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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의 스타트업 스토리]허용이냐 규제냐…옴짝달싹 못하는 한국 스타트업들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지상파 방송사 대표들이 정부에 넷플릭스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KBS·MBC 등 지상파 방송사 대표들은 지난 22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내게는 '넷플릭스가 자기들의 밥그릇을 빼앗지 못하게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 달라'는 것으로 들렸다. 위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국내 통신사들과 제휴하며 국내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한국 스타를 기용한 콘텐트를 제작하는 등 방송사의 영역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가 능사인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나와서 성장하며 한국 젊은이들의 눈길을 빼앗는 동안 국내 방송사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카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앱 '풀러스'는 택시 업계와 갈등을 겪다가 수익성 악화로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사진 풀러스]

카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앱 '풀러스'는 택시 업계와 갈등을 겪다가 수익성 악화로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사진 풀러스]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한국에 서비스를 시작한 뒤 예상보다 가입자 수가 많이 늘지 않는 것을 보고 많은 언론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며 넷플릭스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당시 넷플릭스의 주가는 10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411달러다. 기업가치가 4배 올라가며 전 세계 미디어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 사이 한국의 미디어 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한국에서는 어차피 안될 거야"라며 애써 무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혁신에는 눈감고 현 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규제를 통해서 시장의 새로운 진입자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지난 4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의 제작발표회. 넷플릭스는 전세계 각 지역에서 오리지널 제작을 확대하며 방송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의 제작발표회. 넷플릭스는 전세계 각 지역에서 오리지널 제작을 확대하며 방송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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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가 한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2013년 8월이다. 이후 2014년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우버와 서울시, 국토교통부 등이 대립하고 택시 노조가 우버 반대 시위를 벌였다. 2015년 1월 심지어 서울시는 불법 유상운송행위를 신고하면 최대 100만원까지 포상금을 주는 '우버 파파라치' 조례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검찰은 불법 여객 운수 혐의로 우버를 기소했다. 결국 2015년 3월 우버는 주력 서비스인 우버 X를 한국에서 포기했다. 
 
이런 과정에서 비슷한 서비스로 교통 서비스를 바꿔보겠다는 꿈을 가졌던 '콜버스' 박병종 대표 등 많은 한국의 창업가들도 "역시 안되는구나"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또 3년 반이 지났다. 그나마 카풀 서비스로 다시 도전하던 국내 스타트업 '럭시'와 '풀러스'도 좌절했다. 럭시는 회사를 지난 3월 카카오모빌리티에 매각했고, 풀러스는 최근 직원의 70%를 구조조정하고 김태호 대표는 물러났다.
 
라이드쉐어링(승차공유) 서비스로 출발한 우버는 현재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에서 자율주행 시험 차량을 운행 중이다. [사진 우버]

라이드쉐어링(승차공유) 서비스로 출발한 우버는 현재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에서 자율주행 시험 차량을 운행 중이다. [사진 우버]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의 택시 서비스에 어떤 개선이 있었는가? 2015년 4월 시작한 카카오택시는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해주는 기능 이외에는 규제에 막혀 옴짤달싹 못하고 있다. 밤늦게 잡기 어렵고 여성들에게 불친절한 택시의 서비스가 지난 4년 간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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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기간 전 세계 라이드쉐어링(ride sharing) 회사들의 서비스 가치는 폭증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를 편리함 때문에 폭발적으로 많이 사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우버가 한국에서 우버X 사업을 포기하던 당시의 기업가치는 약 4조원이었는데 지금은 약 80조원으로 20배 정도 상승했다. 한편 2015년 2월 합병으로 탄생한 중국의 디디추싱은 우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급성장했다. 2016년 우버차이나까지 합병한 디디추싱은 이제 62조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공룡 스타트업이 됐으며 올해 안에 상장을 앞두고 있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한 그랩은 동남아를 무대로 성장하며 얼마 전 도요타자동차에 11조원 기업가치로 약 1조원을 투자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에 좀 너그러웠으면 지금쯤 우리에게도 이런 1조 가치 이상의 유니콘 스타트업이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현실은 택시 업계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그나마 있던 몇몇 시도는 모두 좌절된 상태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시장이 열릴 텐데 그렇게 되면 한국시장은 우버·디디추싱·그랩 같은 공룡 기업들의 나눠먹기 시장이 될 수 있다. 그때는 정부가 우리의 택시 업계를 보호해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우버나 디디추싱 등은 교통 경로 최적화,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엔지니어 수천 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런 새로운 좋은 일자리도 한국에서 생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승차공유 시장을 장악한 '그랩. [중앙포토]

