 것이 좋다.
“협상 쟁점 흐리지 마시고, 제가 여쭤본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부터 밝혀주시죠.”


3. 본인은 아무 결정권 없다는 전략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가장 즐겨 쓰는 대응 방식이다.
“이 부분은 저희 대표님과 상의를 해보고 나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상대방은 특정 쟁점에 대해 본인의 결정권이 없다고 이야기하거나, 의사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한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답변하기 힘든 이슈에 대해 즉답을 피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대방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해당 쟁점에 대해 귀사의 의사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밝혀주시고, 의사 결정권자와 상의 후에 귀사의 입장을 일주일 후에 있을 협상 테이블에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본인은 아무 결정권이 없다고 말하는 전략은 가장 많이 쓰인다. [사진 pixabay]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본인은 아무 결정권이 없다고 말하는 전략은 가장 많이 쓰인다. [사진 pixabay]



4. 요구를 계속해 목표 관철하는 물량 공세 전략
상대방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본인의 요구 사항을 이야기한다. 처음에 한두 번은 상대방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요구사항을 이야기한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은 거절했지만, 양사의 관계를 언급하며 또다시 요구사항을 이어간다. 계속해 거절하기도 미안해 결국 상대의 요구사항 중 상당 부분을 들어주게 된다.
 
물량 공세 전략이다. 생각지 못한 갖가지 요구사항을 잔뜩 준비해놓고, 우호적인 태도로 요청해 상대방이 계속 거절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게 한 후, 그중에 일부를 관철하는 전략이다.
 
노련한 상대방의 물량 공세 전략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양보하는 대가로 상대방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물어봄으로써 물량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만약 귀사가 제안하는 요구사항을 수용한다면 저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야 다 들어주고 싶지만, 저도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고 얻어 가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하면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릅니다. 제 입장도 좀 고려해주세요.”


5. ‘굿캅 배드캅’ 전략
협상할 때 노련한 상대방은 팀을 구성해 접근한다. 내부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인지한 팀은 협상 테이블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팀 전략이 바로 ‘굿캅 배드캅(Good Cop Bad Cop)’ 전략이다.
 
입을 굳게 다문 피의자에게 험상궂게 생긴 형사(배드캅 역할)가 큰소리를 치며 몰아붙인다. 피의자는 당황해 잔뜩 움츠러든다. 수 시간 동안 계속되는 강도 높은 경찰 조사에 피의자가 지쳐갈 무렵 지켜보던 수사과장(굿캅 역할)이 형사에게 “야야, 적당히 해라. 뭘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해?” 그러고는 담배 한 개비를 들고 피의자 쪽으로 가서 조용히 이야길 건넨다. “많이 힘들지?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자.”
 
팀 내에서 둘 중 한 명은 배드캅 역할을 맡아 강경하게 상대방을 압박하고 상대의 제안에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반대로 굿캅 역할을 맡은 자는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우호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한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이러한 협상 전략은 빈번하게 활용된다. 심지어 혼자 협상 테이블에 나가더라도 가상의 배드캅을 상정해 이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나(굿캅)도 웬만하면 이 정도에서 사인하고 싶은데, 외국계 기업에 있다가 올 초에 우리 회사로 온 이 전무(배드캅)가 보통 깐깐한 사람이 아니야. 얼마나 쪼아대는지 우리도 진짜 죽을 맛이야.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하는데 가격을 2%만 더 조정해줄 수 없을까?”
 
