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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출신 70% 재취업 후 1년 안에 그만둬…왜 그럴까?

기자
박영재 사진 박영재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23)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생산관리업무를 했던 김영식(54) 씨는 5년 전인 49세 때 부장으로 명예퇴직했다. 아직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어서 뭐든 해야만 했지만, 이력서를 넣으면 소식이 없었다. 그나마 연락이 오는 것은 전에 있던 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새롭게 개척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재취업보다는 창업을 선택했다. 시장조사를 해 보니 PC방은 경쟁이 치열해 새롭게 뜨고 있는 멀티방에 관심이 갔다. 멀티방은 노래방·PC방·DVD방·카페가 합쳐진 개념인데 대학생 등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았다. 퇴직금에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합쳐 멀티방을 오픈했다.
 
퇴직금 털어 개업한 멀티방 2년만에 접어  
재취업보다는 창업을 선택했지만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쳐 오픈한 멀티방은 2년만에 폐업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재취업보다는 창업을 선택했지만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쳐 오픈한 멀티방은 2년만에 폐업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처음에는 손님이 대기표를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근방에 비슷한 컨셉의 멀티방 6개가 새로 오픈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자 결국은 2년 만에 폐업했다. 2년 동안 고생하면서 멀티방을 운영했는데 결국 퇴직금만 날리게 됐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날 우연히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내온 이야기를 하다 생산을 책임질 수 있는 관리자를 찾고 있다는 직원 10여명 정도의 중소기업을 소개받아 결국 재취업했다.
 
막상 출근하고 보니 기업 규모도 너무 작았고, 또 직원들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 김 씨를 왕따시키는 분위기였다. 업무도 말이 좋아 생산관리지 총무업무에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까지 해야 했다. 게다가 회사 오너인 사장도 이것저것 사람을 떠보는 것 같은 행동으로 김 씨를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문득 군 시절이 생각났다. 김 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뒤늦게 사병으로 입대했다. 당시 젊은 선임들에게 많은 설움을 받아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때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했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찾아서 했다.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동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사장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장도 김 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고, 동료들도 점점 마음을 열었다.
 
이때 김 씨는 개선이 필요한 업무 등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이에 따라 업무 효율이 높아지면서 경영성과가 좋아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지금 김 씨는 이 회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 회사 규모도 입사 당시보다 몇 배로 커졌다. 물론 사장도 김 씨를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50대에 재취업한 기업은 대개 퇴직 전 근무하던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중장년 전문인력 채용박람회'를 찾은 중장년들이 취업 상담과 면접을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김동호 기자

서울 강남구 코엑스 '중장년 전문인력 채용박람회'를 찾은 중장년들이 취업 상담과 면접을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김동호 기자

 
2000년 초반부터 재직자에 대한 체계적인 전직지원 서비스를 운영한 국내 기업은 대상 직원 절반 이상이 재취업을 했고, 그중 상당수가 협력업체로 갔다.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를 전적출향(고용 관계를 청산하고 자회사나 관련 회사로 이동하는 경우)이라고 하는데, 이 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기업에서 가진 기술이나 노하우를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에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취업에 성공한 직원의 정착률을 조사했더니 1년 만에 70%가 넘는 사람이 적응에 실패해 퇴사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퇴사 이유를 살펴보니 급여가 짜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주로 조직 문화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크건 작건 창업을 하고 일정 규모 이상으로 기업을 성장시킨 중소기업 오너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중소기업 오너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냉철함과 열정으로 극복한 오뚝이 같은 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중소기업으로 입사하면 많은 혼란을 겪는다. 무엇보다도 업무 수행과 관련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일 처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총무 부서에서는 규정집조차 없고, 회사의 중요한 정책이 오너와 친동생인 재무부장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농담처럼 한 이야기를 토대로 그 자리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직원 수도 많지 않은 작은 조직인데도 ‘누구 라인’하면서 서로가 배척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오너가 은근히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입사 초기 몇 개월은 오너에게 충성해야 
아마도 재취업 초기엔 ‘뭐 이런 엉망인 조직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 한다. 내 역할은 이런 열악한 조직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균형감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오너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오너 입장에서도 관리자급을 채용할 때에는 일반 직원보다 오랜 기간 심사숙고하게 되고, 또 그만큼 기대하는 바도 크다. 단순한 관리자의 모습보다는 회사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 내의 사정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오너와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이러한 어려움은 있지만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은 업무 강도가 약하고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또 승진에 대한 부담이나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직원들 상호 관계가 순수한 면도 나타난다. 개인에 따라서는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오너와의 관계에 따라서는 정년 이상을 근무할 기회도 주어지는 장점이 있다.
 

중장년 인재가 기여한 분야. [그래픽 박영재, 자료 2016년 중소·중견기업 채용계획 및 중장년 채용인식 실태조사]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와 사람인에서 공동으로 조사한 ‘2016년 중소·중견기업 채용계획 및 중장년 채용인식 실태조사’에서 중장년을 채용한 기업의 69%가 경영성과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중장년 인재가 기여한 분야는 ‘경험과 노하우 전수로 직원의 업무능력 강화’가 40.7%로 가장 높게 나왔고 ‘업무충성심과 높은 성실도로 분위기 쇄신’이 24.9%로 다음을 이었다. 중소기업에서는 대기업 출신의 경험과 경륜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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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