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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 잃은 여인의 복수, ‘미실’ 김별아의 첫 추리소설

김별아. [뉴시스]

김별아. [뉴시스]

“얼마나 대단한 주인을 모셨기에 이리 유세통을 졌나? 이놈의 가마에 정부인이 들었나, 숙부인이 들었나? 그래 봤자 뚫린 구멍 여덟인 건 상화방 논다니와 매한가지 아니더냐?”(35쪽)
 
“어리떨떨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가 자그마하고 바지런한 꼬마 사람이 되어 그녀의 바다를 헤엄쳐 건넌 직후였다.”(58쪽)
 
한국의 여성 작가 가운데 이처럼 거침없는 입담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26년 차 소설가 김별아(49)씨 얘기다. 도발적인 성장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미실』 등 앙상한 내면보다 힘 있는 서사로 승부해온 김씨가 새 장편 『구월의 살인』(해냄·사진)을 출간했다. 앞서 두 인용문은 물론 새 소설이 출처. 조선 효종 연간 수도 한양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소설 형식이다.
 
26일 기자간담회. 김씨는 “『조선왕조실록』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 기사에 등장하는 석연치 않은 여덟 줄이 소설의 출발이었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소설에 천착해온 김씨가 즐겨 활용하는 소설 수원지. 세종의 며느리 순빈 봉씨의 동성애를 다룬 2011년 장편 『채홍』 역시 출발은 ‘실록’의 짧은 문구였다. 추리소설이라는 점이 김씨의 이전 작품들과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추리물)에 도전하는 김씨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던 듯했다.
 
구월의 살인

구월의 살인

“세상에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재미있는 게 널려 있는데, 그에 맞서 문자로 전달하는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은 추리소설이리라고 생각했어요.”
 
진부하다시피 한 문학 위기의 체감, 그 타개책으로 추리소설을 생각해냈다는 얘기였다. 남에게는 진부해도, 당하는 소설가 입장에서는 뚫고 나가느냐 주저앉느냐, 실존의 위기인 법. 김씨는 “어려서부터 꿈이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끊임없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데 소설이라는 예술양식으로 과연 그게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형사 콜롬보를 연상시키는 늙수그레한 조선 탐정이 등장하지만 소설 속 사건은 단순 살인이 아니다. 지아비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여인 구월이 당대의 반사회조직, 지금으로 치면 조폭에 해당되는 검계(劍契)에 연계된다. 김씨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조선사회는 반상·남녀의 차별을 더욱 엄격히 하는 등 급격히 보수화의 길로 치닫는데, 그 와중에 시대에 반항하는 전초 같은 인물, 구월이 존재했던 것으로 상상했다”고 했다. 21세기 한국 상황에 어떤 식으로든 견줄 여지를 남기는 발언이다. 하지만 김씨는 “소설은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지나친 ‘사회적 독법’을 경계했다.
 
“현대의 삶은 얄팍한 반면 과거는 두텁게 느껴지기 때문에 역사소설을 자주 쓰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보충 사료와 함께 읽으면 조선사회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국보 1호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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