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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홀의 기적 … 끝내 눈물 흘린 박성현

16번 홀 러프에 빠진 공을 건져내는 박성현. [USA투데이=연합뉴스]

16번 홀 러프에 빠진 공을 건져내는 박성현. [USA투데이=연합뉴스]

2일 미국 시카고 인근 캠퍼 레이크스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박성현(25)은 꾹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평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최종 라운드 16번 홀(파4·405야드)의 위기를 잘 넘긴 데 이어 유소연(28)과 치른 연장 두 홀 승부에서 승리한 박성현은 “진짜 최고로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US여자오픈 이후 1년 만에 메이저 대회 통산 2승을 따낸 박성현은 이날 우승으로 ‘2년 차 징크스’에 대한 우려도 깨끗이 씻었다. 지난 5월 텍사스 클래식에 이어 시즌 2승째. 박성현은 이날 우승 상금 54만7500달러(약 6억1000만원)를 받았다.
 
박성현에겐 켐퍼 레이크스 골프장의 ‘16번 홀’이 행운의 장소가 됐다. 전날까지 선두 유소연에 4타 뒤진 3위였던 그는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경기를 치렀다. 박성현은 3, 4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면서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소연이 2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덕분에 라운드 초반부터 동타를 이뤘다.
 
박성현이 16번 홀에서 헤저드 지역에 떨어진 공을 살펴보고 있다. 박성현은 이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EPA/TANNEN MAURY]

박성현이 16번 홀에서 헤저드 지역에 떨어진 공을 살펴보고 있다. 박성현은 이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EPA/TANNEN MAURY]

이후 침착하게 파를 지키던 박성현은 16번 홀에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호수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이 홀에서 박성현이 3번 우드로 티샷한 공은 호수 가장자리의 내리막 러프에 멈춰섰다. 공을 쳐내기 만만찮은 자리였지만 박성현은 그린까지 108야드를 남겨놓고 54도 웨지로 물을 넘겨 그린을 직접 공략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어프로치샷이 약간 짧았다. 공은 그린 앞쪽 물 가장자리의 풀 속으로 떨어졌다. 물에 공을 빠뜨리진 않았지만, 호수 바로 옆인 데다 러프마저 무성해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고 벌타를 받는 게 나은 것처럼 보였다.
 
1998년 US 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해저드 옆에서 친 ‘맨발의 투혼’ 장면.

1998년 US 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해저드 옆에서 친 ‘맨발의 투혼’ 장면.

이때 박성현의 캐디 데이비드 존스는 신발을 신은 채 물에 들어가 샷이 가능한지 살폈다. 존스는 샷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여기서 반드시 파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자신 있게 치라”고 조언했다. 존스의 조언에 따라 박성현은 몸을 비스듬하게 누인 채 클럽을 짧게 잡고 회심의 로브샷을 했고, 공은 홀 50cm 거리에 떨어졌다. 결국 박성현은 이 홀에서 힘겹게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LPGA 투어 홈페이지는 “1998년 US오픈 당시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갔던) 박세리의 샷을 떠올리게 했다. 이 샷은 당시 한국에 깊은 영감을 줬다”고 소개했다.
 
그래도 박성현이 우승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유소연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박성현에 2타차로 앞서갔다. 그러나 유소연은 파3의 17번 홀에서 티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트리면서 더블 보기를 해 단숨에 2타를 잃었다. 결국 박성현·유소연과 일본의 하타오카 나사까지 3명이 합계 10언더파 동타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18번 홀에서 열린 첫 연장에서 나란히 버디를 기록한 박성현과 유소연은 파에 그친 하타오카를 밀어내고 두번째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LPGA 올해의 선수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우열을 가리지 못했던 박성현과 유소연이 메이저 연장에서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쳤다.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웃는 박성현. 메이저 대회 두 번째 우승이다. [뉴스1]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웃는 박성현. 메이저 대회 두 번째 우승이다. [뉴스1]

2차 연장은 16번 홀에서 열렸다. 이날 위기를 넘겼던 운명의 16번 홀에서 박성현이 다시 웃었다. 유소연이 7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친 반면 박성현은 2.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우승했다면 세계 1위 복귀도 가능했던 유소연으로선 바람에 밀려 물에 빠진 17번 홀 티샷이 불운했다. 유소연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17번 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소연이 17번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후 드롭하고 있다. 이 홀에서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했다. [EPA/TANNEN MAURY]

유소연이 17번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후 드롭하고 있다. 이 홀에서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했다. [EPA/TANNEN MAURY]

박성현은 16번 홀 로브샷 상황에 대해 “캐디가 공의 상황을 자세하게 살핀 뒤 ‘공 밑에 물이 전혀 없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평소 벙커샷을 하듯이 헤드를 열고 자신 있게 쳤다. 샷을 하자마자 잘 쳤단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이날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눈물까지 흘렸다. 평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박성현은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동안의 보상을 받는 듯한 느낌에 울컥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9년 만에 올해의 선수, 신인상, 상금왕을 석권했던 그는 올 시즌엔 부진한 성적 탓에 ‘2년 차 징크스’에 빠졌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지난달 초까지 3개 대회에서 연속 컷오프됐다.
 
그러나 박성현은 이날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최근 퍼트 루틴에 변화를 줬다는 그는 “큰 문제가 아닌 작은 문제였다. 이번엔 모든 게 잘 맞춰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시즌 라운드 당 퍼트 수 30.3개로 부진했던 그는 이번 대회에선 28.5개로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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