상대방이 굿캅 배드캅 전략을 활용할 경우에는 언제나 굿캅을 조심해야 한다. 결국 최종적인 거래를 이끄는 것은 굿캅이고 배드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굿캅 배드캅 전략을 활용할 경우에는 언제나 굿캅을 조심해라. 최종적인 거래를 이끄는 것은 굿캅이고 배드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 pakutaso]

굿캅 배드캅 전략을 활용할 경우에는 언제나 굿캅을 조심해라. 최종적인 거래를 이끄는 것은 굿캅이고 배드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 pakutaso]



6. 부풀리고, 과장하고, 거짓말하는 전략
상대가 특정 사실을 과장하고, 심지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특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실이나 정보를 협상 테이블에서 언급하는 경우 해당 정보가 맞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당황하게 된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이야기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하신 적 없는 정보네요. 이 자리에서 정확한 정보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니, 시간을 갖고 검증한 후 저희 의견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위약금 조항을 활용해 상대방이 제시하는 정보가 거짓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말씀하신 사실에 대해 확신하신다면 아래와 같은 위약금 조항을 명시하고 싶습니다.”
‘A가 제공한 정보가 사실이 아니어서 B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A는 B에게 위약금 ___원을 지불한다.’


7. 매몰 비용 강조해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
왠지 모르게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점점 상대방에게 끌려가고 있을 때 노련한 상대방은 이때까지 협상을 위해 투입한 시간과 비용, 즉 매몰 비용(Sunk Cost)이 많이 든다는 점을 강조해 협상을 이렇게 끝내는 것이 어리석음을 강조한다.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원하지 않는 거래를 시작하게 되면 앞으로 추가적인 손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이후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정확한 상황분석과 냉정한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8. 배수진 치고 양자택일 제안하는 전략
밀고 당기기를 수차례, 협상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네. 내 제안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이번 협상은 그냥 없었던 거로 하자고.”
 
역시 협상의 고수다.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고 난 뒤 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겨버린다.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상대를 압박할 때 종종 활용되는 ‘양자택일 전략(Take-it-or-leave-it-offer)’이다. 이의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응 전략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① 해당 이슈에 대해 즉답을 피하고 시간을 확보한다. 해당 이슈 이외의 다른 사안을 먼저 논의한다.
② 이제까지 협의가 이뤄진 부분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중간 합의서를 체결해둔다. 한두 가지 이슈 때문에 협상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③ 강력한 배트나를 준비해서 맞불 작전을 펼치며 상대방을 압박한다.


상황에 따라 침묵은 수많은 문장보다 훨씬 더 상대방을 두렵게 만든다. [사진 Freepik]

상황에 따라 침묵은 수많은 문장보다 훨씬 더 상대방을 두렵게 만든다. [사진 Freepik]



9. 협상 절대 고수의 전략, ‘침묵’
협상 테이블에서 절대 고수들이 쓰는 전략 중 하나는 바로 ‘침묵’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했을 때,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다투지 않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면 상대방은 스스로 움찔하며 별생각이 다 들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지? 협상하기 싫다는 건가? 내가 너무 과했나?’
이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은 자신의 제안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일부 양보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 침묵은 수많은 문장보다 훨씬 더 상대방을 두렵게 만든다.


10. 합의 직전, 거절하기 모호한 요구 ‘니블링 전략’
마지막 10분을 조심하라. 계약 체결 직전, 노련한 상대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길 꺼낸다. “깜빡하고 언급할 타이밍을 놓쳤는데, 이거 하나만 계약서 특약사항에 적어둡시다.”
 
협상을 결렬시킬 정도의 딜 브레이커는 아니지만 충분히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요구사항이다. 협상 마지막 단계, 이 시점에서 분위기상 ‘노(No)’라고 말하기도 모호해 뭔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얼떨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협상 고수가 즐겨 사용하는 ‘니블링’ 전략이다. 야금야금 갉아먹는다는 뜻인 니블(Nibble)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상대방이 협상에 들인 매몰 비용이 아까워 거절하기 쉽지 않은 수준의 요구사항을 협상 타결 직전에 요구해 관철하는 전략이다.
 
이런 니블링 전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경우 ‘역니블링 전략(Counter Nibbling Tactics)’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협상 과정에서 관철되지 않은 우리 측 요구사항을 미리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마침 저희도 요구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측 요구사항을 반영해주시면 귀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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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