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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가라사대 “맥주 마시고 자면 천국 갈 수 있다!”

 백경학의 맥주에 취한 세계사   
독일 화가 안톤 폰 베르너(1843~1915)가 그린 보름스 제국회의 장면. 1521년 독일 황제는 마틴 루터를 처형하기 위해 보름스 제국회의를 소집했고, 마틴 루터는 회의에서 종교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 화가 안톤 폰 베르너(1843~1915)가 그린 보름스 제국회의 장면. 1521년 독일 황제는 마틴 루터를 처형하기 위해 보름스 제국회의를 소집했고, 마틴 루터는 회의에서 종교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맥주의 탄생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증거다. 
 -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미국 정치가) 

종교개혁 이끈 마틴 루터의 맥주 예찬
보름스 회의 입장 직전 맥주 1ℓ ‘원샷’
용기 얻어 종교개혁 역설, 극적 회생

루터 아내는 수녀 출신 맥주 양조사
아내가 빚은 맥주 날마다 2ℓ씩 마셔
“맥주는 인간 구원하는 신성한 음료”

 
‘둥둥둥’ 북을 두드리는 소년들이 깃발을 나부끼며 나타나자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말 탄 수도사가 외쳤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연옥 불길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주교가 내세운 달변가 수도사였다. 그는 연옥의 고통을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숨진 가족을 생각하며 가슴을 쥐어뜯던 사람들은 면죄부를 다퉈 사들였다.  
 
십자군 전쟁 비용을 위해 11세기부터 판매된 면죄부는 종류와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특정 죄를 사해주는 부분면죄부, 모든 죄를 대속하는 일괄 면죄부, 앞으로 저지를 죄까지 사면하는 특별 면죄부 등등. 성인(聖人)의 유물을 바치면 대대손손 사면을 보장했다.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독일은 ‘교황청의 젖소’라는 비웃음을 받을 정도로 수탈의 대상이었다. 
 
독일 수도사 마틴 루터(1483~1546)는 분노했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 조로 된 반박문을 내걸었다. ‘인간은 오직 신앙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부패한 교황에 대한 최초의 저항이었다. 
 
루터는 매일 밤 주교와 수도원장, 제후, 교수들에게 편지를 썼고 하루 열 번이 넘는 연설을 통해 가톨릭의 부패를 고발했다. 요즘으로 치면 매일 대중집회를 이끌면서, 신문·잡지 등 언론에 글을 쓰고,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를 총동원해 이념투쟁을 벌인 셈이다. 루터의 외침은 교황의 폭압에 굴복했던 제후와 시민계급을 동요시켰다.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촛불은 들불이 되어 유럽 전역으로 번져갔다. 당황한 독일 황제는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를 소집했다. 루터를 로마로 압송해 화형에 처하기 위한 회의였다. 
 
사형선고 법정인 회의장에 들어서기 직전, 루터에게 맥주 한 잔이 건네졌다. 후원자 칼렌베르크 공작이 보낸 아인베크 맥주였다. 루터는 1ℓ 맥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러자 공포에 떨던 수도사는 사라지고 사자처럼 담대한 종교개혁가가 나타났다. 회의장에 들어간 그는 입장을 철회하라는 요구에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 
 
당당한 태도에 감동한 제후들은 일제히 루터 편으로 돌아섰다. 맥주 한잔이 기적을 만들고 세계 역사를 바꿨다. 루터가 마셨던 아이베크 맥주를 지금도 맛볼 수 있다. 뮌헨 동쪽 암머호스 인근에 있는 안덱스 수도원에서 만든 ‘복(Bock) 비어’와 파울라너 수도원에서 개발한 ‘구세주 맥주'라는 뜻의 ‘파울라너 살바토르(Salvator)’가 그것이다.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가 그린 마틴 루터와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초상화. 수도사와 수녀의 결혼은 자체로 교황에 대한 도전이었다. 크라나흐는 루터와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가 그린 마틴 루터와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초상화. 수도사와 수녀의 결혼은 자체로 교황에 대한 도전이었다. 크라나흐는 루터와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보름스회의 2년 뒤, 칠흑같이 어두운 부활절 밤에 라이프치히 인근의 수녀원을 생선 마차 한 대가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비린내 진동하는 청어 상자 아래에는 루터가 탈출시킨 12명의 수녀가 숨어있었다. 마차는 드디어 신교도 지역인 비텐베르크에 수녀들을 내려놓았다. 얼마 뒤 루터는 수녀 중 한 사람인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와 결혼했다. 신부와 수녀의 결혼은 ‘세기의 사건’으로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교황에 대한 도전이었다. 
 
루터의 아내 보라는 생활력이 강했다. 가족이 생활하던 수도원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웠다. 더욱이 보라는 수녀 시절 맥주를 만들던 양조사였다. 덕분에 루터는 아내가 정성스레 빚은 맥주를 날마다 2ℓ씩 마음껏 마셨다. 상담과 토론을 위해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던 루터의 집에는 한꺼번에 50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루터가 말한 의견과 가르침을 참석자들이 받아 적어 펴낸 책이 『탁상담화』다. 루터는 맥주잔이 오가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개혁 사상을 가다듬고 전파했다. 그는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 잠을 잘 자고, 잠자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루터에게 맥주는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성한 음료’였다. 
 
1999년 영국 BBC방송과 독일 일간지 ‘빌트’는 지난 천 년 동안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루터를 꼽았다. 미완에 그칠 수 있었던 종교개혁을 완수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정신의 위대함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에게 기적을 선사했던 아인베크 맥주와 함께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백경학 맥주 칼럼니스트 stern100@hanmail.net  
독일 뮌헨 슈바빙의 맥줏집과 중세 양조술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 수도원을 순례하며 맥주를 배웠다. 2002년 국내 최초의 하우스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창업했다. 현재 장애 어린이 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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