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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30년史②]8학군 저물며 전성시대, 시작은 ‘각종학교’

1976년 1월 열린 결린 서울 경기고 졸업식. 한 때 경기고는 해마다 300명 안팎의 서울대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일컬어졌다. [중앙포토]

1976년 1월 열린 결린 서울 경기고 졸업식. 한 때 경기고는 해마다 300명 안팎의 서울대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일컬어졌다. [중앙포토]

국내 한 스타트업 기업의 임원인 이모(39)씨는 1994년 가을 고교 진학을 앞두고 큰 고민에 빠진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동안 전교 1·2등을 했던 그는 평범한 일반고보다는 우수 학생이 모여 있는 학교로 진학하길 희망했죠. 하지만 그가 살던 곳은 평준화 지역이었기 때문에 소위 ‘뺑뺑이’로 진학 고교가 정해졌습니다. 지금처럼 선호하는 학교를 골라 지원할 수 있는 ‘고교 선택제’가 시행되기 전이었으니까요.
 
 담임선생님은 과학고 진학을 제안했지만 이씨는 과학에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마침 지역에 설립된 신생 외고를 가기로 했습니다. 당시 외고는 대원외고를 앞세워 입시 명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죠. 특히 전국의 모든 외고가 공통 시험을 치러 합격자를 가렸기 때문에 평준화 지역에선 소위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들이 외고로 몰렸습니다.  
 
 실제로 그의 고교 동창들은 그 지역의 다른 일반고 학생들보다 월등한 입시 성적을 냈습니다. 한 반에서 20명 가까운 학생들이 서울에 위치한 소위 명문대에 합격한 것이죠. 이씨 역시 명문대 중 한 곳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인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우리 과의 3분의 2가 외고 출신이었다”며 “비어문계열인 다른 과도 외고 졸업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고 말합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외고의 대표격인 대원외고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합니다. 1998년 대원외고를 졸업한 김모(39)씨도 “일부를 제외하면 친구들 대부분이 ‘SKY(서울·고려·연세대)’에 입학했다”고 회상합니다. 그 때문에 당시 대학 신입생들 사이에선 “대원외고 졸업생은 3분의 1씩 ‘SKY’를 나눠 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실제로 이 해 대원외고는 400여명의 졸업생 중 163명이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이처럼 1990년대는 대원외고를 필두로 한 외고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대일·한영 등 서울의 외고뿐 아니라 이제 갓 생겨난 지방의 외고들까지 그 지역의 입시명문으로 급부상했죠. 하지만 외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높은 위상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중앙포토]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중앙포토]

 1984년 처음 외고로 문을 연 대원·대일의 정식 명칭은 ‘외국어학교’였습니다. 정식 고교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각종학교’였죠. 지금처럼 성적이 월등한 학생들이 진학하기보다는 외국어에 소질이 있거나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입시 성적은 서울의 전통적인 명문고에 훨씬 못 미쳤죠.
 
 1986년 대원외고에 입학한 A씨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처음 대원외고에 간다고 했을 때 중3 담임이 말렸어요. 당시 잠실에 살았는데 가만있으면 ‘뺑뺑이’로 동네의 좋은 학교에 가는 걸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식이었죠. 주변에서도 저를 특이하게 생각했고요.” 실제로 당시 서울의 명문은 경기·서울·휘문 등 강남에 위치한 ‘8학군’ 일반고들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현재 위치로 옮기기 전 경기고의 화동 교사 모습. [중앙포토]

서울 강남구의 현재 위치로 옮기기 전 경기고의 화동 교사 모습. [중앙포토]

 ‘8학군’ 일반고는 역사가 오랜 전통의 명문 학교들입니다. 특히 평준화(1974년) 이전 이 학교들은 시험을 쳐서 신입생을 받았기 때문에 전국에서 ‘엄선’한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학 입시 성적도 어마어마했죠. 1970년대 전후로 경기고는 연간 30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냈습니다. ‘뺑뺑이 세대’(평준화 이후 고교생)가 입학하는 1977년까지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평준화 후 고교 선발시험이 없어지고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주거지와 가까운 학교로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기존 명문 학교에 대한 선호와 기대는 여전했기 때문에 해당 지역으로 이사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정부가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경기고 등 명문 학교들을 대거 강남으로 이전시켰는데, 이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강남으로 몰려오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8학군’이란 명문학교 집단이 생겨났고요. 중학교 때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다수 ‘8학군’에 몰리면서 이곳 학교들의 입시 성적도 계속 높아졌습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1992년 외고가 과학고와 같은 ‘특목고’로 지정되면서 판세가 바뀝니다. 일반고 모집에 앞서 학생을 먼저 선발할 수 있고, 별도의 시험을 치러 입학생을 가렸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리게 된 것이죠.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평준화 지역에선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과학고와 외고뿐이었다”며 “이 때부터 외고 입시를 위한 전문 학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또 시기적으로도 1990년대는 세계화가 시작된 원년입니다. 냉전의 해체와 독일 통일 이후 1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는 ‘국제화’를 정부의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글로벌화’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죠. 또 1989년 이뤄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는 자연스럽게 외국어 교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외고 설립 붐이 일어납니다.  
전국 외국어고 학부모들이 정부의 외국어고 폐지 방침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전국 외국어고 학부모들이 정부의 외국어고 폐지 방침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외고 전성시대도 2000년대 이후 꺾이기 시작합니다. 외고가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과열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게 된 것이었죠. 과연 지난 10여 년 간 외고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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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