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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3) | 이상선 재 베트남 가이드] 감정 노동도 때로는 천직이 될 수 있어요

베트남서 여행 가이드…ROTC 출신으로 금융사 간부로 일하다 명퇴
이른바 ‘백세시대’입니다. 인생의 가을은 성공보다 행복을 추수하는 시절입니다. 수명 연장으로 퇴직을 해도 일해야 하는 ‘반퇴시대’이기도 합니다. 본지가 세컨드 라이프를 잘 개척한 이 땅의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이상선씨가 일시 귀국해 경희궁에서 프즈를 취했다. / 사진:전민규 기자

이상선씨가 일시 귀국해 경희궁에서 프즈를 취했다. / 사진:전민규 기자

 
“돈보다 시간이 없어 해외 여행을 못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 가족·친지·동료와 여행 오신 분들이 즐겁게 다니실 때, 그분들의 소중한 순간을 제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들 때 보람을 느끼죠.” 베트남 다낭을 중심으로 한국 여행객 가이드로 일하는 이상선씨는 “손님이 맛보는 즐거움이 가이드로서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는 지금 저에게 가장 맞는 일입니다. 50대 중반에 모아 놓은 돈도, 기술도 없어 자영업을 할 수도, 재취업을 할 수도 없어요. 가이드 일에 대한 열정, 이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습니다. 나이 들어 얽매이는 것도 내키지 않고 나름 이 일을 사랑하니, 천직이 따로 없죠.” 그는 “본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 8년차 가이드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일하다 손님이 줄어 베트남 다낭으로 넘어왔다. 전북 남원에서도 꽤 떨어진 산골 출신인 그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했다. 5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86학번으로 ROTC로 군복무를 마친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전공을 살린 취업의 문은 좁았다. 동아생명에 합격했지만 회사에서 군 시절 지휘관 경험을 살려 영업을 해 보라고 권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에 활동적이라 영업이 적성에 어느 정도 맞았습니다. 하지만 실적으로 말해야 하는 일의 특성, 첫 보험료를 직원이 대신 내는 ‘가라(허위)’ 계약 등으로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어요. 그런 어려움을 술로 이겨냈고 가족과는 점점 멀어졌죠.”
 
“사람들고 잘 어울리고 말하기 좋아해”
2000년 동아생명이 금호생명(현 KDB생명보험)에 흡수합병된 후 실시된 인력 구조조정 당시 그는 명퇴를 결심했다. 과장 직급의 영업소장 시절이었다. 회사는 영업 조직의 말초신경 격인 보험설계사 인력은 유지했지만 내근직인 영업소장 등은 거의 절반가량 감축했다. “영업 스트레스, IMF 체제 하의 기이한 영업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탈출구로 명퇴를 선택했죠. 그래도 젊었기에 나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건성으로 구직 활동을 하는 한편 실업급여로 몇 달 버텼다. 금융권 출신의 대졸자로서 하향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3년 가까이 친척이 하는 인테리어 사업을 거들다 동생이 하는 카센터에서 정비 일을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기술을 습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정비사 자격증을 따는 데 2년이 걸렸다. 작은 정비 실수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 시급 5300원의 시급직으로 들어갔다. 야근에 주말까지 일했지만 월 수입이 200만 원이 안 됐다. 무엇보다 안 해본 육체 노동이 힘겨웠다. 자부심에 찬 장교 출신 사무직이었던 경력 탓에 마음에 분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40대 중반,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군 시절 시작한 테니스가 그 시절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무렵 퇴근 후 테니스 경기를 하러 나갔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친구로부터 “동생이 태국에서 가이드를 하는데 가이드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암실과도 같은 암울한 현실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듯했다.
 
오직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 노년의 아버지, 사춘기였던 중3 아들. 아들은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직장 생활을 하던 아내가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극구 말렸다. 아내를 설득해 2년 동안만 한다는 ‘약조’를 하고 그는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거기서 물정 모르고 들어간 한 여행사에서 9개월 간 공부만 했다. 준비는 됐지만 일이 없었다. 들고간 돈이 떨어져 철수하려다 노크한 다른 여행사에서 그는 첫 일감을 받았다. 그는 손님의 소중함, 일의 가치와 의미를 새겼다. 보험사 영업직 등 국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가이드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연륜’이 있다 보니 손님들과 공유할 것도 많았다. “가이드가 저로서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젊어서 해외에 나갔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겠지만 40대 중반 산전수전 다 치렀기에 손님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죠. 20대 중반에 시작했다면 이런저런 유혹이 많은 외국에서 자기 관리를 잘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는 직업으로서의 가이드의 장점으로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 정년에서의 해방,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단점은 불안정한 수입,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점, 후진국의 경우 열악한 생활여건 등이다. 일감이 줄어드는 비수기면 일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는 아들이 군에 입대할 때 동행하지 못했고, 친척·친구의 애경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나라에 따라 신분 보장이 취약하거나 공안의 단속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속사 없이 팀 단위로 일을 맡을 경우 조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롭게 쉬고 여가도 즐길 수 있죠. 70대에도 일 할 수 있어 베트남엔 월남전에 파병됐던 한국군 출신 가이드도 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오시는 분들을 상대하다 보면 저도 즐거워집니다.”
 
가이드는 정년 없는 프리랜서
가이드는 감정 노동자다. 자신의 경험과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처음 보는 가이드를 불신하고 뒤에서 험담을 하는 손님들도 있다. 일정상 불가피하게 식당을 변경했는데 돈벌이 때문이라고 곡해하기도 한다. 여행 상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 예정대로 비행기를 띄워야 하다 보니 원가 이하의 상품도 적지 않다. 이 경우 가이드는 회사 택시 소속 기사의 사납금처럼 원가와의 차액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면 선택 관광과 쇼핑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이드에게 필요한 자질로 그는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를 첫손에 꼽았다. 인내심과 상식, 해당 지역에 대한 공부도 필수라고 말했다. “휴양지는 한 달, 유적지는 석 달가량 준비합니다. 역사·문화·종교 등 인문학적 지식으로 무장해야 돼요. 손님들이 직업 배경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하시는데 깊이 있는 답변을 하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돼요. 그 시대의 유행과 트렌드도 따라잡아야죠.”
 
그는 인생 2막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관광버스에 올라 고국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현지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틈틈이 자신의 경험을 스토리텔링한다. 당초 그의 외국행에 반대했던 아내가 합류해 8년 간의 홀아비 생활도 청산했다. 그는 “그동안 혼밥에 질렸고 아플 때면 고독사를 떠올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손님을 만나면 지금도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이국에서의 세컨드 라이프를 그분들과 여정을 함께하면서 서로 인생을 나눌 기회로 받아들여요.”
 
이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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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