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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영어 연설문 내 손 거쳤죠

에리자벳 지 크랲트

에리자벳 지 크랲트

40년 넘게 대통령 연설문의 영역(英譯)을 감수한 미국인 귀화자가 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정부의 영역 감수 분야에서 41년 6개월간 근무하다 30일 퇴직하는 에리자벳 지 크랲트(78·사진)씨에게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수여한다고 27일 밝혔다. 훈장 수여식은 29일 열린다.
 
그는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헌법(헌법 제10호)의 영역 감수를 비롯해  전·현직 대통령의 연설문, 남북정상회담 발표문, 외국 정상에 대한 대통령의 친서, 대국민 담화 발표 등 수많은 영역본의 감수를 맡았다.
 
69년 한국인 남편 이하우(79,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씨와 결혼해 77년 문화공보부 해외공보관에 입사했다. 81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Elizabeth G. Kraft’인 미국 이름을 ‘에리자벳 지 크랲트’란 한글명으로 등록했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국인이 매우 드문 시대에 영역된 자료에 대해 외국인이 이해하고 확인해 줄 수 있는 감수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관련 외국 서적을 일일이 찾아보는 등 외국인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한국의 연설문 자료는 사실적 기술보다는 감정적 단어가 많이 사용돼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며 “연설문 내용에 대한 수위 조절, 외국인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을 조언해 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서울 시내 호텔에서 영역 감수를 완료하고 오전 4시 통금 해제 후 본인 차로 귀가했던 적도 있었다. 92년 한·중 외교관계 수립 시 관련 자료에 대한 영역 감수를 담당했는데, 당시 정부 당국의 강도 높은 보안 유지에도 관련 자료가 언론에 유출되는 곤혹스러운 경험도 있었다. 해당 자료 유출의 원인이 다른 데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져 책임을 면했다고 한다.
 
그는 “그간 정권이 바뀌고 근무하는 직장명이 바뀌어도 계속 영역 감수를 맡아 일할 수 있어 보람도 있었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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