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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중국 조선족 중 최고위직 지낸 조남기 장군

조남기

조남기

중국군 최고위 계급인 상장(上將·대장급) 출신으로 정협 부주석(부총리급)까지 지낸 ‘조선족의 우상’ 조남기(趙南起·사진) 장군이 지난 17일 베이징(北京)에서 별세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9일 보도했다. 91세.
 
조 장군은 조선족은 물론 55개 소수민족을 통틀어 중국 정계 및 군부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사령관을 역임한 총후근부는 군수 물자 공급과 운송·물류·건설·의료 지원 등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최근 군 조직 개편 전까지 총정치부·총참모부와 더불어 인민해방군 3대 기둥으로 꼽혔다. 1998년엔 소수민족 정책에 힘입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 부주석(군부 대표)에 올라 2003년까지 재임했다.
 
조 장군은 6·25전쟁에도 참전했다. 펑더화이(彭德懷) 사령관 지휘 아래 북한 측을 도운 중국 인민지원군 20여만 명의 일원이다. 당시 그는 부사령관 겸 후근부장인 훙쉐즈(洪學智)의 막료로 기획수송과장을 하면서 박헌영 제1부수상 겸 외상 등 북측을 상대로 통역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어 통역을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毛岸英)과 한 숙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1927년 충북 청원군 태생으로 조부인 조동식(1873~1949) 선생은  3·1 운동 당시 ‘대봉화 횃불시위’를 주동, 공주 감옥에 3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38년 11세 때 조부와 부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황지포에서 살았다. 동북군정대학을 거쳐 총후근학원을 졸업했고 45년 12월 인민해방군(팔로군)에 입대했다.
 
6·25전쟁 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일하며 60년대 지린성 옌벤(延邊)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승진했다. 문화혁명 때인 68년 당의 방침을 비판하다가 모든 군직·관직에서 해직 당하고 사실상 연금당한 채 살았다. 73년 퉁화(通化)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복권했고 총후근부장(87년)과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원(88년)을 거치며 중국 군 최고 계급인 상장(88년)까지 달았다.
 
한·중 수교 후엔 2000년 5월, 2004년 6월 두 차례 방한했으며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최고고문이던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시 한양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엔 김장수 주중 대사가 베이징 대사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는 등 최근까지도 한국 정부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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