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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군무 ‘평양가는 길’ 창작 중

지난 14일 서울 홍은동 서울무용센터 연습실에서 ‘김명수 류’ 춤 동작을 선보이는 김명수씨. [김경록 기자]

지난 14일 서울 홍은동 서울무용센터 연습실에서 ‘김명수 류’ 춤 동작을 선보이는 김명수씨. [김경록 기자]

춤꾼들이 춤추기를 접기 시작하는 나이에 김명수(64)씨는 더 열심히 춤을 춘다. 매일 오후 8시에는 자신만을 위한 홀로 무대를 연다. 그는 이 의식을 “내 몸에 말 걸기”라고 불렀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홍은동 서울무용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남북, 북미 정상 회담을 보면서 나를 지키며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어 이제 할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설가 황석영(75)씨의 전 부인으로 황씨가 북한을 방문하고 외유할 때 함께 했던 동반자다.
 

북과 춤교류 추진 무용가 김명수씨
1990년대 작가 황석영과 동행 방북
최승희 후계자와 공동 안무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남북 문화교류의 선봉처럼 소개되는 걸 보면서 북에서 만났던 무용계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전설적인 무용수였던 최승희를 이은 안무가 김해춘, 박경실·홍정화 조선무용가동맹 위원장, 공훈작곡가 박무준은 제가 1990년대에 북에 갔을 때 의기투합했던 인물입니다. 그때 같이 안무했던 통일 춤 ‘노동의 새벽’을 지금도 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씨는 발레로 춤에 입문해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고 무형문화재인 이동안·김숙자·이매방에게 전통춤을 배운 뒤 미국 뉴욕에서 활동했다. 국내외 모든 춤을 꿰뚫는 눈을 지닌 뒤 북에 갔기에 더 정확히 보고 그들을 이끌 수 있었다. 그는 북에서 춤추며 나눈 체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남북이 문화로 만날 때 춤 분야에서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1991년 예술인 초청 간담회에 모인 북 문화계 인사들. 왼쪽 둘째 김해춘 안무가, 가운데 김명수.

1991년 예술인 초청 간담회에 모인 북 문화계 인사들. 왼쪽 둘째 김해춘 안무가, 가운데 김명수.

“김해춘 안무가가 저를 피바다가극단 명예 안무가로 위촉하면서 ‘남북이 좋은 관계가 되면 부르겠다’고 했어요. 그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편곡한 메인 테마로 춤추던 기억이 새롭네요.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을 소재로 춤을 만들 때 북의 무용수들이 제게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있다고 묻는 거예요. 왜 노동자들이 새벽부터 밥을 먹지 소주를 마시느냐고요. 설명하느라 쩔쩔맸죠.”
 
그는 이미 2002년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북한 무용계 현황과 남북 협력 전망’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열어 북한의 ‘자모식 무용표기법’를 소개하고 남북합작 통일 춤 ‘노동의 새벽’ 비디오를 상영했다. 북에서 선물로 받은 ‘자모식 무용표기 종합타자기’는 필요한 곳이 있으면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남과 북이 서로의 춤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 그 오류를 고쳐줄 수 있는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북이 통합된 무용표기법을 만든다면 양쪽 춤을 다 아는 제가 도움이 될 겁니다. 남북 회담 소식이 이어지면서 ‘평화의 춤’을 본격 구상하고 있어요. 나이가 드니 아름다운 것이 최고라는 생각입니다. 미래를 향해 아름답게 나아가는 군무 ‘평양 가는 길’을 창작중인데 남북 무용수가 섞여 추는 꿈을 꾸면 행복합니다. 옛 춤 스승이 ‘네 몸 안에 있는 것을 믿어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운명 같아요.”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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