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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리그 사라진 자리 신예들 '새 판' 짜다

2019 봄·여름 런던 남성 패션위크 가보니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의 2019 봄·여름 컬렉션. 꾸며진 몸과 실제의 몸을 테마로 상상력 넘치는 런웨이를 선보였다. [EPA=연합뉴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의 2019 봄·여름 컬렉션. 꾸며진 몸과 실제의 몸을 테마로 상상력 넘치는 런웨이를 선보였다. [EPA=연합뉴스]

지난 9~11일(현지시간) 열린 2019 봄·여름 런던 남성 컬렉션은 ‘악재’ 속에 시작됐다. 런던이 밀라노나 파리 등 다른 패션위크에 비해 대표 브랜드가 적었던 건 기정사실. 그런데 최근 버버리·JW앤더슨처럼 이름 있는 브랜드들이 남녀 컬렉션을 통합하며 빠진데다, 한창 주목받던 ‘크레이그 그린(Craig Green)’마저 이번 시즌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남성복 박람회 피티워모로 쇼장을 옮겨버렸다. 행사 기간 역시 예년에 비해 하루가 더 줄어 단 사흘의 행사로 줄어들었다. 이쯤되니 ‘볼 것 없는 패션위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대두된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달랐다. 동일한 출발선에 함께 선 이들이 주전 선수가 되자 이름값 대신 실력으로 대결하는 신진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 ‘새 판’에서 바이어·프레스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끼 많은 무서운 신예 ‘앙팡 테리블’이 한순간에 기성의 패션 플랫폼을 장악한, 아니 장악을 시작한 현장이었다.  

‘코트웨일러(Cottweiler)’의 백스테이지 모습. 초자연적인 ‘치유의 의상’을 테마로 한 컬렉션에서는 커다란 배낭을 든 채 어디론가 떠나는 스타일링을 연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트웨일러(Cottweiler)’의 백스테이지 모습. 초자연적인 ‘치유의 의상’을 테마로 한 컬렉션에서는 커다란 배낭을 든 채 어디론가 떠나는 스타일링을 연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뷔 3~5년차 실력 무장한 신진들 속속 등장
패션위크 사흘간, 쇼와 프레젠테이션이 한 시간 단위로 열렸다.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일단 유명 디자이너들과 끈끈한 인연이 있는 디자이너들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어콜드월(A-COLD-WALL*)의 디자이너 사무엘 로스가 그 중 하나였다. 2015년 브랜드를 론칭한 신예지만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위한 LVMH 프라이즈’에서 올해 결선에 오를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여기에 세계 패션계에 막강 영향력을 자랑하는 미국 뮤지션이자 디자이너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한 이력이 더해지며 단박에 주목 받았다. 마틴 로즈(Martine Rose) 역시 이미 스트리트 패션의 막강 신예로 인정받고 있지만, 파리 패션 하우스인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에서 컨설턴트로 활약한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놓치지 말아야 할 쇼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하지만 패션위크 내내 화제몰이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크러칠리(Edward Crutchley)였다. 디올 남성복 디자이너인 킴 존스의 친구이자 디올 이전 루이비통 시절부터 협업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 왔다는 ‘배경’이 현장에서 확인된 것. 존스가 자신의 파리 쇼를 앞두고 “친구를 응원한다”면서 패션쇼장을 깜짝 방문하자 후속 기사까지 쏟아졌다.  
 
셀레브리티만큼이나 이번 패션위크에서 강력한 후광 효과가 된 건 ‘뉴젠(NEWGEN)’이라는 타이틀이었다. 뉴젠은 영국패션협회(BFC)가 1993년부터 시작한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육성 프로그램. 패션쇼 지원은 물론이고 일단 선정되고 나면 업계 전문가들이 멘토로 나서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패션위크를 앞두고도 협회에서는 뉴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들’로 사전 자료를 내보냈다. 그 덕에 어콜드월(A-COLD-WALL*),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 리암 호지스(Liam Hodges), 퍼 고테손(Per Gotesson), 피비 잉글리시(Phoebe English)의 이름이 족집게 과외처럼 기억됐다.  
 
에드워드 크러칠리 (Edward Crutchley)

에드워드 크러칠리 (Edward Crutchley)

리암 호지스(Liam Hodges)

리암 호지스(Liam Hodges)

특히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의 경우 뉴젠의 가장 강력한 수혜자였다. 스탠딩 자리까지 꽉 찬 패션쇼장, 쇼가 끝나자 끝없이 터져나오는 박수와 환호는 신예의 무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2015년 졸업(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런던 패션 스쿨)과 동시에 브랜드를 론칭했다거나, ‘2018 LVMH 프라이즈’ 결선에 오른 내공만으로 얻은 인기는 아닐 터다. 학창시절부터 클럽을 열어 학비를 마련했고, 지금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청년에게 보내는 남다른 응원이었다.  
 
