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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뱀이 뱀을 무는 구도, 열전도 냉전도 아닌 ‘온전’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역사의 역습』 쓴 김용운 박사
김용운 박사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면 꼭 문제가 생겼다“며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 한반도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고 한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김용운 박사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면 꼭 문제가 생겼다“며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 한반도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고 한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김용운(91) 박사(한국수학문화연구소장·한양대 명예교수)는 지금도 가끔 대학에서 수학 강의를 한다. 지난주에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특강을 했다. 하지만 수학은 그를 규정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그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역사와 문명을 향해 있었다. 최근 출간한 『역사의 역습』은 태초의 혼돈에서 시작해 다시 ‘대(大) 카오스’에 이른 현대 문명의 궤적을 탐색하고, 그 속에서 한반도의 진로를 모색한 역저다. 인간과 역사, 과학과 철학,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지적 담론이 종횡무진으로 펼쳐진다. 이 책에서 그는 북한 핵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한반도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수학에서 출발해 역사 철학으로 간 독특한 학문 편력을 가진 그의 눈에는 6·12 북·미 정상회담이 어떻게 비쳤을까. 김 박사를 지난 13일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만났다.
 
 
북한 핵 외교 25년간 컴퓨터처럼 정확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회담이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방향성과 시대적 의미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봅니다. 방향성으로 보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역사였습니다. 한자 ‘사(史)’는 깃발을 든 사람, 즉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그런데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역사의 방향이 바뀐 겁니다. 그 동기는 과거의 원한,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에 대한 복수입니다. 중동의 경우 오스만튀르크 제국 해체 과정에서 강대국들이 전통이나 역사, 종족을 일절 무시하고 마음대로 선을 그어 국경을 획정했어요. 그와 똑같은 일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벌어졌습니다. 강대국들이 38선을 그어버린 것이죠. 현대사에서 우리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합니다. 오사마 빈라덴은 9·11 테러 후 ‘이것으로 100년의 한을 풀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언젠가 한반도에서도 역습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강대국 미국과 최빈국 북한의 지도자가 겉만 봐서는 누가 세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대등한 입장에서 싱가포르에서 만났습니다. 그걸 보면서 역사의 역습이 성공했다고 느꼈습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은 김씨 왕조 체제의 유지와 안전 때문입니다. 박사님 견해는 지나친 확대해석이거나 논리적 비약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핵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김씨 왕조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시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의 집단무의식입니다. 북한이 핵 개발에 매진한 데는 우리가 외세, 특히 미국 때문에 이렇게 당했다는 집단무의식이 작용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삼국을 통일한 때부터 1250년간 중국에 사대하며 조공국가로 지냈습니다. 이어 36년간 일제에 식민지배를 당했고, 지금은 73년째 분단국가로 살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원한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거지요.”
 
박사님 논리대로라면 남한도 핵 개발을 해야 했던 것 아닙니까.
“남한 사람들 잠재의식에도 38선을 그은 외세에 대한 원한이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과 같은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했을 뿐이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이 미국에 대한 역사의 역습에 성공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은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상대의 꼬리를 물고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는 구도입니다. 저는 이 상태를 열전도, 냉전도 아닌 ‘온전(溫戰)’이라고 부릅니다. 큰 뱀이 작은 뱀을 삼키다 보면 결국 자기 머리를 자기가 먹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핵을 개발한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갖춤으로써 공멸의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논개식 오기를 가진 한국 사람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토끼가 온몸에 독을 잔뜩 바르고 늑대에게 대드는 격입니다.”
 
 
트럼프 아니더라도 북과 대화로 해결
 
그래서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는 뜻입니까.
“북한을 이대로 두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미국입니다. 중국이 치고 올라오고 있고, 러시아도 힘자랑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이어 다른 약소국들로 핵이 확산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집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지금은 대화를 통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물론 북한과 전쟁할 마음은 없습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승자는 김정은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양보한 것은 사실 없습니다.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트럼프가 가장 의식한 것은 미 유권자들입니다. 트럼프에게는 시간의 약점이 있습니다. 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김정은은 그 약점을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김정은에게도 약점이 있지만 100만 명을 굶겨 죽이고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체제이기 때문에 트럼프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가 실망스럽다는 평이 많습니다. 공동성명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명시하지 못했고, 비핵화 시간표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CVID는 북한 전 국토를 미국이 마음대로 뒤지고 다니는 걸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걸 고집하는 건 전쟁하자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해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김씨 왕조 유지가 지고의 목표인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다 내놓진 않을 겁니다. 분명히 몇 개는 숨길 것이고, 미국도 그걸 알 겁니다. 그럼에도 조금씩 서로 주고받으며 점차 해결되어 가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고, 신뢰가 쌓이길 기다릴 것입니다.”
 
그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그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몇 개를 숨겨놓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군사적 효용성이 떨어져 무기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상황을 미국은 기대하겠지요. 일종의 소프트랜딩입니다. 하드랜딩을 하겠다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 소프트랜딩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미국은 북한과 왕래하며 신뢰를 쌓고, 북한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할 겁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 들어가면 북한도 언젠가 핵이 쓸모없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될 거란 기대지요.”
 
그런데도 CVID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습니다.
“정치적인 목소리이지 현실적인 목소리는 아닙니다.”
 
북한의 핵 외교를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 외교관들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의 핵 외교는 컴퓨터로 계산한 것 같이 정확하다고 합니다. 25년 동안 모순과 오류가 없었다는 겁니다. 북한 외교의 사명은 일관되게 김씨 왕조와 백두혈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이나 미국 외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왔다 갔다 하니 북한을 당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어떻습니까.
“파티는 북한이 하고, 청구서가 날아오면 우리는 돈만 내는 격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우리가 내야 할 겁니다.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파티는 북한이 하고 우린 돈만 내는 격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잘 풀릴 것으로 보십니까.
“제가 제일 걱정하는 것이 한반도의 꽃샘추위입니다. 봄이 왔다 하면 금방 겨울이 옵니다. 중국의 조공체계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해방되면서 바로 38선이 그어졌습니다. 독재 정권이 끝났나 싶으면 다음 독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꽃샘추위로 고생한 이유는 외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열 때문이기도 합니다. 외세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우리 사회는 분열됩니다. 지금 한반도에 봄이 왔지만 저는 남남갈등과 북북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걸 막으려면 한반도에 찾아온 이 천금 같은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우리의 집단무의식이모여야 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꽃샘추위를 막기 위한 제도적 방책은 없겠습니까.
“저는 그게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라고 봅니다. 한반도 역사에서 중국은 불행의 씨앗입니다. 삼국통일, 병자호란, 동학운동, 청일전쟁 때도 그랬지만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시진핑이 처음 트럼프를 만나 한 말이 한반도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고 한 얘기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됩니다.”
 
중립화를 하려면 한·미 동맹도 포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는 한·미 동맹에 너무 길들어 있습니다. 습관처럼 의존하고 있어요. 이참에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중립화를 지금 당장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공론화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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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