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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곳] 백색 가루 쌓인 외딴 창고 … 금세 ‘독한 자들의 전쟁’ 터질 듯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영광군 백수읍 광백사 염전. [프리랜서 장정필]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영광군 백수읍 광백사 염전. [프리랜서 장정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염전은 고요했다. 네모반듯한 염전에 가둬진 바닷물 위로 하늘빛이 반사됐다. 적막감이 감도는 염전 곳곳을 흰색 장화를 신은 중년 부부가 돌아다니며 손발을 맞추자 금세 하얀 소금이 수북이 쌓였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독전’ 속 배경이 된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 염전마을의 풍경이다.
 
서해안에서 직선거리로 약 1㎞ 떨어진 하사리 염전마을은 1952년 무렵부터 개발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북쪽으로는 영광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법성면)가 있다. 짭조름한 굴비를 절이는 ‘섶간’을 할 때 쓰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마을 주민의 그을린 얼굴엔 고단함이 묻어있다.
 
하사리 염전마을에 들어서면 한동안 멍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변에 세워진 50기 안팎의 거대한 풍력발전기에 시선이 끌려서다. 100m가 넘는 기둥에 세 방향으로 뻗은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는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동이 틀 무렵이나 석양이 질 때 보면 염전 수면 위로 그림자가 져 더욱 신비한 기분이 든다.
 
영화 ‘독전’에서 카메라는 줄줄이 늘어선 풍력발전기를 천천히 비추며 염전마을의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하사리 염전은 마약 밀매 조직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속에서 마약을 생산하는 은밀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독전’에서 ‘태안의 소금공장’으로 등장하는 이곳은 도시와 동떨어진, 분리된 공간으로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해영 감독은 일상적인 장소를 통해 작품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염전을 마약 제조 장소로 선택했다고 한다.
 
염전에 있는 검은색 외관의 독특한 건축물은 음산하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영화 속에서 마약이 만들어지는 이곳은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쌓아두는 창고다.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얇고 납작한 검은색 고무를 바깥쪽에 외장재로 둘러 비와 바람을 막는다.
 
영광에는 총 559만㎡ 규모의 염전이 있다. 이 가운데 366만㎡가 염산면에 있고, 나머지 193만㎡가 백수읍 염전이다. ‘독전’은 백수읍 하사리 염전마을에서도 최대 규모인 84만2000㎡의 ‘광백사’ 염전 일대에서 촬영됐다. 광백사는 1953년 전남 1호 주식회사로 문을 연 ‘광백산업㈜’을 줄여 부르는 표현이다. ‘영광’에서 ‘광’을, ‘백수읍’에서 ‘백’을 따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전매청에서 근무하던 창업주가 주변인 2명과 함께 자본을 모아 설립했다.
 
석양이 깔린 염전에서 생각에 잠긴 ‘독전’ 속 배우 류준열. [사진 용필름]

석양이 깔린 염전에서 생각에 잠긴 ‘독전’ 속 배우 류준열. [사진 용필름]

‘독전’ 촬영은 겨울철 염전이 운영되지 않는 지난해 2월 무렵부터 약 한 달간 이뤄졌다. 염전은 10월부터 4월 초까지 휴업을 한다. 겨울철에 소금이 없어 빈 상태인 염전 창고와 주변에 세운 비닐하우스 등지가 주요 촬영 공간이다. 실제 사람이 사는 주택이지만 영화 속에서 경찰의 잠복 공간이 된 ‘소금공장’ 옆 콘크리트 건물 등도 영화의 배경이 됐다.
 
염전이 영화 촬영 장소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소금과 흰색 마약이 얼핏 보기에 비슷해 영광 천일염에 대한 괜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광백사로부터 염전을 임차해 소금을 생산하는 창고 주인 서성희(60)씨 역시 고심 끝에 영화 촬영 공간을 제공했다고 한다. 서씨는 “다른 영화도 아닌 마약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인 데다가 염전이 마약 생산 공장으로 그려진다고 해서 고민이 깊었다”고 말했다.
 
‘독전’은 499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흥행이지만, 정작 영화 촬영에 협조한 염전 임차인 상당수는 관람하지 못했다. 영광 지역엔 영화관이 없는 데다 지난 4월부터는 염전 운영이 다시 시작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서다. 제작진은 염전 운영자들이 인근 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영화 티켓을 선물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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