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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포츠담 회담 73주년을 맞으며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지난 6월 25일 자 주요 신문들은 내용이 비슷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소규모 훈련까지 연기되었다는 것이 주요 기사였다. 있어야 했으나 없었던 기사는 6·25전쟁이 일어난 날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여전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할 길을 찾는 기사였다.
 
한미동맹의 쇠퇴는 물론 중대한 위험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을 잊는 것은 아예 안보의 바탕을 허문다.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북한 지도자와 만나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선전하는 세상이긴 하다. 그래도 남북한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을 신탁통치 아래 두자고 제안했다. 스탈린은 애매하게 답변하고서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킬 생각이냐”고 되물었다. 루스벨트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자,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스탈린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당연하다. 루스벨트는 일본과의 전쟁에 러시아가 참가해달라고 스탈린에 간청한 터였다. 러시아군이 일본군을 공격하면, 러시아군은 먼저 한반도를 점령해야 했다. 스탈린으로선 자연스럽게 독차지할 한반도에 관해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해 7월에 개최된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은 조선의 일부를 점령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은 존 헐 작전참모부장에게 조선에 병력을 파견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헐은 미국이 두 개의 좋은 항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러시아군과의 경계가 서울 북쪽에 설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달 뒤 딘 러스크 대령이 러시아군에 제시한 북위 38도선과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 남부에 자유로운 나라가 설 물리적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얄타 회담에서 포츠담 회담 사이에 미국의 조선에 관한 정책이 바뀌었다. 조선을 신탁 통치 아래 두고 군대는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던 태도에서 점령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도 미리 점령 지역을 확보하겠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다섯 달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 사이에 조선과 관련된 사건은 단 하나였다. 5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대표 이승만이 얄타 회담에서 조선에 관한 ‘비밀 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러시아가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루블린 정권’을 세운 것처럼, 조선에서도 공산당 정권을 세우려는 러시아의 뜻을 미국이 받아들였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30년 넘게 미국에서 쌓은 역량을 동원해서 미국 국무부를 몰아붙였다.
 
이승만의 폭로는 연합국 지도자들의 도덕성을 비판한 국제적 사건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큰 관심을 모았고 영국에선 의원들이 수상에게 질의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결국 미국 국무부는 얄타 회담에서 조선에 관한 밀약은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물론 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미국 지도자가 스탈린에게 환상을 품었던 루스벨트에서 현실적인 트루먼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공산주의 러시아가 세계적으로 제기하는 위협을 미국 지도층이 인식하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달라졌지만, ‘얄타 비밀 협약’을 폭로한 이승만의 활동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것에 관한 논란은 지도에서 사라진 조선을 미국 시민들이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에 관한 ‘비밀 협약’이 실제로 있었든 없었든, 미국은 러시아가 한반도를 모두 차지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게 되었다.
 
행운이 그냥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행운이 작동할 최소한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이승만의 활동은 한반도 남쪽에 미군이 진주할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작게나마 대한민국의 탄생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영위해본 경험이 없는 처지에서도 잘 해보려 애쓰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북한 정권은 다르다. 북한을 차지한 러시아는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한 대로, 민족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정권을 세웠다. 그래서 누가 북한 지도자가 되었는가는 별 뜻이 없었다. 누가 되었든, 그는 러시아의 뜻을 충실히 따랐을 것이고, 북한은 자유도 풍요도 얻지 못한 사회로 남았을 것이다.
 
한 나라가 갑작스럽게 나뉘어 생긴 나라들인데, 내력과 성격이 그렇게 다르니, 남북한은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우리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압제적이고 궁핍한 북한에 상시적 위협이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무슨 적대적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잘사는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가 못사는 북한에 치명적 위협이다. 아무리 막아도, 휴전선 남쪽에 잘사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은 북쪽으로 스며든다. 해방 뒤부터 지금까지 목숨 걸고 남쪽으로 내려온 수백만의 발길이 그 사실을 증언한다.
 
당연히, 북한 정권은 우리나라를 없애려고 시도한다. 그 길만이 그들이 체제를 유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핵화’가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도 바뀌지 않을 사실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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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