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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도 훈방" 은밀히 범죄 권하는 '고액 알바'의 함정

보이스피싱 일러스트.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일러스트. [중앙포토]

 
일자리를 찾던 30대 초반 무직자 김성범(가명)씨는 지난 5월 유명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순 물건 배달 업무였지만 한 건당 3만~5만원씩, 주 5일 근무에 월 300만원 이상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범죄에 연루될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구직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라온 내용이니 믿을만하다 싶어 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곧 걸려온 전화. 사람을 구한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남성은 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청 불법적인 일은 아니구요, 편법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랑 주고받은 문자는 바로 삭제하시구요." 
 
김씨가 "네"라고 조용히 답하자 이 남성은 "혹시라도 현장에서 경찰관한테 잡히시면 그냥 모른다고, 오늘 하루 알바 광고보고 왔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황상 증거도 없고 사기를 칠려고 했던 것도 아니니 바로 훈방되실 거에요"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걸려도 무조건 훈방"이라며 카드 배달 업무에 지인을 끼어들이려 피의자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 서울은평경찰서]

"걸려도 무조건 훈방"이라며 카드 배달 업무에 지인을 끼어들이려 피의자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 서울은평경찰서]

 
'걸려도 무조건 훈방'이라는 말을 들은 김씨는 고수익 알바에 뛰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취업준비생까지 모두 비슷한 설명을 듣고 이 알바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업무는 신용(체크)카드 배달. 하루에 10건 정도 물건을 옮기면 매일 30만~50만원씩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며칠 뒤 이들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다. 형량은 징역 3년 이하. 고수익 알바의 정체는 중국에 총책을 둔 대환대출 전화금융사기단의 인출용 카드 수거책이었다. 체포된 김씨는 현장에서 만난 경찰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지만 압수된 휴대폰에선 증거들이 쏟아졌다. 
 
카드 배달 업무를 했던 피의자가 대출 사기단과 주고 받았던 위챗 메시지 화면. [사진 서울은평경찰서]

카드 배달 업무를 했던 피의자가 대출 사기단과 주고 받았던 위챗 메시지 화면. [사진 서울은평경찰서]

서울 은평경찰서는 24일 대환대출을 빙자하여 중국에 총책을 두고 3억원 상당을 편취한 전화금융사기단 4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카드 인출책, 수거책, 카드와 통장을 빌려준 양도자까지 46명이 검거됐고 이중 김씨 등 8명이 구속됐다. 피해자는 30명으로 피해액은 1인당 900만원에서 3000만원에 달한다.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사기 일당들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주겠다는 대환대출을 제안하며 피해자들에게 수백~수천만원의 입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카드 금리를 낮춰줄테니 일부 금액을 일시불로 상환하라고 요구한 뒤 입금이 되면 잠적하는 방식이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신종 보이스피싱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환대출을 받기 위해 기존 대출금을 상환할 경우에는 상환계좌가 해당 금융기관 명의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를 포함한 10~20대 청년들은 카드 수거책 업무를 맡았다. 사기단에게 대가를 받고 자기 명의의 카드와 통장을 양도한 또 다른 피의자를 만나 물건을 받은 뒤 해당 계좌로 입금된 피해자들의 돈을 인출하는 '인출책'에게 전달하는 업무였다.
 
이들은 배달을 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매일 입금되는 돈의 액수를 볼 때마다 일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꼬리가 길어졌고 결국 현장에서 체포됐다.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수거책이 카드를 지하철 택배보관함 등에 놓고가면 추적이 시작된다"며 "인출책이 돈을 통장에서 빼내는 순간에 수거책과 인출책을 모두 체포해 현장에서 증거를 압수했다"고 말했다.
 
'고액알바'의 경우 금융사기 조직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캡처 화면은 기사와 상관 없음. [박태인 기자]

'고액알바'의 경우 금융사기 조직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캡처 화면은 기사와 상관 없음. [박태인 기자]

이 관계자는 "잡아떼면 훈방이라는 사기단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며 "단순 배달 업무를 한다고 변명을 해도 3~4일 이상 범죄에 연루되면 범행 사실을 인지한다고 볼 수 있어 이번 경우처럼 구속되고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실제 이번 사건에서 검거된 수거책 5명 중 3명이 구속됐다. 수거책들은 매일 휴대전화 메시지를 지우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압수된 휴대전화에서 나온 증거물은 구속의 결정적 사유가 됐다. 
 
설령 메시지를 지운다고 해도 디지털포렌식 기법 등을 통해 복원이 가능하다. 잡아뗀다고 훈방을 받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속을 피했다고 해도 법정에서 무죄를 받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감형마저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지능 수사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를 통한 ‘단기 고수익 알바’ 등의 구인 광고는 전화 금융 사기 조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일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될 수 있으므로 특히 청년들에겐 특별한 주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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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