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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입, 문재인의 A4 용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요즘 워싱턴 특파원들은 고달프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북한 관련 미국 동향을 챙기느라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더욱 힘든 건 ‘트럼프 거짓말’과의 싸움이다.
 
지난 20일 밤(현지시간)도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네소타주 유세에서 돌연 “오늘 200구의 미군 유해를 돌려받았다”고 발표했다. 속보가 쏟아졌다. 중앙일보 데스크, 특파원 어느 쪽도 진짜인지 허풍인지 확신을 못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트럼프는 “송환 과정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나마 이건 나은 편이다. 싱가포르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자마자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17일에 김정은과 핫라인으로 통화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다음날 백악관은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후 ‘핫라인’은 깜깜무소식이다. 그 존재조차 확실치 않다. 늘 “가짜 뉴스는 반역적”이라고 비난하는 트럼프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가짜 발언’은 해명할 생각을 않는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트럼프는 집권 497일 동안 총 3251번의 거짓 또는 과장을 늘어놓았다”고 보도했다. 과장을 뺀 ‘거짓말’만 집계한 캐나다 일간지는 “하루에 최소 5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의 거짓말은 상습적이다.
 
위성사진으로도 아님이 드러났고, 심지어 매티스 미 국방장관까지 아니라고 부정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엔진 공장(동창리) 파괴를 일주일째 “지금 폭파하고 있다”고 외친다. 측근들이 “주한미군 수는 2만8500명”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돌아서면 “주한미군 3만2000명을 고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한다. 싱가포르 공동성명문도 자기 입맛에 맞게 수시로 바꿔 말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둔갑시키는 식이다. 오죽했으면 “그(트럼프)는 실제 자신이 싱가포르에서 뭘 합의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인터넷 매체 ‘복스’)는 말까지 나온다.
 
많은 이들이 향후 북·미 추가 협상의 주요 변수로 김정은의 통 큰 선 조치, 중국의 동향, 미 의회의 반발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난 트럼프의 입이라고 본다. 언제 “싱가포르 합의는 ‘가짜 합의’”라고 불을 뿜을지 모른다. 그 순간 북·미 관계는 ‘꽝’이다.
 
그가 싱가포르 회견에서 했던 말이 있다.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변명이라도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 상황을 컨트롤해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의 절제, 자제가 안 되는 입이 문제라면 우린 좀 정반대에 가까운 문제를 떠안고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한·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 옆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은 두 손에 A4 용지를 들고 이야기를 했다. 공동회견장에서야 그럴 수 있지만 양 정상이 짧게 대화를 나눌 때까지 자료를 보며 읽는 건 외교적으로 결례가 될 수 있다.
 
그 영상을 보며 상대국, 제3국 시청자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도 고려해야 한다. 지도자의 권위, 자질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사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평창올림픽 당시 특사로 온 펜스 미 부통령, 한정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과의 환담 때도 A4 종이를 들고 대본 읽듯 했다. 당시 미 배석자들의 어색했던 표정이 기억에 선명하다. 말실수를 줄이려면 확실히 자료에 의지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정상 간의 짧은 모두발언까지 외우지 못하거나, 소화해 발언하지 못하는 건 문제다. 지나친 과장과 거짓말, 지나친 신중함과 자료 읽기. 둘 다 문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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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