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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얼굴, 예술이 되다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예술이란 무엇일까. 1917년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은 한 전시장에서 ‘샘’이라는 이름으로 소변기를 전시하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인이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 예술일까, 예술가의 창의적인 발상이 담긴 작품이 예술일까.  
 
2년 전, 영화를 찍을 당시 33세였던 프랑스 사진작가 JR(장 르네)과 88세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는 길 위에서 이 질문을 다시 던진다. 두 사람은 즉석 사진관처럼 만들어진 차를 타고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여행한다. 얼굴들을 찾는 여정이다. 두 사람은 방방곡곡을 누비며 평범한 마을 주민의 얼굴을 찍고, 이들의 모습을 크게 출력해 마을 담벼락에 붙인다. 다큐멘터리는 마을이 곧 갤러리가 되고, 담벼락이 캠버스가 되며, 이웃의 얼굴이 예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무비다.  
 
이 놀이 같은 여행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려면 JR의 이력을 살펴야 한다.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한 아티스트다. 2005년 파리 이민자 폭동 때 JR은 이민자 청소년의 정면 사진을 찍어 파리 시청 앞에 붙였다. 이민자는 괴물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아서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인물 사진을 찍어 분리 장벽 담벼락에 나란히 붙이고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누가 어디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느냐.”
 
영화의 백미는 JR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바르다의 통찰력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바르다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앞장서 마이크를 잡고 성평등을 외쳤던, 지금껏 칸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단 2명의 여성 감독 중 하나다. “우연은 최선의 조력자”라며 계획 없이 떠나는 둘은 반세기 나이 차를 뛰어 넘는 찰떡궁합을 선보인다.  
 
이를 테면 JR이 한 시골 마을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난 농부를 바르다와 함께 보러 갔을 때다. 농부는 트랙터와 각종 기계 장비의 힘을 빌려 혼자 일하고 있었다. 자기 땅 200헥타르와 남의 땅 600헥타르를 경작한다고 했다. 농부를 만나고 돌아선 길, 바르다는 JR에게 말한다. “혼자 트랙터 위에서 800헥타르를 마주하면 얼마나 외로울까.”  
 
이 말을 들은 JR은 농부의 전신 사진을 찍어 확대 출력해 농부의 창고 벽면 가득히 붙였다. 그 사진은 마치 농부 자신과 그의 수확물을 지켜주는 토템상처럼 보였다.    
 
프랑스 북부의 탄광마을 노르에 갔을 때도 흥미롭다. 바르다에게는 사진엽서 속 광부들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고, JR에게는 붉은 벽돌집이 있는 동네였다. 마을 사람들을 만난 두 사람은 곧 철거될 광산촌의 이야기를 듣는다. 말도 못하게 고생했지만, 그조차도 추억이 되어 얽혀버린 동네를 사람들은 곧 떠나야했다. JR은 옛 광부 사진을 모아 크게 출력해 동네 붉은 벽돌집에 붙였다. 마지막까지 마을에 남겠다는 광부의 딸 자닌의 집 전면에도 그녀의 사진을 찍어 붙였다. JR은 “우린 광부들을 기리고 최후의 저항자 자닌의 얼굴을 자택에 붙여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피사체이자 기록의 대상이 된 얼굴들은 자신의 집에, 동네에 새겨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울었다. 한 장소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사람의 기억을 함께 기억해주는 것, 그것은 실로 대단한 위로였다.    
 
우연히 떠나는 둘의 여행에서는 필연 같은 만남이 이어진다. 염산 공장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고 있는 예비 은퇴자는 “앞이 텅 비어 있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얼굴’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매일 찾는 일터에 자신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는 것을 본 공장 노동자가 놀라 내뱉은 말이 두 예술가에게 울림이 되기도 한다.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죠.” JR과 바르다는 각자의 장소를 일구고 있는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 93분짜리 다큐멘터리를 통해 잔잔히 보여준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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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