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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기자 사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무상이라면서 의약품은 장마당서 구해오라는 북 병원

‘나이팅게일’을 모르는 간호사가 있다. 헌신과 생명 존중을 핵심 가치로 삼는 간호사의 다짐을 새긴 ‘나이팅게일 선서(Nightingale Pledge)’는 아예 접한 적이 없다. 의료 시설에 배치받아 약초를 캐러 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부다. 북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감춰진 실상이다. ‘무상치료’를 내세우는 북한이지만 약품 부족과 의료진의 뇌물요구 만연으로 병원 문턱은 높기만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변변한 치료 한 번 받기 어렵다. 우리 보건·의료 기관과 전문가들이 대북지원 채비를 서두르는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나이팅게일 모르는 북 간호사
“의료인력 아닌 노동자 취급”

보건·의료분야 대북지원 시급
“국립중앙의료원 중심축 맡아야”

판문점 귀순병 기생충은 충격
통일 이후 국민 건강에 복병


지난 14일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NMC) 강당. 의료원 산하 공공보건의료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소속 의료진 외에 교수·전문가와 수도권 지역 보건소장 등이 모였다. 6·15 남북 공동선언 18주년을 맞아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와 대북지원 활성화를 모색하는 자리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석주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고 경고하며 ‘신체화’란 개념을 설명했다. 스트레스 등 심리적으로 힘든 현상이 특정 증상으로 몸에 나타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불안·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소화가 안 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식으로 호소한다”고 말했다. 진료 대상 탈북민 1200명 중 42.4%가 신체화 증세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부 고위 엘리트 출신을 제외한 3만1000여 명의 국내 정착 탈북민 상당수는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심포지엄 발제에서 “우리 의료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과 진료비 부담 등으로 탈북민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목숨을 건 탈북 과정에서 생긴 외상이나 복합적 질환을 제때에 치료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란 것이다. 의료원 측이 2006년부터 북한이탈주민진료센터를 개설해 탈북민에 대한 스트레스 상담과 치료를 진행해 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로 불린다. 이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잘 안착하느냐가 남북 통합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대북지원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심포지엄 개최와 함께 남북 보건·의료 청사진을 담은 책자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위한 길잡이』를 펴낸 것도 그 일환이다. 정기현 원장은 “1958년 설립 이후 대한민국 공공의료를 책임져온 국립중앙의료원은 설립 60주년을 맞는 올해 남북 모든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 콘트롤 타워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와 통일간호포럼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일 대비 남북한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고찰’ 세미나에선 ‘남북 간호 용어 비교’(가칭) 책자 발간과 북한 연구 강좌 개설에 의견이 모아졌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남북한 영아사망률 등 통계수치를 제시한 뒤 “서울과 불과 100㎞도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 땅 개성에 태어나는 아기의 사망률이 남한보다 무려 7배가 넘는다는 건 충격적”이라며 “북한의 건강 수준이 우리에 비해 열악하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국내 정착 탈북민들이 ‘마른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영양 문제 등으로 인슐린 분비를 담당하는 췌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고혈압·당뇨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강윤희 이화여대 간호대 교수는 세미나 토론에서 “동서독의 경우 1974년 보건·의료 협정 이후 의약품과 의료자원 등 대규모 원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졌고, 협정 16년 후인 1990년 독일 통일이 완성됐다”며 “남북한이 상호 신뢰 속에 인적·물적 지원과 교류를 펼쳐 한반도 통일시대에 간호·의료·보건 분야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통일 대비를 위해 남북한 간호 부문 학문체계의 정비와 공동 교육과정 개발, 간호업무 및 면허체계 정비 등의 준비를 서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보건·의료 분야 기관과 전문가들이 대북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는 건 워낙 북한의 의료 현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무상교육과 함께 무상치료를 내세워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표방해온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대기근 사태인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배급·의료망이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의료 분야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해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발전시킨다”(헌법 제56조)는 주장이 무색할 정도였다. 윤석준 교수는 “무상치료라지만 병원에 의약품이 바닥나 주사제나 붕대·약 등을 장마당에서 환자나 가족이 사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유상치료가 행해지고, 의료의 상품화·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병원은 특권층 전용과 일반 병원으로 나뉘고, 일반 병원도 간부과와 일반과로 구분될 정도로 차별화돼 있다는 게 통일교육원이 발간한 『2017 북한 이해』의 지적이다. 고위 탈북인사는 “김정은 전용 의료시설을 제외하면 실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이나 북송 미전향장기수 이인모 등이 해외 치료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 고용희도 유선암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를 받다 현지에서 숨졌다. 김정은 집권 직후 평양에 최신 시설을 갖춘 유선암연구센터가 세워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의 전문의 숫자는 ‘동의사(한의사)’ 1200명을 포함해 1만2000여 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의료수준이 떨어지고 장비·의약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정착 후 간호사 자격증을 따낸 교육부 황경희 주무관(연수시설 보건 담당)은 “북한에서 간호사는 의료 전문 인력이 아닌 노동자로 본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병원에 배치돼 의약품을 대체할 약초 캐기에 동원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간호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현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대외협력본부장은 “대북 의료지원 차 북한 의료시설을 방문하면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 시설 보수를 위해 벽돌을 나르거나 시멘트를 바르는 일을 하는 걸 쉽게 목격한다”고 말했다. 병원 앞 마당에 목화를 길러 의료용 솜을 자체 조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귀순한 북한 경비병 오청성(24)씨는 총상 치료 중 나온 27cm에 달하는 기생충으로 충격을 던졌다. 구충제 몇 알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북한 당국은 방치했다. 처우가 좋다는 JSA 병사가 이 지경이라면 119만 명 북한군 병사나 일반 주민의 경우 더 심할 게 분명하다. 대한의사협회는 “남북통일 시 기생충 문제가 보건·의료 분야의 상당한 위협요소가 될 것”(2015년 11월 창립 107주년 세미나)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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