런던 컬렉션은 타국 출신 디자이너들에게도 기회의 장이었다. 자국의 전통을 내세우며 다양성을 부각했다. 전통 옷감으로 데님·니트 등의 스트리트 웨어를 만들겠다는 홍콩·핀란드 출신의 듀오 디자이너 팀인 카와키(Ka Wa Key)에 이어 이란 출신의 파리아 파르자네(paria farzaneh)는 “잘못 인식된 중동과 이란의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혀 주목받았다. 이란 전통의 무늬를 전면에 내세운 작업복 스타일의 셔츠와 반바지, 스니커즈를 선보인 그는 “컬렉션을 통해 단지 몇 명이라도 이란의 진수를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런던 무대에 처음 선 한국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블라인드니스(Blindness) 역시 이런 흐름과 함께 했다. 첫사랑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브랜드 특유의 주름과 진주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 안에 한국적 디자인까지 녹여냈다. “긴 주름 자락은 한복의 고름을 응용하는 식으로 한국의 문화를 담으면서도 세계적 감성과 함께 가는 패션을 선보이고 싶다”는 게 박지선 디자이너의 설명이었다. 블라인드니스는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영국패션협회와 체결한 업무협약(MOU)에 따라 양국 디자이너 교류의 첫 주인공이 됐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는 특유의 컬러풀한 특징을 살리면서도 타탄·줄무늬 등 무늬를 활용해 성 구분을 없앤 애슬레저룩을 제시했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는 특유의 컬러풀한 특징을 살리면서도 타탄·줄무늬 등 무늬를 활용해 성 구분을 없앤 애슬레저룩을 제시했다.

 
더 과감한 젠더리스, 더 세련된 스트리트룩
코트웨일러(Cottweiler)

코트웨일러(Cottweiler)

“런던의 힘은 겁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창의적이고 유머를 뽐낸다.” 쇼장에서 만난 셀프리지 백화점 남성복 바이어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특히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을만큼 신진들의 컬렉션에는 제한이 없었다.  
 
이미 패션계의 큰 흐름이 된 ‘젠더 유동성(Gender Fluid)’은 더 과감해졌다. 찰스 제프리나 블라인드니스처럼 드레스·치마, 꽃무늬나 진주 주얼리를 시도하는 건 평범할 정도. 중국 디자이너 샌더 주(Xander Zhou)의 런웨이에는 평범한 바지·티셔츠 차림에 불룩한 배를 그대로 드러낸 모델이 등장했다. 남자 임신부였다. 티셔츠에는 ‘새로운 세상의 아기’라는 문구를 박아놓았다. 디자이너는 쇼 직후 인스타그램에 “남자가 임신하는 미래를 기꺼이 준비하고자 한다”는 글을 올려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그가 선보인 6개의 팔을 뻗은 트렌치코트 역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인류의 미래 모습을 그리며 새로운 패션의 ‘퓨처리즘“을 제시했다.  
리암 호지스(Liam Hodges)와 마틴 로즈(Martine Rose)

리암 호지스(Liam Hodges)와 마틴 로즈(Martine Rose)

 
남성복의 대세인 스트리트 웨어와 애슬레저룩 역시 신진들과 궁합을 맞추면서 업그레이드 됐다. 사무엘 로스는 이를 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프리미엄 스트리트 웨어, 스포츠 럭스(Lux)의 시대를 도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0대가 열광하는 로고 박힌 캐주얼 웨어가 아니라, 고급 소재와 세심한 디테일로 차별화를 꾀했다는 이야기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선두 주자인 크리스토퍼 래번(Christopher Raeburn)의 컬렉션.

지속가능한 패션의 선두 주자인 크리스토퍼 래번(Christopher Raeburn)의 컬렉션.

 
실제 어콜드월은 기능성 소재를 쓴 것은 물론 끈과 지퍼를 활용해 한 가지 옷으로 여러 가지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인에 비중을 뒀고, 에드워드 크러칠리의 경우 일본의 수백년 된 기모노 프린트 가게와 협업으로 오버사이즈 재킷·기모노 스타일 슈트·하와이안 셔츠 등을 선보였다.  
 
샌더주(Xander Zhou)

샌더주(Xander Zhou)

또 스포츠·스트리트웨어라고 해서 들뜨고 신나고 역동적인 것이 아니라, 되려 우주처럼 고요한 정적을 지향하는 ‘테라피 의상’들이 시도되기도 했다. 코트웨일러(Cottweiler)는 요가·부황·마사지에 어울릴 만한 복장뿐 아니라 아예 폭포 장면이 나오는 LCD 모니터를 액세서리로 삼는가 하면,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넉넉한 튜닉 스타일의 기능성 재킷을 제시했다.  
첫사랑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블라인드니스(Blindness)

첫사랑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블라인드니스(Blindness)

 
창의적이라고 해서 무작정 비현실적으로 내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 이슈, 특히 전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는 환경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11년차의 크리스토퍼 래번(Christopher Raeburn)이 그 대표주자. 런던 한 곳에 아예 재활용 연구소를 둘 정도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바로 그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나사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빙하 사진을 의상 프린트로 탈바꿈시키는 한편, 봄·여름 컬렉션이지만 안감이 두툼한 파카를 등장시켰다. 마치 “지구온난화로 이상 기온이 나타나면 봄에도 이런 외투를 입어야 할지 모른다”는 경고처럼. 특히 이번에 제작한 외투는 아웃도어 브랜드인 팀버랜드의 1980년대 제품을 벼룩시장과 빈티지숍 등에서 구해 새롭게 재조합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영국패션협회 홍보대표로 11일 열린런던패션위크 부대행사에 참석한 데이비드베컴(가운데) . [사진영국패션협회]

영국패션협회 홍보대표로 11일 열린런던패션위크 부대행사에 참석한 데이비드베컴(가운데) . [사진영국패션협회]

 
이외에 베서니 윌리엄스(Bethany Williams)는 책을 만들고 남은 종이와 의류공장에서 남은 옷감을 재활용해 컬렉션을 꾸몄고, 매튜 밀러(Mattew Miller) 역시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와 손을 잡고 쓰레기 매립지로 갈 의류들을 모아 100% 리사이클링 런웨이를 완성했다. “이제 럭셔리란 얼마나 비싸고 귀한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지성적인가의 문제”라고 말하는 패션업계의 한목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
  
런던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각 브랜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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