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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잘생긴 도구가 있다니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83> 샤오미의 비하(Wiha) 드라이버 세트
 
막내 동생은 산업용 보일러 설계 일을 한다. 어마무시한 규모의 공장 설비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난 공학전문가의 허실을 안다. 정작 제 집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이란 점을. 추위에 떨다 결국 식솔들을 이끌고 호텔 신세까지 졌던 일이 기억난다. 보일러 전문가라고 보일러를 다 아는 건 아닌 모양이다. 설계와 수리의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놀림감으로 삼을 수밖에.  
 
사실 웃을 일이 아니다. 제 일만 했던 남자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이어지는 건 마누라의 구박과 멸시뿐이다. 동생은 보일러 사건 이후 변화를 보였다. 온갖 공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평생 쓸 일 없을 듯한 V커터(나무를 사선으로 자르는 기계)와 버니어 켈리퍼스(1/20~1/50mm를 측정할 수 있는 자) 같은 도구도 척척 들여놓았다. 마치 한풀이라도 하려는 기세였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제수가 푸념을 했다. 열심히 사들인 공구를 쓰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나….  


요즘 많은 남자들이 공구에 관심을 보인다. 대형 마트의 남성 취미 칸에 공구의 종류가 늘고, 연관 분야를 잇는 마케팅이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이유다. 여자들이 새로운 핸드백과 구두를 기웃거리듯, 남자에게도 관심 쏟을 대상이 생긴 거다. 조이고 자르고 박는 공구는 매력적이다. 뭔가 만들어내는 도구 아닌가. 그러고 보니 변화의 진원이 짐작된다. 조립식 가구가 주류인 이케아의 한국 진출, 드론과 같은 성인용 완구의 보급과 궤를 같이한다.  
 
어디 이뿐인가. 단조로운 남성 취미의 영역도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더하는 분위기다. 컴퓨터의 성능개선과 음악을 듣기 위한 PC-FI도 성행한다. 전문 업소에 들르고 사람을 부르는 일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웬만한 일들은 온라인으로 부품을 사들여 직접 처리하는 게 속 편하다.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하고, 고용량 저장장치를 직접 탈부착하는 일 같은 것은 줄어들지 않는다.  
 
진공관 앰프를 자작하는 오디오파일도 늘었다. 한 번 펼쳐 놓으면 테이블 전체도 모자란다. 수많은 부품과 배선재료가 즐비해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효율성 높은 공구가 필수다. 손이 두 개밖에 없다는 불편을 실감한 순간 좋은 도구의 필요는 절실해진다.  
 
내 주변엔 정교한 프라모델 조립에 열중하는 아저씨들도 몇 있다. 노안으로 침침해진 눈으로 깨알 같은 크기의 부품을 잘라내고 붙여야 한다. 정교함이 본령인 축소모델의 디테일을 만들어주는 건 의지보다 공구의 성능이 우선이다. 부록으로 인기 높은 ‘어른의 과학’이란 잡지도 나온다. 밤하늘의 별자리가 비치는 ‘플레나타리움’ 같은 신기한 물건이 들어있다. 꽤 신경 쓰이는 조립 과정은 정교한 도구가 있다면 훨씬 수월해 진다.  
 
도구, 쓰는 자의 자세를 보여주는 척도  
각자의 관심을 수월하게 풀어내기 위해선 적합한 공구가 있어야 한다. 처음엔 나사를 풀고 죄는 드라이버가 다 똑같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드라이버의 정교함과 날의 강도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점차 알게 된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싶은 이는 없다. 점차 선택의 고도화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쉽게 손에 익고 편리함이 돋보이는 물건이 눈에 뜨이게 된다. 모르면 지나치지만 알면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된다. 작은 출발이 전체를 완성하는 중요한 바탕이란 사실의 실감이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실력 있는 숙련공을 채용하는 방법을 들려준 적 있다. 출신학교도, 이력도,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구직자가 쓰는 도구함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다. 신뢰의 상징인 ‘스냅 온’ 제품이 들어있다면 우선 뽑는다는 것이다. 도구가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말해 준다는 경험의 판정이라나.  
 