동남아시아 승차공유 시장을 장악한 '그랩. [중앙포토]

 

이런 현상이 모든 업종에서 벌어지고 있다. 원격 의료가 규제로 한 치 앞도 못 나가는 동안 해외에서는 관련 스타트업들이 나와서 쑥쑥 크고 있다. 내가 미국에 살던 2009년 원격진료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던 텔레닥은 상장 이후 주가가 급등해서 4조원 기업 가치의 회사가 됐다. 미국 정부는 연방 공무원들도 텔레닥을 써서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가 지난 5월 알리페이 미래약국이라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약국을 오픈했다. 24시간 언제나 얼굴 인식기술을 써서 본인 확인을 한 뒤 결제하고 약을 살 수 있다. 신분증도, 지갑도 필요 없다. 약사와 원격 상담도 가능하다. 원격화상 투약기를 개발한 업체가 있는데도 약사들의 거센 반발로 6년째 도입이 안 되고 표류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IT 기반의 신유통을 펼치고 있는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5월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미래약국(未來藥店)을 선보였다. 24시간 문을 여는 이 약국에선 알리바바의 얼굴인식 기술로 신분증 없이 본인 확인을 하고 간편결제인 알리페이로 약을 구입할 수 있다. 약사와 화상통화를 통한 원격 상담도 가능하다. [알리페이 홍보영상 캡쳐]

IT 기반의 신유통을 펼치고 있는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5월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미래약국(未來藥店)을 선보였다. 24시간 문을 여는 이 약국에선 알리바바의 얼굴인식 기술로 신분증 없이 본인 확인을 하고 간편결제인 알리페이로 약을 구입할 수 있다. 약사와 화상통화를 통한 원격 상담도 가능하다. [알리페이 홍보영상 캡쳐]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 방문해 10년 만에 미국 유학 시절 중국인 단짝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나는 더는 운전을 하지 않아"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고급 차를 즐겨 운전하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디디추싱을 부르면 바로 차가 오는데 더는 운전과 주차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테슬라를 집에 두고도 요새는 거의 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의 부인은  "가까운 곳에 갈 때는 공유 자전거를 집어 타면 되고, 알리페이 덕분에 지갑도 필요 없으며,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뭐든지 바로 온다"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생활이 참 편리해졌다"고 내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것들이 안 된다고 하니 의외라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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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시청 인근에서 열린 택시기사들의 카풀 반대 집회. 이들은 자가용을 이용한 카풀 앱이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카풀 앱 영업 중단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시청 인근에서 열린 택시기사들의 카풀 반대 집회. 이들은 자가용을 이용한 카풀 앱이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카풀 앱 영업 중단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목적에서 나온 수많은 규제, 잠재적인 사고 가능성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아예 어렵게 하는 온갖 복잡한 규정들. 이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이제 변화를 수용하려는 마음이 없다. 갈수록 각박해지니 악착같이 내 것을 지켜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더구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되면서 국민 마음속에는 새로운 창업가를 응원하기보다 기존 밥그릇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새로운 시도를 불신하며 안전성을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공세에서 변화하지 않는 방송국을 지켜낼 수 없는 것처럼 새로운 시도를 수용하지 않으면 기존 산업도 도태된다. 결국 일자리도 계속 감소할 뿐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 매년 현실화되는 세상이다. 예전에 안됐다고 해서 지금도 안된다는 법이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촘촘한 규제는 새로운 혁신가뿐만 아니라 기존 기업들의 혁신도 속박하는 문제도 있다. 언제까지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jlim@startupal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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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