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글로벌 포커스] 북한의 ‘안전보장’ 요구는 협상 전략일 뿐이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미국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느냐고 한국에 있는 진보 진영 친구들은 말한다. 미국 공화당 강경파와 같은 목소리를 내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최근엔 한국의 진보 언론인이라도 된 듯이 북한이 비핵화를 이루면 “강력한 보호”을 해주겠다고 한다. 북한이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안전보장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안전보장이 ‘공수표’가 된 사례들을 보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1934년 6월: 나치 독일과 폴란드의 상호 불가침 조약 체결. 10년 동안 군사 행동을 금하기로 했으나 5년 후 독일이 폴란드 침공 ▶1938년 9월: 히틀러와 체임벌린 영국 총리의 평화조약 체결. 히틀러는 체코의 주데텐란트 지역만 점령하기로 약속했으나 1년 후 체코 전역 점령 ▶1939년 5월: 독일과 덴마크의 불가침 조약 체결. 1년 후 히틀러가 덴마크 침공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상호 불가침 조약 체결. 2년 후 독일이 소련 침공 ▶1941년 4월: 소련·일본 중립조약 체결. 4년 후 소련이 만주 지역에서 일본 침공.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역사를 내게 가장 먼저 짚어준 사람이 바로 6자회담에 참석했던 북한 고위 외교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미국을 상대로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것과 맞물려 북한 외무성에서 이와 관련된 역사를 자체적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체제 안전보장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북한 외교관이 말했다. 최근에도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서 우크라이나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20년 후에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북한이 체제 안전보장을 받은 적도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무력 사용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나, 몇 년 뒤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 조치가 담겼지만, 이듬해 북한이 핵시설 시험 가동에 돌입했다.
 
이러한 자료에 근거해 체제 안전보장이 오히려 전쟁 발발이나 핵확산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글로벌 포커스 7/6

글로벌 포커스 7/6

사실 체제 안전보장이 내포한 역사적 모순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의 선언을 신뢰하지 않을 이유는 많다. 첫째, 북한 스스로 국제 협약을 지킨 적이 거의 없어 상대 또한 그럴 것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민주 국가에서 정권이 바뀐 뒤 기존 약속을 뒤집는 경우를 북한도 목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이란 핵 협상을 폐기하지 않았던가. 셋째, 북한 정권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북한 주민이다. 개방으로 인한 내적 변화는 미국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북한 입장에서 실제로 체제 안전보장을 받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북한이 취하는 핵심 전략이다. 비핵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자신들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주변국을 압박해 미국이 ‘적대 정책’을 끝내게 하는 것이다. 안전보장에 고착된 협상은 대북제재, 한·미 연합군사훈련, 북한 인권 문제 제기,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 제공, 핵 억지력 강화 중단을 요구할 여지를 북한에 준다.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비핵화를 약속하는 문서가 있어도 북한이 핵 폐기 검증에 비협조적 태도를 고수할 수도 있다. 북한이 지하에서 원심분리기를 돌리거나 핵탄두를 조립해도 밖에서는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굳이 약속을 이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민주 국가에서는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약속한 핵 억지력 축소가 훨씬 더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실행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동맹국과 행하는 정기적 군사훈련 및 전략자산 배치를 중단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 협상에서 체제 안전보장을 제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이미 두 차례나 안전보장을 약속했고 지금까지 지켜왔지만 북한은 약속을 번번이 파기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는 있다. 하지만 안전보장을 비핵화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열어 줄 마법의 열쇠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