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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퍼스펙티브] 외교에 주인 의식 없으면 미·중에 휘둘린다

전환기 한국 외교 
한국 외교는 3각 파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핵 엔드 게임의 본격화,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부상에 따른 세력 전환, 세계적으로는 전후 질서를 지탱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반 약화가 동시 진행 중이다. 특히 동아시아 세력 전환에 따른 지역 질서의 변화는 우리 외교의 중장기 전략 환경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미·중의 동아시아 전략 경쟁으로
한국은 다양한 국제 문제 부닥쳐
사드 배치와 AIIB 참가 문제에서
미·중 눈치보다 막대한 국익 손실

세력 전환기 미·중 갈등 증가 속
우리의 기준과 방침 정해 놓고
일관성 있는 선택의 예술 추구해야
한국의 전략 공간 넓힐 수 있어

미국은 인도·태평양 구상과 공해전(Air Sea Battle) 독트린,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구사하면서 첨예한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작년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워 분발유위 (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라는 공세적 외교안보정책을 펼치는 중국을 전략 경쟁자로 규정하고 무역·대만·남중국해 등으로 대립 면을 넓히고 있다. 물론 미국은 달러·에너지·무역·지리·인적자원·기술·군사력·네트워크 면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세계 패권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역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 중국과의 세력 경쟁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 개념에 변화를 주고 있고, 중국은 동아시아에 세력권 구축을 통해 수직적 질서인 중화주의 부활을 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동아시아에서 미국(독수리)과 중국(용)이 대립하면서 한국(돌고래)이 힘든 유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결정적 순간을 맞고 있는 북핵·북한 문제도 동아시아 지각 변동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드 대처 우왕좌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은 이미 미·중 전략 경쟁으로 촉발된 다양한 국제 문제에 부닥쳤다. 가장 첨예한 이슈는 사드(THAAD) 배치 문제였다. 미국이 북핵 위협 증가에 대한 방어 조치로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 방침을 밝히자 중국이 전략 이해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의 조찬 강연 발언으로 시작된 논란에서 ‘3No(요청·협의·결정 없음)’입장을 취하였다. 당시 대중 관계 강화에 힘을 쏟던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결정을 미룸으로써 문제 확대를 막을 시기를 놓쳤다. 사드는 주한미군·한국 방위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배치를 전제로 사드가 방어 체제로 중국의 전략 이익을 해하지 않음을 미리 설득했어야 했다. 시진핑 주석이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사드 반대를 천명한 뒤에는 중국 내부 의사결정 구조상 뒤집기 힘들게 됐다.
 
또 결정 시기와 방법 면에서도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충분한 정지 작업 없이 배치 검토를 발표했다. 그 해 7월 황교안 총리의 방중 시에도 통고가 없다가 남중국해 중재 판결 직전에 배치를 발표함으로써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환경 평가를 이유로 이미 진행 중인 배치를 지연시킴으로써 대미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사드 문제를 풀기 위한 ‘3불(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방어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의 부인) 약속’도 우리 안보의 자율성을 속박할 소지가 있다.
 
중국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은 점도 좋지 않은 선례다. 사드 보복은 주변국에 대한 강압 외교인 만큼 부당한 압력에는 굴하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결국 사드 문제는 미·중 양측의 불신과 막대한 국익 상실을 초래한 채 아직도 진행형이다.
 
뒤늦은 AIIB 가입으로 위상 약화
 
두 번째 사안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가 문제다. 우리는 망설이다 유럽 국가들의 참여가 분명해지며 참여를 결정했다. AIIB 설립은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만으로는 아시아의 폭증하는 인프라 자금 조달이 힘들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미국·일본은 중국 주도의 관리 구조, 개발 협력 국제 가이드라인 미준수 등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으나, 양국 국내에서도 불참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한국은 결국 가입했지만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 원하는 만큼 소득을 못 얻었다. 중국과 미·일 사이에서 중개·조정·중재의 가교 역할을 맡았더라면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더 나은 입지를 확보하였을 것이다.
 
세 번째 이슈로 미·중 동아시아 전략 단층의 최전선에 있는 남중국해 문제다. 중국이 해양국가를 지향하면서 남중국해 제해권을 핵심 이익으로 보고 군사화를 강행 중인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사활적 이익으로 본다. 2016년 7월 남중국해 중재 판결은 필리핀 청구 15개 항 중 13.5개 항에 대해 필리핀을 지지했다. 남중국해의 항행 자유는 무역·자원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사활 문제이고 동아시아 질서에서 법의 지배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정부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중국이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데 실패할 경우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면서, 2016년 9월 ASEAN+3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 합의와 비군사화 공약, 국제적으로 확립된 행동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기적으로 늦었고 원칙 문제라는 점에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아쉬웠던 대목이었다.
 
