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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키우는 플라스틱 용기 바꿔 원하는 세포로 분화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시판 단계 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는 여러 가지 인체 세포로 분화된다.

배아줄기세포 는 여러 가지 인체 세포로 분화된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시판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얼굴·가슴성형에 쓰인다는 지방줄기세포 주사가 제대로인지 불안하다. 내 아이를 위해 탯줄(제대혈 줄기세포)을 보관해야 할까. 노화된 망막도 줄기세포로 새로 교체한다지만 내 몸속 줄기세포도 늙지 않을까. 무엇이 줄기세포 치료 핵심일까. 두 사건을 보면 답이 나온다.
 
악몽은 21세 생일날 시작됐다.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커필드 근교에서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나무를 들이받았다. 청년 크리스는 이 운전사고로 목뼈가 부러졌다. 응급실 의사들은 크리스가 목 아래 마비상태로 평생을 지낼 거라 예측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미 남가주(USC)대학 찰스 류 교수가 1000만 개 줄기세포가 들어있는 치료제를 목뼈 부위에 주사했다. 2주 후부터 몸에 변화가 생겼다. 3개월 후 크리스는 식사도, 통화도 혼자 한다. 주입한 줄기세포가 척추세포로 정확하게 ‘변신’한 덕분이다.
 
2015년 미 플로리다에서 여성 3명이 노화망막을 치료하려고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남아 있던 시력마저 완전 상실, 영구 실명됐다. 주사한 줄기세포가 망막세포 대신 안구근육세포로 변했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이런 의료사고 소식은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주춤하게 만든다.
 
 
임상 후기단계, 미 FDA 공인 치료제는 5개
 
뇌 세포로 분화 중인 배아줄기세포.

뇌 세포로 분화 중인 배아줄기세포.

20년 전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줄기세포는 이제 임상 후기단계로 곧 시판에 들어간다. 국내에서 임상실험 중인 치료제만 19종이다. 하지만 미국식품의약안전청(FDA)이 공인한 치료제는 5개, 그것도 변신능력이 가장 약한 제대혈(탯줄) 유래 줄기세포뿐이다. 왜 좀 더 강력한 줄기세포들, 예를 들면, 배아줄기세포는 허가가 나지 않았을까? 허가의 핵심은 원하는 세포로 정확하게 변신시키는 ‘분화(分化)’기술이다.
 
2017년 11월 저명 학술지 ‘바이오테크놀러지 최신 경향’에는 ‘신개념’ 줄기세포 분화기술이 발표됐다. 줄기세포를 키우는 플라스틱 용기 종류만 바꾸면 줄기세포가 신경세포, 관절세포, 근육세포 등 원하는 대로 분화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부산 학회발표장에서 ‘신개념 분화기술’ 논문 저자(일본 오사카대, 김미해 교수)와 식사를 했다. 어디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느냐고 질문하자 지나가던 산모를 가리킨다. 수정란에서 시작된 태아생성에 그 답이 있다는 몸짓이다.
 
수정란은 분열하면서 피부·근육·신경 등 다양한 200종류 세포로 분화한다. 이 세포들로 장기가 만들어지고 태아가 완성된다. 한 개 수정란에서 분열했으니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들인데 어떻게 모양도, 기능도 전혀 다른 피부세포, 심장세포로 변할 수 있을까. 이 분화 비밀을 안다면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한 치 오차 없이 정확히 분화시킬 수 있다. 일본 연구진이 뚫어지게 들여다본 부분은 수정란이 분열하면서 세포 각각에 가해지는 ‘물리적 힘’이었다.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하여 분열을 시작한다. 4주에 걸쳐 세포수가 불어나는 배아(embryo)초기단계가 된다. 수백 개로 불어난 세포 일부는 배아외벽을, 나머지는 내부세포 덩어리가 된다. 내부세포 덩어리들은 안으로 밀려 접혀지면서 3개층(3배엽)을 형성한다. 여기부터가 분화 핵심이다. 어느 층,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세포 하나하나에 미치는 물리적 힘과 화학성분이 달라진다.
 
배아 속 내부세포들은 같은 유전자지만 위치에 따라 ‘평생’ 운명이 달라진다. 바깥 부분(외배엽)은 피부·신경세포로, 가운데 부분(중배엽)은 근육·뼈세포로, 내부(내배엽)는 소화·호흡세포로 분화한다.
 
줄기세포에 힘이 달리 가해지도록 해 보자. 그러면 힘에 따라 각각 다른 세포로 분화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세포가 붙어 자라는 바닥 플라스틱 종류를 바꾸었더니 세포가 당겨지는 힘이 변했다. 줄기세포도 여러 종류 세포로 변했다.  
 
 
세포 당겨지는 과정서 ‘대못’ 잘못 박힐 수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세포벽이 당겨지면 여기에 붙어 있던 끈(접착단백질)이 DNA를 둘러싼 다른 끈(히스톤)을 당긴다. 당겨지는 정도에 따라 DNA가 작동하거나 스톱된다. 이 과정에서 ‘대못’이 DNA에 박혀 세포 ‘운명’이 결정된다. 한 번 박힌 대못이 빠지면 큰일 난다. 만약 심장근육을 평생 만들던 놈이 갑자기 모발을 만드는 놈으로 변한다면 ‘심장에 털’이 날수도 있다. 잘못된다면 플로리다 의료사고처럼 망막세포로 변해야 할 놈이 근육세포로 변해 실명된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몸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뇌는 두부처럼 연하다. 만약 줄기세포를 두부 같은 곳에서 키우면 두뇌세포로 변할까? 줄기세포가 흐물흐물한 순두부 같은 환경에서는 두뇌세포로, 말랑말랑한 젤리에서는 무릎연골세포로, 딱딱한 판에서는 뼈세포로 각각 분화했다. 줄기세포를 키우는 ‘환경’이 분화핵심이라는 뜻이다.
 
현재 진행 중인 줄기세포 임상실험 수는 전 세계 4109개다. 그중 2%만이 배아줄기세포다. 나머지는 분화능이 낮은 ‘다능’ 성체줄기세포(중간엽: 62%, 제대혈·골수: 20%)다. 성체줄기세포는 지방이나 제대혈에서 뽑아낸다. 이놈들은 분화능력이 약하지만 그만큼 안전하다.
 
이제 줄기세포는 산업화단계에 있다. 이 치료제로 고장 난 부위(심장병·파킨슨·알츠하이머·망막이상·폐질환·척추손상·이상췌장)에 직접 주사해서 치료할 수 있다.  
 
사고 후 크리스는 “이 불확실한 임상실험에 내 몸을 맡긴 이유는 단 하나다. 도전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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