독일도 경우가 비슷했다. 싸구려 공구를 쓰는 이는 실력까지 의심받는다. ‘하제트’나 ‘메타보’나 ‘비하’ 같은 전문 브랜드라면 일단 합격점을 준다고 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분야가 다른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 짐작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스크루 드라이버를 써야 할 일이 생겼다. 최신 컴퓨터 부품을 분해하거나 조립할 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이제 과거와 같은 십자나 육각 모양의 나사를 쓰지 않는다. 보안상의 이유이거나 생산 공정의 관리를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예전에 보지 못하던 별모양, 삼각형, 심지어 양쪽에 구멍만 나있는 특수형까지 다양해졌다.  
 
똑같아 보이는 각종 나사는 막상 풀거나 조일 때 문제가 된다. 기존의 일자나 십자드라이버가 이제 쓸모없게 된 것이다. 스마트 시대의 기기는 겉모습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세세한 과정의 변화 또한 하나 둘이 아니다. 기기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분해와 조립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잠글 수 있다면 푸는 방법도 있게 마련이다. 다양한 모양의 비트를 준비하면 된다. 편리함과 멋진 디자인을 갖춘 드라이버 세트가 나오게 된 이유다.  
 
도구가 쓰는 사람의 자세까지 보여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 번 쓰지 않을 도구에 너무 많은 돈을 들일 수는 없다. 작은 드라이버 세트의 가격은 1000원도 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10만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누가 뭐래도 가격은 품질을 반영하는 지표다. 오래 두고 쓸 만한 좋은 물건이라면 약간의 무리도 할 수 있다.  
 
독일 메이커의 이름으로 샤오미가 내놓은 공구
독일의 오래된 공구 메이커 비하(Wiha)의 새로운 제품이 눈에 띄었다. ‘비하’라면 도구만 보고도 알아준다는 브랜드 아니던가. 하지만 반전이 있다. 싸고 희한한 물건을 만들기로 이름 높은 중국의 ‘샤오미’가 여기 끼어들었다. 독일의 디자인 역량과 성능을 빌려 중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인 ‘샤오미 비하’드라이버 세트가 나온 것이다.
 
처음엔 몇 년 전 만들어 히트 친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인 줄 알았다. 길이가 더 길고 두꺼워져 고용량 신제품이라 착각할 만했다. 깔끔하고 매끈한 마무리는 드라이버를 담은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잘 생겼다. 고품위 금속표면 처리기법의 하나인 아노다이징 마감의 표면은 깊은 재질감으로 묵직했다. 드라이버가 통째로 매끈한 케이스 안에 수납된 세련된 모습이 돋보인다. 책상 위에 놓여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점점 샤오미란 회사가 우습게 여겨지지 않는다. 2017년 독일 레드 닷 디자인상을 거머쥔 역량은 거저 생기지 않았을 게다.  
 
비트와 본체의 성능은 독일에서 만든 ‘비하’의 강도와 정밀도에 근접했다. 똑같다곤 말 못하겠다. 제조국이 다르므로 보이지 않는 차이를 의심하게 된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진 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드라이버가 내 손에 쥐여진 순간부터 몇 달 동안 험한 작업을 해본 결론이다.
 
기존 드라이버를 쓰면서 느꼈던 불편이 해소되어 놀랐다. 케이스를 뒤집어도 24개나 되는 각종 비트 조각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석으로 처리해 달라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비트를 쉽게 잃어버리게 되는 근본 원인이 개선됐다. 꺼낼 때도 쉽고 편하다. 빈틈을 누르면 꽁무니가 들려 손에 쥐기 쉽다. 드라이버 본체에도 비트가 저절로 달라붙는다. 이런 드라이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비로소 이뤘다. 그러나 샤오미가 세련되어질 수록 우리 제품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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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