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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수엔 있고 한국 보수엔 없는 것

美 건국 아버지들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나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의 독립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의 독립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18세기 중엽 영국령이던 현재의 미국 버지니아 주엔 모험심 강한 소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소년의 꿈은 탐험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며 집안 농사를 책임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모험가가 되고 싶은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탐험하겠다고 마음 먹었죠.  
 
  소년에게는 한 명의 멘토가 있었습니다. 이복형인 로렌스입니다. 14살 많은 로렌스는 소년에겐 삶의 모델이자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영국군 장교인 로렌스를 따라 소년도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세 되던 해 형을 따라 군복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입대한 지 몇 달 만에 형 로렌스는 전사하고 말죠.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 이 책은 미국 독립 여론의 불씨를 당긴다. [네이버]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 이 책은 미국 독립 여론의 불씨를 당긴다. [네이버]

 형의 죽음을 맞은 소년은 그때 비로소 어른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상실의 아픔을 딛고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며 열심히 군생활을 했습니다. 특유의 집념과 열정으로 전쟁에서 활약했지만 식민지 출신이 군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그는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버지니아 주의 하원의원이 됩니다.  
 
 정치인이 된 그는 영국의 부당한 식민통치 현실에 눈을 뜹니다. 뜻이 맞는 의원들과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1774년 ‘대륙군(Continental Army·독립군) 총사령관이 됩니다. 그의 군 시절 경험은 이때부터 진가를 발휘합니다. 1775년 시작된 전쟁에서 독립군의 지휘를 맡아 혁혁한 공을 세우죠. 그리고 1783년 미국은 13개 주의 연방국가로 독립을 인정받습니다.  
버지니아주 군복을 입고 있는 조지 워싱턴. [네이버]

버지니아주 군복을 입고 있는 조지 워싱턴. [네이버]

 독립 영웅인 그는 6년 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바로 미국의 국부(國父)인 조지 워싱턴(1732~1799)입니다. 그는 링컨·루스벨트와 더불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핵심은 미국의 정신과 가치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워싱턴의 철학은 미국을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민지 출신이어서 차별을 받아야 했던 경험부터,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까지 워싱턴이 평생 추구한 가치는 자유였습니다.  
 
 워싱턴은 자유를 구속하는 노예제에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노예제를 찬성하는 남부 사이에서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정치적으론 이를 강하게 주장할 순 없었습니다. 점진적인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던 워싱턴은 죽으면서 자신의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주고 유산까지 남겨줬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미 합중국 초대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는 우편엽서. [네이버]

조지 워싱턴의 미 합중국 초대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는 우편엽서. [네이버]

 워싱턴뿐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정치적 가치도 자유였습니다. 독립전쟁 또한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었죠. 이 같은 정신은 '파운더스(founders·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패트릭 헨리(1736~1799)의 연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에 잘 집약돼 있습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영국·프랑스의 보수층인 부르주아가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입니다. 부르주아는 절대왕권과 맞서 싸우며 법의 지배와 삼권 분립 등의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기본이라고 믿는 선거제도와 정당정치 등을 가능케 했고요. 이처럼 민주주의 역사에는 시민의 자유를 위해 최전방에서 투쟁했던 부르주아, 즉 ‘보수주의자’가 있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조각해 놓은 거대 석상 '마운트 러시모어'.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조각해 놓은 거대 석상 '마운트 러시모어'.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처럼 보수주의의 본질에는 자유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과 개방·관용 등의 가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때 국부(國富)가 가장 커질 수 있으며(애덤 스미스),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유가 보장돼야 사회가 바로 선다(에드먼드 버크)는 이론도 모두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미스와 버크는 모두 경제·정치 분야에서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는 어떻게 보수의 핵심 이념이 됐을까요? 왜 보수는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는 걸까요. 지난 ‘인간혁명’에서 보수와 진보는 그 자체가 이념이 아니라 일종의 ‘성향과 태도(attitude)’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수·진보는 그 자체가 내용이 아니라 특정한 내용물을 담는 그릇”(김의영 서울대 교수)이라는 것이죠.  
보수주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중앙포토]

보수주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중앙포토]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설명에 따르면 진보는 소수의 엘리트가 미래를 설계하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꿔 갈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반면 보수는 세상이 설계도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전통’은 영국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의 말처럼 “어느 한 순간,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개인의 성취가 쌓이고 모이면서 한 사회의 문화적 유산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를 위해선 “시민 개개인의 개별성이 존중되고 이들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유주의적 토양이 마련돼야”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 [위키피디아]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 [위키피디아]

