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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죽음에 대하여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지인의 도움으로 강원도 산속 조경 농장에서 며칠 지낼 기회를 얻었다. 새 소리, 멀리서 가끔 개 짖는 소리, 새벽의 닭 우는 소리가 전부인 고요의 공간 속에서 나는 우연히 두 죽음을 목격하였다. 어느 날 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해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마당 귀퉁이에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고라니는 정확히 목 부위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었는데, 짐작건대 농장에 풀어놓고 지내는 검정 개들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날 밤 나는 산속에서 밤새 울어대는 고라니 소리에 내내 잠을 설쳤다. 고라니는 마치 성난 사람이 소리 지르듯 처절하고도 원망스러운 울음을 밤새 쏟아냈다. 그것은 이미 동물의 목소리도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미물인 짐승의 몸은 오로지 슬픔과 원망의 울음통 같아서 마치 다른 생각이나 느낌은 일체 껴들어갈 틈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또 다른 죽음은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서였다. 작은 길바닥에 큰 제비나비가 죽어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다른 제비나비 한 마리가 그 옆에 앉아 동료의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살아남은 나비는 날개를 느리게 흔들면서 마치 조문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비는 포르르 날아갔는데, 뒤돌아보니 어느새 다시 가족인지 동료인지 모를 죽은 나비 곁에 내려앉아 있었다. 세상에, 저 작고 작은 뇌 속에도 죽음에 대한 사유가, 슬픔이 범람하는 감정이 있구나. 슬픔은 만물에 깃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얼마나 많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가. 저 미물들도 죽음과 이별의 슬픔을 저렇게 못 견뎌 하는데, 자칭 ‘영적 동물’인 인간들은 어떠한가. 일주일 전엔 쌍용자동차의 한 해고 노동자가 세상을 버렸다. 벌써 서른 번째이다. 며칠 전엔 상계동의 한 15층짜리 아파트 옥상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여고생이 몸을 던졌다.
 
삶의 향기 7/7

삶의 향기 7/7

신은 모든 생물의 본능 속에 오로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라는 명령을 심어놓았다. 그리하여 지상의 모든 생물들이 극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야말로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가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엄하기 짝이 없다. ‘삶’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죽음’으로 넘어가기를 악착같이 거부하는 본성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죽어라 일하고, 고통과 분노와 좌절과 싸운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 즉 본능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한 세계의 사라짐은 한 우주의 사라짐이다. 현대 캐나다 원주민 작가인 리 매러클(L. Maracle)의 『레이븐송』이라는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모든 개체들이 다 공동체에 소중하다. 한 사람을 잃는 것은 무리(circle)의 한 조각을 잃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다.” 자연사를 대하는 북미 원주민의 태도가 이러할진대, ‘사회적’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2003년 이래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살 이외에도 한국 근현대사는 전쟁과 양민학살의 끔찍한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삶’의 본능이 외부로부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마구 짓밟힐 때, 그 모든 살아있던 것들의 절망과 분노와 슬픔은 얼마나 깊었을까.
 
죽음에 대한 사유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 덩어리가 아니라 개체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할 때 모든 죽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도록 아프고 슬프다. 죽음에 대한 모든 위로 역시 이 아픔과 슬픔을 온전히 다 경유한 후에 와야 한다. 척박한 식민지의 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다. 살려고 하는 모든 존재들을 잘 살게 하는 것, 우리 모두의 몫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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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