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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돈을 따지 말았어야 했어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23> 비스바덴: 중독
 
도스토옙스키는 1863년 8월 9일 파리로 수슬로바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독일 비스바덴 카지노에 들렀다. 비스바덴은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천 휴양도시 중 하나였다. 온천장에 성인병을 치료하러 온 귀족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도박장에서 보냈다. 도스토옙스키도 “잠깐 머리를 식힐 겸” 룰렛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단박에 1만 프랑이 넘는 돈을 땄다.  
 
일러스트 이정권

일러스트 이정권

그때 돈을 잃었더라면, 그의 운명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거액의 현찰을 거머쥔 그 순간부터 1871년 4월까지 그는 만 8년 동안을 비스바덴, 바덴바덴, 홈부르크의 도박판을 전전하며 강박적으로 도박에 매달렸다. 모든 것을, 심지어 외투와 아내의 패물까지 전당포에 잡히고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인생역전을 꿈꿨다.  
 
도박으로 탕진 “움직이면 배가 고파질까봐 계속 독서”  
저녁 6시 3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다시 열차를 타고 비스바덴에 도착해 중앙역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쿠어하우스’(Kurhaus)를 방문해 카운터 직원에게 도스토옙스키 흉상에 대해 물었더니 건물 바깥쪽 공원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건물 안에는 대문호의 도박을 ‘기념(?)’하는 ‘도스토옙스키 홀’이 있다”며 직접 안내해 준다. 카지노와 대문호의 결합이 재미있는지 사뭇 히죽거린다. 기념 홀은 평소에는 비워두고 특별한 행사 때만 사용한단다. 도박장 내부는 천정이 높고 벽면마다 장방형의 거울이 붙어있어 분위기가 몽환적이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사람은 많지 않다. 안색이 백지장 같고 배가 많이 나온 몇몇 도박사들이 19세기 소설책에서 빠져나온 유령처럼 무표정하게 룰렛판을 응시하고 있다.  
 
얼마나 도박을 했으면 유명 카지노에 흉상과 ‘기념홀’까지 남기게 되었을까. 두 번째 부인의 회고를 들어보자. “그는 창백한 얼굴에 간신히 몸을 가눌 정도로 녹초가 되어 도박장에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게 돈을 달라고 애원했다. 다시 나갔다가 30분 만에 더욱더 낙망한 모습으로 돈을 가지러 돌아왔다. 이런 일은 우리가 가진 돈을 다 잃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룰렛을 하러 갈 돈이 바닥나고 어디서도 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비탄에 잠겨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비행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져 살던 비스바덴 카지노의 실내. [사진 비스바덴 카지노 홈페이지]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져 살던 비스바덴 카지노의 실내. [사진 비스바덴 카지노 홈페이지]

그가 도박으로 마지막 한 푼까지 탕진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쓴 편지는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내 수중엔 한 푼도 없소. 계속 점심을 못 먹었고, 아침과 저녁을 차로 때우며 지낸 지 벌써 사흘 되었소. 이상한 것은 먹고 싶은 욕구도 없다는 것이오. 매일 3시에 호텔을 떠나 6시에 돌아온다오. 점심을 굶는다는 걸 보이지 않기 위해서요.” 어떤 편지에는 “움직이면 배가 고파질까봐 앉아서 내내 책만 읽고 있다”는 슬픈 내용도 들어 있다.  
 
소설가, ‘생계형 도박꾼’으로 전락하다  
도박은 도스토옙스키의 전기 작가와 애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토록 모진 시련을 다 이겨낸 사람, 신과 화해한 사람, 자유와 도덕을 외친 바로 그 사람이 억제할 길 없는 도박에 빠졌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동안 문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정신분석학, 신경과학 연구자들이 그가 도박에 빠진 이유, 도박과 그의 문학과의 관계 등을 꼼꼼하게 파헤치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의견을 개진했다.  
 
가장 권위 있는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인 조셉 프랭크에 의하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은 누구나 다 어느 정도 도박꾼이었다. 민중의 스승 톨스토이도, 진보적 지식인 네크라소프도 상습적인 도박꾼이었다. 톨스토이는 백작 가문 출신이라 거액을 잃으면 농노를 팔아 노름빚을 충당했다. 네크라소프는 이상하게 운이 좋아 매번 따기만 해서 도박으로 한 재산 마련했다.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돈도 없고 운도 없었다. 잃은 돈을 만회하려다 보니 도박판을 떠날 수가 없었다.  
 
