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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운전하는 차 불태우겠다" 24일부터 여성 운전 허용하는 사우디서 협박 이어져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을 금지해 온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4일(현지시간)부터 여성들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우디 여성들은 보수적인 남자들의 위협과 반대가 두려워 운전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리야드발로 보도했다. 

정부는 허용했지만, 보수파 남성들 반대·위협
여성 운전자 괴롭힘 처벌하는 법안 이달 공표
여성 수만 명 학원 등록, 수천명은 면허증 받아

 
WSJ은 ‘사우디 여성 운전자가 직면한 마지막 걸림돌: 사우디 남자’라는 제목의 이번 기사에서 지난해 9월 사우디 정부가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일부 남성들의 협박과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에서 여성 운전자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거나, “여자가 운전하는 건 집안의 수치”라며 아내나 딸의 운전을 막는 남자들이다. 
지난달 리야드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한 여성이 자동차를 시험 운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리야드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한 여성이 자동차를 시험 운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물 두 살의 가방 판매원인 알라나우드 하카미는 남편이나 아버지가 매일 차로 직장에 출퇴근을 시켜준다. 24일부터 직접 운전을 할 수 있게 됐지만 하카미는 앞으로도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없다. 그는 “사우디 남자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버지와 남편도 내가 운전하는 걸 반대한다”고 말했다. 
 
여성 운전 허용은 산업정책의 일환 
 
사우디는 1932년 건국 이래 86년 간 여성의 운전을 전면 금지해왔다. 법에 관련 내용이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여성에게는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 위해서 가족이나 남성 드라이버를 고용해야 했다. 
 
이런 사우디가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한 것은 사우디의 ‘젊은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3) 왕세자가 주도하는 경제·사회 개혁 정책 ‘비전 2030’의 일환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해 왕위 계승권자로 책봉된 이후 파격적인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올해 1월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을 처음으로 허용했고, 2월에는 여성의 군 입대를 허용하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33) 왕세자. [사진 더타임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33) 왕세자. [사진 더타임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가 석유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여성 인력이 산업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직접 차를 몰고 직장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우디 종교 지도자들은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여자에게 사악한 행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지난 해 사우디 정부가 여성 운전 혀용 방침을 발표한 후 트위터에서는 ‘너는 결코 운전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사우디어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퍼져나갔다. 
 
한 남성은 “여자들이 운전하는 차에 불을 지르겠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사우디 여성들 ‘나는 운전하겠다’ 선언
 
많은 여성들은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트위터 등 SNS에는 운전면허증, 교습소 문제집 사진과 함께 올라온 ‘나는 운전하겠다’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수만 명의 여성들이 사우디 내 6개밖에 없는 여성 전용 운전 학원에 등록을 했고, 수천명은 이미 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의 에스라 알부티 전무가 이날 발급 받은 사우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의 에스라 알부티 전무가 이날 발급 받은 사우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그럼에도 두려움은 남아 있다. 지난 3월 사우디 국립여론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61%의 여성들이 ‘운전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운전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여성들 중 41%는 ‘교통사고가 무서워서’라고 답했고, 27%는 ‘남자들에게 공격이나 희롱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를 이유로 들었다. 
 
실제 위협을 당한 이들도 있다. 여성 운전이 임시로 허용된 대학교 교내에서 학생에게 운전을 가르치던 여성 운전 강사 누라 알 마고는 “여자들만 차에 탔다는 걸 알고 차를 앞질러 바로 앞에서 급정차하거나 말과 행동으로 위협하는 남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폭력을 막기 위해 자동차에 곧 블랙박스를 설치할 예정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괴롭힘방지법(Anti-Harassment Law)을 이달 안에 공표한다. 이 법에 의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상대를 희롱하거나 모욕, 협박하는 사람은 10만 사우디 리얄(약 2950만원)의 벌금이나 최고 2년의 실형을 받을 수 있다. 지속적인 가해자에게는 더 높은 형벌이 부과된다.  
 
다른 한편에서 여성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건 가족들의 반대다. 29세 잡화점 직원인 가디르 알 메즈니는 운전을 하고 싶지만 남편이 반대하고 있다. 남편은 여자가 운전을 하는 것은 종교적 윤리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즈니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다면 남편의 생각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나 자신에게만 의지하면서, 그저 운전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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