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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스토리] 아들 잃고 눈물 흘리며 수많은 '자식들' 구한 사나이

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 [인생스토리] ④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서울시 서초구의 교대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한 골목길에 ‘푸른나무’가 있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흰색 건물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싱싱한 청록색 나무들이 무성하다. 녹색과 파란색이 섞인 나무 로고 옆에 있는 ‘함께 고민해요! 학교 폭력 상담 전화 1588-9128’이라는 글귀가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어떤 곳인지 잘 말해 준다.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청예단 건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청예단 건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한쪽 벽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아버지는 김종기(71) 푸른나무 청예단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이다. 1995년 대기업 임원이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대현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 중 “대현아. 아빠 노릇을 못해서 늘 미안해. 네가 살아있으면 마흔살이니 결혼도 했겠고 아들도 있을 텐데. 아빠가 너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데 네가 이 아버지를 용서해 주었으리라고 믿어”라며 눈가를 붉혔다.
 
먼저 아들을 잃으신 경험에 관해 묻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들이 큰 아픔이 있었어요. 1995년 6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옮겨 친구들이 없는 상태에서 상급생들 5명한테 지속해서 시달리고 폭행을 당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어요. 아파트에서 투신해 차로 떨어졌는데, 건강한 아이여서 피를 흘리면서 다시 아파트 현관 쪽으로 걸어와서 재투신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나는 그때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우리 아들이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지 몰랐어요.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겠어요.
저와 아내는 삶이 완전히 피폐해져서 살 수가 없었어요. 산다는 것,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건지 몰랐어요. 그런데도 하소연하거나 상담할 곳이 전혀 없었어요. 우리나라 기관들 전부 다 찾아다녔어요. 그런데도 정답이 아닌 어떤 피상적인 얘기만 돌아왔어요.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아빠, 그런 죄책감과 원통함이 계속 느껴져서 아들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 아들 같은 아이들이 다시 생기면 안 되겠구나, 나같이 피맺힌 아버지가 있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1991년 삼성전자 홍콩법인에 근무하던 김 명예이사장(왼쪽)이 가족들과 찍은 사진. 가운데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대현군이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1991년 삼성전자 홍콩법인에 근무하던 김 명예이사장(왼쪽)이 가족들과 찍은 사진. 가운데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대현군이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직장 그만두고 사비 털어 청예단 만들어” 
그렇게 푸른나무 청예단이 시작된 건가요.
먼저 자청해서 ‘우리 아들이 학교 폭력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언론 인터뷰를 했죠. 그 이후에 엄청난 반응이 일어났어요. 신문 한 면에 ‘한 소년이 몸을 던지다’라는 기사가 크게 보도됐고, ‘내 아들도 그랬다. 내 딸도 그랬다’는 얘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어요. 그랬더니 도와주겠다, 자원봉사하겠다는 분들이 많이 연락을 주셨어요. 교사도 계시고, 경찰도 계셨고. 그중에 몇 분을 모시고 마포구의 작은 식당에서 모임을 발족했어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맡기는 것만으로 지키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선언을 했던 게 우리 푸른나무 청예단의 발원지입니다.
 
직장도 그만두신 건가요.
네.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삼성 그룹에 입사해서 진짜 열심히 일했고, 중요한 일도 많이 했어요. 삼성전자에 있을 때는 관리 업무도 했고, 수출 담당도 했고, 비서실에서 그룹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운영하는 것도 배웠고요. 근데 막상 아들을 그렇게 황당하게 잃고 보니까 ‘내가 사장이 되면 뭐하고, 돈이 아무리 많이 벌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고. 모든 게 무의미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마저도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초반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누가 돈을 주지 않으니까 제 돈으로 해야 했어요. 법적 승인을 받고 요건을 갖춰야 하니까 법인을 만들었고요. 출연금이 필요해서 돈을 긁어모았어요. 누가 기증한 컴퓨터 몇 대를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했고, 많은 어머니가 옥수수도 싸 오고 돈도 10만원, 20만원씩 내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전문성이 없었고 학교 폭력 관련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우리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정부와 언론에 알려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어려웠어요. 
 
2008년 김종기 명예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2008년 김종기 명예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단체를 만드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군요.
빨리 만들 수 있는 게 재단법인이라고 하길래 자본금을 긁어서 만들려고 하는데, 처음에 이름을 ‘학교폭력예방재단’으로 신청했거든요. 그런데 허가를 안 해주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안 돼서 서울시에 찾아가서 왜 허가를 안 해주냐고 물으니까 ‘학교 폭력이 없는데 왜 당신이 학교 폭력이라는 말을 써서 재단법인을 만들려고 하냐. 학교 폭력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라’고 하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제가 물러나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으로 수정을 해서 출범을 한 거예요. 
 
