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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고작 2%의 서울 지하철역 빗물 제거기 정책

임선영 내셔널부 기자

임선영 내셔널부 기자

26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아이고, 그쪽은 미끄러워 이쪽으로 와.” 70대 노인이 동년배로 보이는 일행을 다급히 불렀다. 두 노인은 빗물로 축축해진 역사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가녀린 두 다리에 온 힘을 주고 있었다. 역사 안을 걷는 시민들의 손에 들린 우산에선 빗물이 흘러내렸다. 이날부터 전국에서 장마가 시작됐다. 서울에 장대비가 내리면서 지하철 역사까지 적셨다. 지하철역 입구에 있던 우산 비닐 커버 기계들이 지난달 1일부터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 23일 “1~9호선 307개 역에서 우산 비닐 커버를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대신 우산 빗물 제거기나 빗물 흡수용 카펫 등을 두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지난 4월 수도권에서 폐비닐 재활용 문제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비닐 커버는 즉시 ‘퇴출’됐지만, 서울시가 말한 ‘대책’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지하철역의 빗물 제거기 설치율은 약 2%에 불과하다. 1~9호선 307개 역 중에서 빗물 제거기를 설치한 역은 6개 역이다. 시청역·종각역·광화문역·답십리역·어린이대공원역·광명사거리역에 총 12대가 있다. 307개 역의 출구(평균 8개)마다 설치할 경우 빗물 제거기는 총 2456대가 필요하다. 대수로 보면 설치율은 약 0.5%밖에 안 된다.
 
1~8호선의 빗물 제거기 2216대를 설치하는 데는 약 17억7300만원이 든다. 이 돈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교통공사가 써야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예산을 편성해두지 않았는데, 서울시는 성급하게 발표부터 했다. 하루 평균 이용 승객이 약 777만명(1~9호선 합산)인 지하철역에서 무작정 비닐 커버부터 없앴다.
 
이제 와서 서울시는 책임을 교통공사에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닐 없이 빗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교통공사에서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공사 측은 “예산 문제로 당장 빗물 제거기를 추가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9호선 민간 운영사인 서울 9호선 운영주식회사는 빗물 제거기를 설치할 계획이 없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비닐 커버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몇 가지 대안을 시범 적용한 후 대책을 찾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성급한 발표로 생색만 내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도 서울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잘못을 고백하고 거둬들이는 게 시민 불편과 예산 낭비를 막는 현명한 행정이다.
 
임선영 내셔널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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