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위안부 할머니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 ‘허스토리
 
지난 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열렸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다. 1342번째였다. 1992년 1월 시작했고, 500회가 된 2002년 3월 기네스북에 올랐다.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로도 집회는 계속 열리고 있고, 기록은 연일 갱신되고 있는 중이다. 최장의, 최장의 그리고 최장의 수요 집회가 된 셈이다.  


이렇게 집회가 길어진 까닭은 현장에 가면 알 수 있다.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서다. 일본의 공식사과를 요청하는 팻말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미안해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일본군 성노예, 흔히 위안부로 불려왔던 할머니들의 투쟁은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허스토리’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다. 피해자는 사과를 원하는데, 가해자는 침묵하고 있다. 이 침묵은 과거의 고통을 현재로 이어지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민규동 감독은 이를 뒷받침하는 생생한 현장으로 ‘관부 재판’을 불러냈다. 잊혀졌던 이 재판을 상기시키고 그 의미를 되새긴 것만으로 값진 영화다.  
 
관부재판(關釜裁判)은 일본 시모노세키(關)와 부산(釜)을 오가며 재판을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듬해인 92년 시작한 재판이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서울 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가 개설됐다.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도 여기에 동참해 부산 지역에 신고 전화를 개설했다. 8명의 할머니가 신고를 했고, 그 중 네 명이 관부 재판의 원고가 됐다.  
 
오늘날의 수요집회를 보면 알 수 있듯 재판 과정은 쉽지 않았다. 92년부터 98년까지 6년에 걸쳐 1심이 진행됐는데, 공판만 23번 열렸다. 할머니들은 재판이 열릴 때마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때로는 8분 여에 불과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민 감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궤적을 쫓으며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관부 재판의 이야기를 접했다고 한다. 감독은 “그 잊힌 작은 승리의 흔적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커다란 의지의 서사를 찾아낼 수 있다”며 영화 작업에 돌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최초로 보상 판결을 받았다. 90년대 후반 동남아 11개국에서도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위안부 재판 소송이 일제히 제기됐으나,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고 국가적 배상을 인정받았다. 물론 이 일부 승소 판결로 1심 재판부는 경질됐고, 일본 정부는 즉각 항소했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뒤집고, 기각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1심 판결문은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았다. “종군위안부 제도는 철저한 여성차별, 민족차별로, 여성의 인격과 존엄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으로 기본적 인권의 침해로 보인다. <중략> 피고국은 위자료로서 각 30만 엔을 지급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 역으로 김해숙ㆍ예수정ㆍ문숙ㆍ이용녀가 열연한다. 할머니들의 기억과 남은 몸의 상처, 자식들에게도 이어지는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인지 이 노장의 배우들이 생생히 알려준다. 할머니들을 독려하며 재판을 끌고 가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의 부산 사투리 연기는 하지만 아쉽다. 들숨 없이 몰아붙이듯 내뱉는 날숨만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관부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발벗고 나선 개인, 문정숙의 실존인물(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장)을 돌아보게 한다. 또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재판이 열리는 동안 숙식ㆍ항공료 등 일체의 체류 비용을 지원한 곳은 일본 후원 단체인 후쿠오카 후원회다. 이들의 노력은 되려 잊고 지내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NEW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