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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 신임 총리가 국회에 미래비전 보고서 제출해야하는 핀란드

미래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설치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나라의 미래전략을 짜는 핀란드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포토]

미래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설치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나라의 미래전략을 짜는 핀란드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포토]

 
 
 
 
 박성원의 예측사회 ⑤ 미래지향적 기업과 국가
 
 최근 국가의 미래전략 방법론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국내 대표 민간기업의 두 고위 임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대기업도 값비싼 해외 데이터베이스를 사들여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지만 방향조차 못 잡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면 소비자는 벌써 다른 것을 원한다.”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런 시대에 미래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래학계에서 지금도 회자하는 전설적인 인물은 세계적인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셸의 미래예측팀을 10년 동안 이끌었던 피에르 왁(1922~1997년)이다. 그가 예측팀을 이끌던 1971년부터 81년까지는 유가가 수차례 폭등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던 혼돈의 시기였다. 비합리성이 지배하던 때, 로열더치셸은 업계 5위에서 2위로 올라섰고, 이 과정에서 왁의 예측팀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왁은 영화계에서 사용하던 ‘시나리오’를 예측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 미래는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하는 시공간이라는 점, 그 다양한 변화의 원인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래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또 그는 종종 '미래'라는 단어를 ‘급변’(the rapids)으로 바꿔 불렀다. 예측은 변화된 행동이 뒤따라야 완결되는데, 그러자면 미래가 급변한다고 인식해야 했다. 미래는 우리에게 '변화냐 현상유지냐'의 선택권을 주지 않고, '변화의 창조자가 될 것인지 변화의 희생자가 될 것인지'를 묻는다.
 
사실 변화의 창조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변화의 결과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실패와 성공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데 선뜻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다. 왁은 예측의 어려움이 실제 행동을 옮길 주체들의 심리적 저항에 있음을 간파했다. 조직의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관리자들이 변화의 원인에 대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고, 변화했을 때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예측의 결과물은 쓸모없어진다.
 
흔히들 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기 1년 전, 왁의 예측팀이 석유가격 급변 시나리오를 내놓은 것을 두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기념비적인 보고서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왁이 발표한 보고서는 다양한 가정(정부의 개입, 저성장, 석유초과공급 등)에서 석유 가격이 급락하거나 급등할 수 있음을 분석한 것이었다.  
 
왁은 훗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72년 보고서는 최고 의사 결정자들이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석유 가격을 결정하는 새로운 요인들(국가별 예산이나 인플레이션 추이, 오일 수급 변화에 따른 나라별 대응의 차이 등)을 고려하도록 인식의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0년 동안 예측팀에서 정확한 예측의 수치를 제시하기보다 기존의 경영 관행에 심각한 의문을 갖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최종 의사 결정자들이 미래에 대한 우려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건너가도록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의 뒤를 이어 피터 슈워츠, 반 더 헤이덴 등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들이 예측팀을 이끌었고 로열더치셸의 미래예측은 일상적인 경영 활동으로 정착됐다.
 
로열더치셸뿐 아니라 벤츠 제조사 다임러,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 프랑스 텔레콤, 식품회사인 미국 펩시코 등은 오랫동안 미래예측팀을 운영해온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다임러는 79년 사회기술연구그룹을 설립한 이래 ‘3각 예측법’ 등을 개발하면서 40년 가까이 미래연구에 투자했다.  
 
이들은 기업의 미래예측이란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보이는 변화의 조짐을 발견해 경영층의 인식 틀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펩시콜라로 유명한 펩시코는 ‘예측과 혁신’이라는 부서를 두고 미래를 내다본다. 이들에게 예측은 급변의 세상에서 새로운 질문, 엉뚱한 질문을 제기해 생존의 전략을 확대하는 활동이다.  
 
예측을 통한 미래 준비는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됐다. 50년대 미국 국방부는 랜드연구소를 통해 당시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 전쟁을 벌인다면 어느 쪽이 유리한지 예측한 바 있다. 국가의 미래 준비는 6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사회과학방법론을 개발해 활용할 것을 권고하면서 활발해졌다.  
 
 OECD의 권고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비슈벨 총리가 72년 상원에서 정부 정책을 위한 과학위원회(WRR)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것을 기점으로 미래 연구가 시작됐으며, 77년 정책과학위원회의 설립으로 구체화했다. 이 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연구하며, 설령 네덜란드의 집권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과 다를지라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한다.
 
정부의 미래 연구는 네덜란드와 스웨덴 미국을 필두로 뉴질랜드ㆍ호주ㆍ핀란드ㆍ독일ㆍ싱가포르ㆍ영국과 한국 등이 뒤따르며 발전했다. 미국의 경우, 74년 국회 개혁위원회가 미래준비법을 통과시켜 75년부터 예산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위원회가 미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안건을 상정하도록 했다.  
 
법안을 만들 때 장래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도록 했다. 뉴질랜드의 정부 미래위원회와 호주의 미래위원회는 80년대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핵화 전략을 채택하거나 국제경쟁에 적합한 경제개혁 등을 단행한 바 있다. 핀란드 국회는 93년 정부의 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미래위원회의 활동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자 99년부터 국회의 상시적인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신임 총리는 국회에 15년 뒤의 국가 미래비전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미래위원회는 이를 평가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부터 ‘시민과 미래 대화’를 시작, 국민이 제기하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웹사이트를 통해 받고 공론의 장을 펼친다.  
 
미래 연구의 선진국들은 초창기엔 예측의 정확성을 목표로 미래를 보려고 했으나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후 미래예측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거나 미래예측에 다양한 사회의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했는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최근에는 미래 예측의 연구대상을 자국뿐 아니라 주변국과 세계로 넓혀 지구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조지후와 키넌의 2006년 ‘기술예측과 사회변화’ 저널 논문). 이렇게 보면 미래 예측은 우리에게 좀 더 장기적인, 포괄적인 시각에서 변화의 영향을 헤아려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오늘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spark@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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