비스바덴 도박장 내부를 묘사한 작자 미상의 목판화. 1871년 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스바덴 도박장 내부를 묘사한 작자 미상의 목판화. 1871년 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도박에 빠져드는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가장 큰 두 가지 요인으로 ‘심리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을 꼽는다. 도스토옙스키도 비슷한 맥락에서 두 종류의 도박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신사의 도박”이라 불리는 순수하게 오락이자 취미인 도박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도박”, 요컨대 ‘생계형’ 도박이다. “이 두 가지는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하지만 그 구별은 본질에 있어 얼마나 비열한 것인가!”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카지노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카지노

도스토옙스키가 ‘취미형’ 도박과 ‘생계형’ 도박의 분류에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이 ‘생계형’ 도박꾼이기 때문이다. 도박은 가난뱅이 전업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기사회생의 기회였다. 글쓰기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아르바이트’였다. “일확천금을 공짜로 벌 수 있다는 것에는 짜릿하고 넋을 빼앗는 무엇인가가 있소. 빚은 물론이고, 나 자신, 그리고 돈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소.” “나는 돈을 벌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어요. 더 많이 벌어 단번에 빚쟁이한테서 벗어나고 나 자신과 식솔들, 즉 에밀리야 표도로브나, 파샤 등등을 한꺼번에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거에요.”  
 
도스토옙스키가 즐기던 룰렛 테이블

도스토옙스키가 즐기던 룰렛 테이블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에 미루어 볼 때 그의 심리 깊은 곳에 있는 승부욕과 사행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이끌렸다. 유산으로 받은 1000루블(대략 1700만원 정도)을 내기 당구에서 잃어버린 적도 있다. 세미팔라틴스크에서 복무할 때는 군인들이 하는 카드게임을 넋을 잃고 구경했다. 돈이 없어서 바라만 보았지만 “괴물 같은 열정”에 “끝없이 빨려들어갔다”고 회상했다.  
 
모든 중독이 가지고 있는 측면이겠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도 강박적인 도박을 유발했을 것이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과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의 하중에 지속적인 빚 독촉과 원고 독촉이 더해지자, 그는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어 도박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정원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흉상. 러시아 조각가 글릭만의 1996년 작품이다.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정원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흉상. 러시아 조각가 글릭만의 1996년 작품이다.

도박은 병 유일한 투쟁 방법은 도망치는 것
수슬로바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도박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도박에 대한 열정은 수슬로바에 대한 열정의 이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랑에 중독되었듯 도박에 중독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도박 중독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런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프랑스 학자 자크 카토는 도박을 창의력의 분출과 연결시켜 보기도 한다. 룰렛과 창작은 부자의 꿈을 공통적인 동기로 갖고 있으며 위험을 무릅쓰는 것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다. 룰렛에서 몽땅 털리고 난 뒤 도스토옙스키가 언제나 왕성한 창작욕에 불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이 경우 거창한 창작욕보다는 무일푼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그가 도박중독자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중독은 초기에 큰돈을 따는 경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비스바덴 카지노에서 댓바람에 1만 프랑의 돈을 딴 것은 그 자체가 주의를 요하는 사안이었다. 이 놀라운 경험이 뇌리에 남아있는 바람에 그는 언젠가 또 거액을 쥐게 될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박의 승률이 실력으로 결정된다는 착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도 중독자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형, 나는 비스바덴에서 게임 시스템을 개발해서 그것을 활용해 한 번에 1만 프랑을 땄어. 그리곤 그 다음날 아침에 흥분하여 이 시스템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돈을 잃었지. 저녁때 다시 이 시스템을 회복하여 추호의 흔들림 없이 게임에 임하여 곧 어려움 없이 다시 3천 프랑을 땄어.”  
 
그는 이른바 ‘시스템’을 터득하면, 그 다음으로 심리적인 평정심만 유지하면 반드시 이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결국 이런 것을 터득했소. 만일 극도로 신중해 진다면, 즉 대리석처럼 냉철하고 비인간적일 정도로 의연해진다면, 누구나 반드시 의심할 여지없이 얼마든지 돈을 딸 수 있다는 것이오.”  
 
『도박』의 저자 거다 리스는 잘라 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러한 태도는 기술을 요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조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전략이 게임 결과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룰렛 게임을 했다.” 철저하게 우연의 지배를 받는 게임에 ‘룰’을 적용시킨 도스토옙스키는 간단히 말해서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두 번째 부인의 지적은 옳았다. 도박 중독은 질병이며 도스토옙스키는 그 병에 걸려 있었다. “나는 곧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욕망이며 통제 불가능한 어떤 것이어서 아무리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도박에 빠지는 것은 병으로 보아야 하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유일한 투쟁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어떻게 이 질병을 치료했는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보기로 하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고통과 질병을 문학으로 바꾸는데 천재적이었던 작가가 이번에도 도박중독이라는 질병을 문학으로 변형시켰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제목은 『도박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른바 “위대한 장편”에는 끼지 못하지만, 도박장의 탐욕과 공포를 박진감 있게 파헤친 흥미진진하고 심오한 소설이다. 도박꾼의 광기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한 소설은 없을 것 같다. 『도박꾼』 얘기는 다음 호에서 하겠다. ●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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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