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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시아(parrhesia)

[책 속으로]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담론과 진실

담론과 진실

‘파레시아(parrhesia)’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말년을 사로잡았던 개념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푸코는 이 주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그 풍부한 성찰의 일부가 『담론과 진실』이라는 강연록에 담겼습니다. 고대 그리스 단어 ‘파레시아’는 ‘모든’을 뜻하는 ‘pan’과 ‘말’을 의미하는 ‘rhesis’가 결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남김없이 모두 다 이야기하는 것을 뜻하죠.

 
우리는 보통 마음속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우리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실의 여러 측면에 대한 언어적 개입 행위로서의 파레시아는 용기의 덕목을 호출합니다. 진실의 전체를 말하려는 주체의 의지에는 때로 생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이죠. 특히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libera contumacia)’으로 요약하고 이는 그 영혼의 위대함에서 나왔다고 썼습니다.
 
푸코는 『담론과 진실』에서 방대한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 사이를 누비면서 정치적 진실 앞에 선 주체의 윤리적 의무로서의 파레시아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푸코가 이 책에서 말하지 않은 파레시아, 그러나 다른 어떤 의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파레시아 하나를 여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용기 있게 말하는 파레시아, 행복의 파레시아입니다.
 
역사

역사

우선 말씀드릴 것은 비잔틴 제국의 철학자 올림피오도로스(Olympiodoros)가 기록한 플라톤의 파레시아입니다. 40대 초반의 플라톤이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시라쿠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여기는 디오니시오스 1세라는 강력한 독재자가 권력을 잡고 있었죠. 그는 플라톤을 만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올림피오도로스의 설명에 의하면, 이 폭군은 플라톤이 아첨하기 위해서 자신을 지목할 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 권력의 기세를 단칼에 꺾어버렸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나이였지요”라고 대답했거든요. 화가 난 독재자는 플라톤에게 “지금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사라지기 전에” 이 나라를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올림피오도로스는 플라톤이 왜 소크라테스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로 지목했는지 그 이유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보다 약 두 세기 전 아테네에서 활약했던 솔론과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역사』에 등장합니다. 솔론이 리디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을 다스리던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내” 크로이소스왕은 솔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앞의 플라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솔론도 이 최고 권력자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습니다. 솔론은 평범하게 살다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던 몇 사람을 지목했고, 이에 크게 분노한 크로이소스왕은 솔론을 자신의 왕국에서 내쫓았습니다. 솔론은 이 부유한 권력자에게 “삶을 마칠 때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십시오”라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크로이소스왕은 후에 매우 불행하게 인생을 마쳤습니다.
 
플라톤과 솔론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지목한 이들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충실히 따르는 삶을 살다가 영예롭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잠깐의 행복에 자만하지 않았고 잠깐의 불행에 좌절하지도 않았죠. 디오니시오스 1세의 권력 그리고 크로이소스의 재산은 그들의 행복과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플라톤과 솔론의 파레시아. 그것은 권력과 부 앞에서 행복에 대한, 그러니까 삶의 최종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치적 실천을 뜻합니다. 행복의 파레시아는고통스럽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ksypb@naver.com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플라톤으로 박사 학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SeriCEO철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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