 그렇기 때문에 보수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가 자유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자신이 설계한 이상대로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유산보다는 인위적으로 새롭게 만든 제도와 규칙을 더욱 필요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개별성보다는 공동체의 목표가 더 중시되고, 아울러 자유보다 평등에 큰 방점을 찍습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균형 있게 사회 전반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20대 국회의 하반기 국회의장 후보인 6선의 문희상 의원은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자유’의 가치를 생명으로 하는 보수와 사회가 존재하는 한 진보가 강조할 수밖에 없는 ‘평등’의 가치는 영원히 함께 유지돼야 한다”고 말합니다.(중앙일보 2018년 6월 17일)
미국 독립선언문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권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를 조직했으며, 국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어떤 형태의 국가든 이 목적을 파괴할 때는 언제든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다
 즉, 보수에게 ‘자유’는 '사상과 가치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다시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들 또한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전통 아래 나라를 세웠습니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을 지낸 안병진 교수(미국정치학)는 “근대 혁명은 훗날 좌파의 전통이 된 프랑스혁명과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원조가 된 미국의 독립혁명으로 나뉜다”며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은 오늘날 보수주의자의 효시”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정신이 잘 드러나는 게 1776년 발표된 독립선언문이죠. 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천부인권,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 잘못된 국가는 전복할 수 있다는 저항권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시민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치로 나온 게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이고요.

미국 수정헌법 1조
  종교와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은 건국 때부터 자유주의적 전통 아래 세워진 나라입니다. 유럽의 좌파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정치 지형은 이념 자체가 ‘우클릭’ 돼 있죠. 실제로 유럽에선 ‘사회주의’ 정당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비주류죠. 
 
 안병진 교수는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유럽과 달리 아일랜드계·유대계 등 민족별로 분열돼 있어 노동자들이 계급화된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노력만 하면 누구나 계층 이동이 가능한 ‘아메리칸 드림’은 이런 계급 구조를 공고화하기에 어려운 환경이었죠.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파 앤드 어웨이'. 다양한 이주민들의 갈등과 '아메리칸 드림'을 다뤘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파 앤드 어웨이'. 다양한 이주민들의 갈등과 '아메리칸 드림'을 다뤘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

 결국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겐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며 이 같은 정신은 지금까지 보수주의의 가장 근본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를 강조하는 파운더스의 사상이 명확한 정치철학으로 자리 잡은 것은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 때입니다. 그는 보수당의 원조인 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연방주의를 반대하며 대신 각 주의 독립과 개별적 운영을 강조했습니다.

 
 연방의 힘이 세지면 영국처럼 중앙집권적 권력이 탄생하고 이는 또다시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제퍼슨은 “이상적인 정부는 가장 적게 간섭하는 정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파운더스의 자유주의 정신은 훗날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 폐지에 이릅니다.

미국 남북전쟁.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 J S 스미스 & Co의 1890년 10월 인쇄본.   [위키피디아]

미국 남북전쟁.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 J S 스미스 & Co의 1890년 10월 인쇄본. [위키피디아]

  이처럼 워싱턴부터 제퍼슨까지 미국의 건국 과정과 그에 담긴 정신을 살펴본 이유는 보수의 본질이 자유주의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도 표면적으론 자유를 강조합니다. 역대 정당들이 당명 앞에 ‘자유’라는 표현을 즐겨 쓴 이유도 그 때문이죠. 이승만 시절의 자유당부터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 이후 김종필이 독립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또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현재의 자유한국당까지 자유는 보수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은 과거의 보수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자유한국당엔 정말 ‘자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즉,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강조했던 것과 같은 자유주의적 전통과 문화가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에게 녹아 있느냐는 이야기죠. 물론 보수 정당이 시장의 자율성, 즉,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의 입장을 보이긴 합니다.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중앙포토]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중앙포토]

  그러나 시민 개인의 자율과 개별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자유, 그 어떤 사상과 표현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준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자유를 비롯해 그 안에서 파생되는 관용과 개방, 다양성의 가치를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이 과연 생명처럼 여기고 있을지 의문이란 뜻입니다.

 
 오히려 소련과 동독 등 공산권이 무너진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구시대의 프레임만 부여잡고 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의 보수 정당들은 원활한 토론과 커뮤니케이션 문화,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 등 자유주의적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에는 왜 미국 보수엔 필수인 '자유주의'가 없었던 걸까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서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에겐 자유주의가 왜 빠져 있었을까요.다음 '인간혁명'에서는 보수를 재건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서 자유주의가 왜 중요한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정신과 가치를 바로 세웠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정신과 가치를 바로 세웠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끝으로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미국이 독립했을 때 사람들은 전쟁 영웅 워싱턴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거를 통한 대의제를 제안했고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1797년엔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대통령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때도 국민은 그의 연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국민이 있었고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퇴진을 선택했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퇴임 직후인 1798년 다시 프랑스와의 전쟁 가능성이 커지자 그는 국민의 부름대로 다시 총사령관 자리를 수락합니다. 일흔에 가까운 고령이었지만 그는 “내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피를 조국에 바치겠다”며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죠. 다행히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듬해 그는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의 목표가 자신의 영달이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할 때 가능한 일이죠. 권력은 소금물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갈증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취해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보수의 재건을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제일 먼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요.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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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성적·스펙보다 협동·배려·공감 등의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더불어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를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 기조발표를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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