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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물었다...예술과 디자인에 경계가 있을까?

포라다(Porada) 테이블과 의자. 방혜자 화백의 '빛의 춤'(179*119cm, 닥지에 천연채색)[사진 영은미술관]

포라다(Porada) 테이블과 의자. 방혜자 화백의 '빛의 춤'(179*119cm, 닥지에 천연채색)[사진 영은미술관]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 경계는 실용성에 있는 것일까? 가구는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우리의 일상으로 깊이 들어온 미술 작품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는가 하면, 디자인을 넘어 예술이 된 '작품'도 적잖다. 실용적인 기능과 섬세한 감각, 디테일한 아름다움을 갖춘 가구들이 그 예다. 
 
 소파와 테이블, 의자와 거울, 콘솔 등 우리가 '가구'라 부르는 것들이 당당하게 미술관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장식품으로 공간 일부를 차지한 게 아니다. 자존심 강한 순수 예술작품과 하나가 되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영은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삶 속의 예술'전이다. 미술관에서 미술과 가구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다소 파격적이다. 
 
쇼룸이 아닌 전시장에 자리한 가구들이 방혜자, 소진숙, 배미경, 강형구, 박승순, 김윤경 등 국내 중견 작가 6인의 회화, 설치, 조각 작품과 과연 어울릴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찾았던 관람객에게 '삶 속의 예술'전은 의외로 자연스럽고 친근한 분위기다. 순수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져 온 미술관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시도였겠지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한 관람객 친화적인 전시로 주목할 만하다.  
 
◇'예술'로 승화된 가구=이번 전시는 국내의 이탈리아 가구 편집숍 에이스 에비뉴와 영은미술관의 협업 프로젝트다. 알플렉스(Arflex)·박스터(Baxter)·리바1920(Riva1920)·포라다(Porada)·피암 이탈리아(Fiam Italia)·크리스탈리아(Kristalia) 등의 가구들이 무게 있는 미술 작품과 함께 배치됐다. 
 
가죽으로 유명한 박스터의 가죽 소파와 방혜자 화백의 작품. [사진 영은미술관]

가죽으로 유명한 박스터의 가죽 소파와 방혜자 화백의 작품. [사진 영은미술관]

 
포라다의 대리석 테이블과 의자. 벽엔 소진숙 작가의 작품(왼쪽)과 배미경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포라다의 대리석 테이블과 의자. 벽엔 소진숙 작가의 작품(왼쪽)과 배미경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박스터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꼽히는 가죽 소파다. 부드러운 가죽을 천을 누비듯이 단추로 눌러 고정한 독특한 디자인의 이 소파는 '빛의 작가'라 불리는 방혜자(81) 작가의 푸른색 원형 작품 '우주의 빛'(220x230cm, 2002)과 하나가 되었다. 가죽에 깃든 장인의 손길과 커다란 무직 천에 자연 채색으로 '빛'을 표현하는 방 작가의 작품은 서로 위압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울린다. 
 
 포라다의 목재 테이블과 함께 공간을 장식한 작가의 '빛의 춤'(2016)은 전시장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포라다의 테이블은 나무가 지닌 따뜻한 질감과 리드미컬한 곡선을 살린 디자인이 단연 돋보인다. 가장 자연적인 재료에 현대적인 감각을 매끄럽게 녹여낸 목공 기술이 남다르다.   
피암 이탈리아의 거울과 크리스탈 테이블, 그리고 리바 1920의 콘솔은 사실상 조각 작품에 더 가깝다. 1972년 피암 이탈리아를 창립한 비토리오 리비는 '유리라는 소재가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구를 개발해왔다고 한다. 일상에서 너무도 흔한 아이템인 거울이 여기서 '명작'으로 탄생한 이유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목재로 만든 리바1920의 콘솔은 자연과 인위,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문 흥미로운 작품이다.     
 
 미술관과 함께 전시를 준비한 에이스 에비뉴의 권은숙 이사는 "이탈리아의 가구 산업은 수공예 제작 방식을 존중하거나 클래식을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명작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오늘날 가구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서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를 제안하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가구가 놓인 공간을 장식한 강형구 화백의 '소피아 로렌'. [사진 영은미술관]

이탈리아 가구가 놓인 공간을 장식한 강형구 화백의 '소피아 로렌'. [사진 영은미술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소진국 작가의 작품 'Untitled'(Steel mesh, painted gold, silver).[사진 영은미술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소진국 작가의 작품 'Untitled'(Steel mesh, painted gold, silver).[사진 영은미술관]

박승순 작가의 'page-63'(227*181.8cm, 캔버스에 유화, 2018). [사진 영은미술관]

박승순 작가의 'page-63'(227*181.8cm, 캔버스에 유화, 2018). [사진 영은미술관]

 
◇생활로 들어온 '아트'=가구와 미술의 만남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탄탄한 자기 세계를 갖춘 작가 6인의 작품들이다. 40년 동안 인물화를 작업해온 강형구(63)의 작품은 미니멀한 가구에 방점을 찍어주고, 자유로운 터치와 색채가 돋보이는 박승순(64) 작가 회화는 정적인 공간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소진숙(68) 작가의 조형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은판, 금판 등 금속을 소재에 입힌 추상적인 리듬감이 매력적이다. 배미경(65) 작가와 김윤경(48) 작가의 재치 있는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리바 1920의 가구들. 목재에 대한 브랜드의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 [사진 영은미술관]

리바 1920의 가구들. 목재에 대한 브랜드의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 [사진 영은미술관]

 
 박선주 영은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예술의 또 다른 모습을 조명하고 싶었다"며 "삶에 스며든 예술이야말로 일상의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 관람객들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다가와 있는 예술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은미술관은 전시 개막을 축하하며 30일 오후 2시30분 최유미 하프시코드 연주회를 열고, 오후 4시 공식 오프닝 행사를 연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관람료 성인 6000원, 주차료 2000원. 경기도 광주시민과 경기도민은 50% 할인. 02-761-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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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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