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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스토리] 파레이돌리아, 창조성과 음모론 사이

라파엘 로자노헤머 '파레이돌리움' 2018년

라파엘 로자노헤머 '파레이돌리움' 2018년

 
어두운 공간에 하얀 운무가 감도는 둥근 수조가 하나 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별안간 작은 분수 수십 개가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데, 다같이 보니 어렴풋하게 사람 얼굴로 보인다! 이건 지금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에 나와있는 작품으로, 첨단기술과 관객참여를 동반한 공공미술로 유명한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신작이다. 이 신비한 마술 같은 작품의 비밀은 관람객의 얼굴을 인식하고 분수를 제어해 그 얼굴을 재현하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로자노헤머는 이 작품의 제목 ‘파레이돌리움’이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는 인간 심리 현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파레이돌리아는 무작위적이고 불특정한 이미지에서 의미 있는 형상, 이를테면 사람 얼굴 같은 것을 찾으려 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구운 토스트 그을림에 그리스도 얼굴이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화성 사진을 보니 고원에 인간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지형의 명암이 그렇게 보인 것으로 딴 앵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사실이 아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로자노헤머는 이런 심리를 역이용해서 재미있고, 시적으로 아름다우며, 동시에 은근히 섬뜩하기도 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4계절' 1573년.

주세페 아르침볼도 '4계절' 1573년.

 
파레이돌리아를 역이용한 고전적인 예로는 16세기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유명한 ‘4계절’ 연작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4점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봄꽃, 여름 과일채소, 가을 과일채소, 겨울의 고목이 소년, 청년, 중년, 노년 남자의 얼굴을 형성하고 있는 기괴하고 흥미로운 연작이다. 이 그림들을 부분적으로 뜯어보면 꽃, 과일 등이 모여있는 모습이지만, 거리를 두고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의 옆모습이 슬며시 나타난다. 그러니까 정물화로 보였다가 초상화로 보였다가 하는 절묘한 이중 그림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얼굴들을 구성하는 식물들이 얼굴 형태에 맞게 깎이거나 변형되지 않고 각각 고유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합을 우리는 쉽게 사람 얼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아르침볼도의 절묘한 조합 솜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어떤 이미지에서건 사람 얼굴 찾아내기를 좋아하는 파레이돌리아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아르침볼도의 '4계절' 중 '여름'

아르침볼도의 '4계절' 중 '여름'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도 파레이돌리아를 역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보이는 그림을 그려냈다. 그는 이것을 '편집광적 비판 방법(paranoiac critical method)'이라고 했는데, 지속적인 망상에 빠져있는 편집증 환자가 일상의 이미지를 일반인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읽어내는 데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중 이미지라는 게, 사물을 물리적으로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단지 다르게 봄으로써 또 하나의 사물을 만들어내는 셈이니, 얼마나 창조적이냐고 달리는 말했다.
 
이처럼 파레이돌리아는 창조성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이상적 망상과도 연결된다. 파레이돌리아를 포함해서 모든 무관한 현상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 연관성, 규칙성을 찾으려는 심리 현상을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하는데, 스위스의 신경심리학자 페터 브뤼거는 이것이 망상과 창조성을 낳는 “동전의 양면”이라 했다. 
 
생각해 보면, 인류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것들의 연결 고리를 찾아나감으로써 학문과 예술을 창조적으로 발달시켜 왔다. 하지만 또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을 복합적이고 무작위적인 이미지와 현상에 투영해서 가짜 ‘기적의 이미지’나 억지 인과관계의 음모론을 만들어오곤 했다. 그 양면성을 인식하고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파레이돌리아가 진정한 창조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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