“도와줘야 할 교육 당국이 우리를 외면”  
교육 당국이 당시 학교 폭력을 외면했다는 건가요.
교육부나 교육청 모두 학교 폭력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외면했어요. 학교 폭력이란 용어 자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거죠. 그것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학교 폭력에 대해 언급하는 걸 두려워했고 알면서도 외면했는지 알 수 있고요.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 일을 함께 도와줘야 할 교육 당국이,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니까 같이 발 벗고 나서서 할 그분들이 우리를 가장 외면했다는 거예요. 제가 찾아가면 냉대하고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서 저를 안 만나려고 그러고. 너무너무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마흔여덟이었으니까 그때의 왕성한 혈기로는 다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고, 한국을 떠나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세금을 낼 가치도 없는 정부다. 이런 나라에 숨 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1998년 김 명예이사장이 학교 폭력 예방 관련 특강 후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1998년 김 명예이사장이 학교 폭력 예방 관련 특강 후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그런 교육 당국이 바뀌게 된 계기는 뭔가요.
2004년 우리가 청원한 학교폭력예방법이 만들어졌어요. 당시 학교 폭력 특집 기사가 모든 신문에 연일 나오고 국회에서도 떠들고 TV에서도 얘기하니까. 대안이 뭔지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학교 폭력 관련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해서 시민 47만명의 서명을 받아서 국회에 특별법 제정 청원을 했어요. 그 이후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으로 출범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게 정부예요. 
 
그 이후로 정부가 적극적이 된 건가요.
아뇨. 문제는 교육부가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로 일을 안 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부끄러운 건가요?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이 세금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국민이 아파하는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진정성 있게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러지 않았어요. 공무원들 본인들도 고백합니다. 의식 있는 간부가 저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교육 관련 업무 중에)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아요. 대학 정책이 어떻고 입시문제가 어떻고.’ 
 
2008년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이 서울 광화문 광장 근처에서 시민들에게 학교 폭력 예방 관련 인쇄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2008년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이 서울 광화문 광장 근처에서 시민들에게 학교 폭력 예방 관련 인쇄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대립 많은 사회가 학교 폭력의 원인”  
그럼 언제부터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나요. 
그러다가 큰 사건이 터졌죠. 기억하시겠지만 2011년에 대구에서 중학생이었던 권모군이 유서 5장을 쓰고 국민한테 큰 충격을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권군의 부모님이 교사였잖아요?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나 먼저 갑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제가 이렇게 힘들었어요.’라고 적힌 유서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오죠. 그래서 다시 총리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고 6개의 정부 부처의 장들이 모여서 이제는 정부가 올바로 대처하겠다고 밝히고 그다음부터 올바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2011년부터 학교 폭력에 적극적이 됐다고 봐야겠네요.
예. 정부가 제대로 일하기 시작한 게 2011년 이후에요. 지금은 많은 체계가 잡혔고 학교 폭력 발생률도 예전에 약 28%였던 것이 지금은 3%대로 많이 줄었어요.  
 
지금의 학교 폭력은 어떤가요.
옛날에는 물리적 폭력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요.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학생들 스스로가 알기 때문에 많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서 괴롭히는 등 지능적으로 양상이 변했어요. 하지만 재미 삼아 한 인격을 모독하고 피해를 주는 것, 한 아이를 괴롭히고 바보로 만들고 종처럼 힘들게 하는 그런 괴롭힘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며칠 전에도 부산에서 한 여중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가해 학생들의 이름을 다 적어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보도됐잖아요.
 
학교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은 사회의 거울이고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회가 돼야 아이들도 이것을 보고 잘 자라는데, 요즘에는 사회가 갈등과 대립이 너무 많아요. 남북, 동서의 갈등을 넘어서 어떤 이념 문제, 진보와 보수 등등 너무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모습들이 우리 아이들의 정신세계에 너무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을 해요. 또 성적 위주,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불행한 교육을 만들어요.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기본 질서를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약자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교사들도 그런 것을 깨닫고 교사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예전과는 달리 하나의 직업인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자기 현실에 쫓겨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워요.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은 "청예단이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등을 치유해주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은 "청예단이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등을 치유해주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 이사장은 전국에 330여명의 직원을 둔 푸른나무청예단이 학교 폭력과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전문적인 기관이 됐다고 자평했다. 또 시민들이 기부하는 적은 돈들이 큰 힘이 된다며 정부나 기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완전히 자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청예단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설립 동기가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니까요. 상담을 기본으로 합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나 죽어버릴 거예요’ 라는 전화가 굉장히 많이 와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전화가 불통이 나요. 또 학교로 오는 전화도 학교가 처리하기 힘들면 저희에게 와요. 전화 상담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갈등을 치유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화해하고 정상적인 친구 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그래서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거나 전학 가지 않도록요. 
 