네 번째로 동아시아 FTA 체제 문제다. 우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권유를 받았지만, 한중 FTA 우선 타결과 대부분의 TPP 교섭 국가들과 FTA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한중 FTA와 TPP가 제로섬 관계에 있지 않고 무역국으로서 다양한 FTA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판단이었다. 교섭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가입 의사를 표명했지만, 기존 가입국과의 교섭으로 불필요한 외교 자산과 경제 비용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이미 미국·EU FTA를 통해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달성한 우리에게 중층적 FTA 네트워크 구축은 핵심 이익으로 미·중의 눈치를 볼 사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아시아 안보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에서의 아시아 안보 관련 중국 제안이다. 이 기구는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신뢰 조성을 위해 만든 협의체로,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다른 성격이다. 중국은 2014년 5월 제4차 CICA 정상회의(상하이)에서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안보’를 주창했다. 미국과 가까운 이스라엘·터키·태국·아랍에미리트(UAE) 등을 포함해 어느 국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가운데 한국의 반대로 결과 문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한창일 때였기에 미·일 등에 이런 사실이 적절히 알려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증가하는 미·중 갈등 속 선택 잘 해야
 
앞으로 미·중 갈등이 늘어날 것이므로 우리 나름의 기준과 방침을 정해 놓고 ‘선택의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 첫째, 주인 의식이 중요하다. 미·중 입장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우리 입장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도 자주적 판단이 비용도 들고 어렵지만 감내해야 한다는 자세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둘째, 한미동맹이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는 한미동맹이 우리의 전략 자산으로 외교정책의 근간이라는 점과 함께, 안보가 시장이나 북한 문제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항상 미국 입장을 지지할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맹은 특정 사안이 아닌 전체 맥락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이 AIIB 가입의 선두에 섰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셋째, 미·중 양국에 한국은 일관성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양국 입장의 충돌로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국익·가치·원칙 등 명확한 기준을 근거로 일관되게 판단해야 한다. 외교력이 뛰어난 중견 국가 네덜란드가 외교 3대 축으로 평화·이익과 함께 원칙을 내세우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정부는 야당·언론·국민과 원활히 소통하여 국민 합의 창출에 힘써야 한다. 국론이 친미·친중으로 분열되면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 어렵고 어느 한쪽에 이용 당하기 쉽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 본 우리 사회의 난맥상은 좋은 반면교사다.
 
다섯째, 중장기 이익을 고려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기 이익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으나, 외교에서 일관성·신뢰·명성 등도 중요한 자산이므로 긴 안목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중 가교 역할 모색해야
 
여섯째, 특정 사안에 국한하지 말고 전체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국과 미·중 사이에는 다양한 이슈가 혼재된 만큼 특정 사안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 거시적 판단이 필요하다.
 
일곱째, 외교 사안의 복잡성에 걸맞은 ‘세련된(sophisticated) 접근’이 중요하다. 흑백 논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는 단순함을 선호하나, 이는 기분은 좋지만 실리적이지 않으므로 복합적 대응이 요구된다. 단순하게 친미나 친중으로 이분해서는 어려움만 가중된다.
 
여덟째, 제로섬 관계가 아닌 미·중 대립 사안의 경우 가교 역할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미국 동맹국이자 중국과 역사적·문화적 유대가 있는 점을 활용해 우리의 운용 공간(maneuvering space)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보다 작지만 미·중 대립을 잘 넘기는 싱가포르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대중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무역의 30%를 한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은 전략적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중국 경제에 필수적인 분야에 집중하는 한편 다변화를 통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EU의 3대 전략적 약점이 미국 의존 방위, 러시아 의존 에너지와 함께 GDP 3.5%에 달하는 4000억 유로의 무역 흑자라는 점은 시사적이다.
 
지금 전환기의 혼돈이 동아시아를 감싸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중견 국가 한국은 주인 의식, 초당적 국민 합의, 합리적 자신감, 실용적 접근, 유연한 복합 사고, 현실적 정책, 일관된 대응을 나침반 삼아 차분하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법무법인 세종 고문
 
신각수 전 주일 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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