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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중2에게 ‘마약 영화’ 권하는 영화등급위원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는 ‘청소년 보호’라는 가치가 분명하게 적시돼 있다.
 
그런데 최근 영화 ‘독전’과 ‘마녀’가 영등위에서 잇따라 ‘15세(중2) 관람가’ 등급 판정을 받으면서 영등위가 청소년 보호라는 핵심 가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13년 제작된 홍콩 영화 ‘마약 전쟁’(원제:毒戰)을 리메이크한 ‘독전’은 등장인물들이 마약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장면, 약물에 취해 기행을 벌이는 장면, 여성의 젖가슴을 노출했다. 관객들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청와대에 등급 재심의 국민청원을 내기도 했다.
마약 소재 영화를 '청소년 관람가' 등급으로 판정해 비판을 받고 있는 영화 ‘독전’ 포스터 [사진 NEW]

마약 소재 영화를 '청소년 관람가' 등급으로 판정해 비판을 받고 있는 영화 ‘독전’ 포스터 [사진 NEW]

 
각각 4월 23일과 4월 30일로 불과 1주일 시차로 등급 판정을 받은 ‘버닝’(이창동 감독)과 ‘독전’(이해영 감독)을 비교해봐도 ‘독전’의 등급 판정은 석연찮다. ‘독전’은 필로폰급 마약을 코로 흡입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담았지만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반면 ‘버닝’은 주인공 남녀가 대마초를 나눠 피는 장면이 들어갔는데 청소년관람 불가(‘19금’) 판정을 받았다.
 
영등위가 흥행의 날개를 달아준 덕분인지 ‘독전’ 관객은 500만명을 돌파했고 IPTV를 통해 안방 깊숙이 침투했다. 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버닝’은 등급 문턱이 높아지면서 52만명 정도로 저조하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영등위가 대거 물갈이됐고 청소년 보호를 강조하던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면서 등급 잣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뒷말이 나온다.
마리화나 흡연 장면이 나오는 영화 '버닝'의 여배우 전종서. [사진 CGV 아트하우스]

마리화나 흡연 장면이 나오는 영화 '버닝'의 여배우 전종서. [사진 CGV 아트하우스]

 
실제로 영등위 산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위원 7명, 임기 1년) 멤버가 공교롭게 4월 30일에 바뀌었다. 신임 등급심사 소위원들은 임기 첫날이던 4월 30일 ‘독전’에 대해 “폭력 묘사와 마약의 불법 제조 및 불법거래 등 약물에 대한 내용이 빈번하지만, 제한적으로 묘사됐다”는 이유를 들어 15세 관람가 판정을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영등위 측에 물어봤다.
 
15세 관람가 등급이 나온 경위는.
“제작사가 15세 관람가 등급을 희망했고 전문위원들도 같은 의견을 냈다. 등급 소위원회에는 위원 7명 중 6명이 참석했는데 3명은 15세 관람가를, 다른 3명은 청소년 관람 불가 의견을 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의견이 절반을 차지했는데 왜 제작사 손을 들어줬나.
“등급 판정은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가부 동수여서 소위원회 의장이 결정했다.”
 
의장이 누구였나. 출석한 6명 중에 청소년 보호 전문가가 들어 있었나.
“등급 평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
마약 흡입 장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논란을 빚은 영화 '독전'의 한 장면. [사진 NEW]

마약 흡입 장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논란을 빚은 영화 '독전'의 한 장면. [사진 NEW]

 
영등위 측의 이런 설명에 수긍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영등위 등급 소위 위원들에게 “당신의 중2 자녀에게 ‘마약 영화’를 권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사실 마약의 폐해는 단지 영화 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악이다. 경찰청 최주원 형사과장(총경)은 “청소년 마약사범이 2013년 75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마약 청정국이던 한국도 2015년부터 연간 마약사범이 1만명을 넘으면서 마약 통제 능력을 잃어가는 단계”라며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 영화를 보고 마약에 손을 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15세관람가 등급을 받아 논란을 일으킨 영화 '마녀'의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5세관람가 등급을 받아 논란을 일으킨 영화 '마녀'의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구멍이 숭숭 뚫린 영등위의 청소년 보호 장치를 보완할 대안을 생각해봤다. 첫째, 청소년 보호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 약자인 청소년 보호를 우선하는 심의 대원칙을 세우자. 둘째, 등급 소위원회에 자격을 갖춘 청소년 보호 전문가를 최소 1명 포함하자. 셋째, 법원처럼 ‘국민 배심원단’을 구성해 논란이 큰 영화는 상식적인 국민의 판단을 받도록 하고 재심의 절차도 신설하자. 이런 노력도 없이 청소년 보호보다 영화 업계 돈벌이를 우선한다면 영등위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논설위원 zha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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