다른 활동도 하시나요.
교육도 하고 있어요. 청소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교육, 학부모에 대한 교육도 많이 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후기 청소년이라고 해서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군인들에 대해 교육도 해요. 지금까지 10만 명 가까이 교육했어요. 매주 200명의 강사진이 부대에 배치돼서 2박 3일씩 교육한 지 3년째인데 굉장히 효과가 크다고 해요. 또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성적과는 관계없이 장학금도 주고 있어요. 우리 아들 이름을 딴 대현장학회도 만들었고요. 가난이 아이들의 죄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에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따돌림당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요. 지금 돕는 아이들이 1000명 이상 됩니다. 또 시민운동을 하고 법률을 제정을 요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일, 책을 만들어 세상에 좋은 의식을 불어넣는 일도 하고 있어요. 
 
큰 단체를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전국에서 무려 330여명이 일해요. 원칙은 시민에 의한 봉사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1000원, 2000원씩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주시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근데 경제가 어렵고, 또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후원을 끊는 분들도 많아서 힘들어요. 그래서 저희는 강연이나 교육을 하고, 책을 만드는 등으로도 돈을 벌어요. 지금까지 저희가 만든 책이 대학 교재를 포함해 130권 정도 돼요. 또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하는 바자회도 하고요.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가 있으면 응모해서 인건비를 벌기도 해요.
 
푸른나무 청예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고마움을 적은 편지.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푸른나무 청예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고마움을 적은 편지.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저희가 수많은 아이를 도와줬거든요. 자살 시도를 했거나 이런저런 아픔이 있는 학생들을 도와줬을 때 부모님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주세요. 명절이 되면 음료수같이 조그마한 것들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그런 것들 보면서 ‘아 우리가 하는 일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고, 가치가 있는 일이구나’ 생각해요. 이 일은 정부나 기업이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제 목표는 우리 푸른나무 청예단이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자립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돈을 1원이라도 받으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온전히 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정부 비판을 하려고 하면 직접 전화를 하는 공무원이 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당신이 뭔데 그런 얘기를 하느냐.’ 우리 단체를 정부의 산하 단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솔직히 아주 기분이 나빠요. 그래서 자립하기 위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2의 회사를 창업하려고 해요. 우리나라에 있는 시민단체들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외국에서는 시민들이 적은 금액이라도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렇지 않아요.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은 "힘은 약자를 괴롭히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조언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은 "힘은 약자를 괴롭히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조언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위기에 빠진 사람 도와주는 게 힘”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은 꽃과 같은 것입니다. 꽃은 아름답게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서 떨어지는데, 우리 삶도 꽃처럼 피어나서 한 60~70년을 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꽃처럼 우리도 멋지게 아름답게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아름다운 꽃이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인생에서 꼭 지키려는 좌우명이 무엇인가요. 
푸른나무 청예단을 시작할 때 좌우명을 ‘성실, 근면, 정직’이라고 써서 벽에 붙였는데요.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니까요. 투명하고 깨끗하게 살다 보면, 결국 진실한 것이 승리한다고 봐요.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면, 짧게는 손해를 본 것 같아도 길게는 가장 오래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두 가지 있어요. 첫째는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거예요.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멋지게 그것을 추구해봐라. 노래를 잘하면 노래를, 춤을 잘 추면 춤을, 운동을 잘하면 운동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꿈을 구체화해서 키워라. 둘째는 힘은 약자를 괴롭히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고 손 내밀어서 생명을 구하는 게 힘이고, 잘못된 것을 봤을 때 올바른 소리를 하고 올바른 말을 하는 것 그게 정의라는 것을요.
 
마지막으로 아드님에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요. 대현아 네가 그렇게 힘들게 가서 아빠 노릇을 못해서 늘 미안해. 네가 살아있으면 마흔살이니 결혼도 했겠고 아들도 있을 텐데. 네 친구가 찾아올 때마다 널 보는 것 같고 마음이 힘들어. 그래도 너 때문에 아빠가 이런 일을 하는데 네가 용서를 해주었으리라고 믿어. 네가 과거의 힘든 것들 잊고 편안한 곳에 잘 있었으면 해. 네 친구들도 네가 편히 있으리라고 믿지만 그래도 네가 한이 많을 것 같아서 늘 그게 조금 걱정이다. 행복하게 잘 쉬고 있거라.  나도 언젠가 너한테 갈게.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1947년 전남 목포 출생

1966년 경복고등학교 41회 졸업

1975년 성균관대학교 법정대 행정학과 졸업

1975~1995년 삼성그룹 비서실, 삼성전자 홍콩법인장, 신원그룹 기조실장 전무이사

 
1995년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설립(초대 이사장)

1999년 MBC `99 좋은한국인대상 본상 수상, 국정평가 자문위원(국무총리실)

2000년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2년 청소년보호대상수상(청소년보호위원회)

2004년 학교폭력대책단 단장(교육과학기술부)

 
201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2013~2015년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

2013~2017년 한국청소년단체협희 이사

2014~ (재)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국내최초 아쇼카재단 시니어펠로우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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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