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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원전·개헌 … 갈등만 키우는 ‘기울어진 위원회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0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를 이끌 정해구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정책기획위원회는 모든 국정과제를 총괄하면서 기획해야 하는 위원회”라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 문재인 정부의 국정 전반에 걸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서울 종로에서 열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서울 종로에서 열리고 있다. [뉴시스]

문 대통령의 이런 지시에 따라 정책기획위는 실제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정책기획위 산하에 꾸려진 국민헌법자문특별위의 위원장을 맡아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한 문 대통령의 개헌안 작성을 주도했다. 역시 정책기획위 산하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강병구)는 지난 3일 다주택자와 금융 자산가 등을 겨냥한 증세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국가적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정책기획위지만 관여한 정책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적용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라는 재정개혁특위 권고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하루 만에 “더 검토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특위가 주무부처와 충분한 협의 없이 (권고안을) 졸속 발표했다”(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3월에 공개한 개헌안의 경우 토지공개념과 국민소환제 등 급진적 내용을 담으면서도 국무회의 심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아 “일종의 위헌”(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이란 지적을 받았다. 결국 야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개헌안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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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문재인 정부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존의 공식 기구가 아니라 임시기구인 위원회의 활용도를 높였지만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을 키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의 중단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7~10월 활동한 공론화위원회는 ‘숙의(熟議)민주주의’를 현실 정책에 도입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던 공사가 대통령 지시로 중단된 뒤 이후 89일 동안 공론화위가 쓴 예산만 46억원에 달하고, 건설 중단으로 피해를 본 협력사에 줘야 할 돈도 약 1000억원(한국수력원자력 추산)에 달했다. 실험정신을 높이 사기엔 비용이 너무 컸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6개월 동안 활동했던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을 작성하는 등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한 국정원 활동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밀 취급 인가가 없는 민간인이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들여다봤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사실상 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했던 한·일 위안부 합의 피해자문제검토 TF의 경우 통상 30년 동안 비공개하는 외교 문서를 2년 만에 공개해 “다른 나라들도 한국과의 비밀협상이 어렵겠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됐다”(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는 우려를 낳았다. 당시 TF를 이끌었던 오태규 전 한겨레신문 논설실장은 지난 4월 일본 오사카 총영사에 임명돼 “보은 인사” 논란까지 일었다.
 
위원회는 제도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영향력은 크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에 근거한 법적 지위가 없어 책임질 일은 별로 없다. 그냥 한번 던져 놓고 논란이 되면 ‘없었던 얘기’로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3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정특위 권고안을 기재부가 거부해 ‘엇박자’ 논란이 일자 5일 청와대가 보인 반응도 비슷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재정)특위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라며 “독자적이고 자율적으로 안을 만드는 거고, 그 기구에 누구도 과세권을 부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세권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책임지고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위원회를 적극 활용하는 건 청와대가 기존 관료 조직을 불신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 과제’도 문 대통령과 김상희 전 의원이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앞장섰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배분하거나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권한은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에 있지만 내년 시행을 목표로 예산 9000억원이 투입되는 중요 정책의 발표에 위원회가 전면에 등장했다.
 
일자리위원회와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이미 활동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뿐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위원회도 많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반부패 활동을 위해 민관이 공동 참여하는 시민공익위원회 ▶인권을 향상시키고 시민사회 지원을 위한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사회적 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 ▶재난 조사와 치료를 위한 독립적 기구인 재난사고조사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7개를 포함해 위원회 숫자가 20개에 달했다. 야당은 “위원회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옥상옥이 된다”고 비판한다.
 
위원회 구성원들의 성향도 도마에 올랐다. 대개 진보인사나 친여 성향의 인물들이 위원회에 대거 배치되면서 ‘기울어진 위원회’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그 산하의 재정특위를 각각 이끄는 정해구·강병구 위원장은 참여연대 출신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에는 이석범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과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이 활동했다. 헌법자문특위에는 정연순 민변 회장,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최은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한총련 의장 출신인 송효원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등이 대거 참여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심사숙고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할 때 위원회를 만드는 건데, 이번 정부의 위원회에는 특정 이념과 가치에 치우친 위원으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념 지향적인 정책 대안을 일방적으로 마구 쏟아내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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