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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밀도 4면체 vs 고밀도 무질서 … 물은 두 얼굴의 액체다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우리는 물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이상한 액체다. 예컨대 물은 얼음일 때가 아니라 4℃ 근처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 그렇지 않다면 강과 호수는 바닥부터 얼기 시작해 그 속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서서히 죽게 만들 것이다.
 
만일 열을 흡수하는 능력이 그토록 크지 않다면 어떨까. 우리 행성은 오래전에 끓어 넘쳤을 것이다.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 6월호의 커버스토리를 보자. 제목은 ‘물의 형태-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액체’.
 
사실 거의 모든 물질은 기체와 액체 상태가 서로 바뀌는 고온의 임계점을 지닌다. 하지만 일부는 저온에서 신비한 두 번째 임계점을 나타낸다. 액체 실리콘과 게르마늄의 경우가 그렇다. 적절한 온도로 냉각시키면 각기 다른 밀도를 지닌 각기 다른 액체가 되는 것이다. 원자 구성은 동일하지만 원자들의 배열방식이 달라지는 탓에 속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물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시사하는 실험이 예전에 있었다. 물의 밀도가 저온에서 요동치며 온도가 낮아지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얘기다. 보통은 무언가의 온도를 낮추면 요동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1992년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팀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았다. 물이 섭씨 0도 아래에서도 여전히 액체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냉각(과냉각)하는 과정을 컴퓨터로 모의 실험한 것이다. 그 결과 밀도 요동은 실제로 존재하며 온도가 내려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것이 두 번째 임계점의 신호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온도에서 물이 각기 다른 밀도를 지닌 두 종류의 액체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액체-액체의 상전이가 일어나 물이 두 상태 사이를 빠르게 오가게 된다는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임계점이 존재해야 하는 영역은 영하 45도였다. 심지어 과냉각 상태에서도 자발적으로 얼음 결정이 만들어질 온도인 것이다. 물을 극도로 빠르게 냉각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앤더스 닐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지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25년 만의 실험적 성과다.
 
연구팀은 한국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최첨단 설비를 사용해 극도로 순수한 물의 방울들을 진공실에 떨어트렸다. 매번 온도를 급격히 낮춰가면서 물 분자들의 운동과 물 분자 사이의 거리를 x선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영하 44도에서 물의 밀도가 가장 크게 요동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물 분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배열 상태를 지닌다. 저밀도의 규칙적인 사면체와 고밀도의 무질서한 혼합체가 그것이다. 물이 지닌 여러 독특한 속성을 두 상태 사이의 요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과냉각된 액체는 얼음의 결정구조를 가지지 않은 일종의 무질서한 고체로 바뀐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물이 어는 과정에서 우연히 보이는 이상한 행태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상황이 바뀌었다. 두 종류 액체설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얼지 못하도록 특수한 부동액을 섞은 물을 과냉각했다. 그 결과 온도가 내려가면서 밀도가 정말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의 요동을 일으키는 온도는 영하 83도였다. 물의 밀도는 낮아졌다 높아졌다를 반복했다. 이 혼합액은 순수한 물과 구조가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연구팀은 물이 새로운 임계점을 실제로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 결과는 순수한 물에서 액체-액체 상전이가 존재한다는 유력한 간접 증거로 평가된다. 액체 상태의 물이 저밀도의 사면체와 고밀도의 무질서한 뒤섞임이라는 두 가지 구조를 실제로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닐슨의 연구팀은 이달 중 한국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더 깊이있는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이 이론이 맞는다면 물의 특이한 속성 중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1. 물의 밀도는 4℃에서 가장 높다.
 
열을 가하면 규칙적인 4면체 구조가 줄어들고 분자들이 좀 더 조밀하게 압축된 무질서한 배열이 늘어난다. 하지만 열은 또한 무질서 영역에 있는 분자들도 휘저어서 서로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4℃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이 효과가 더 커져서 물의 밀도가 낮아진다.
 
2. 물의 온도를 높이려면 예외적으로 많은 열에너지가 필요하다 (비열이 크다).
 
추가되는 열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분자들을 사면체 구조로부터 무질서한 뒤섞임 상태로 변화시키는 데 쓰인다. 분자의 운동에너지를 증가시켜서 온도를 높이는 데 쓰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3. 물의 비열(1g의 온도를 1℃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은 35℃에서 최소가 되며 이보다 뜨겁거나 차가우면 비열이 커진다.
 
4. 물의 압축률은 온도가 높아지면서 계속 줄어들다가 46℃에서 최소가 된다.
 
5. 물은 압축하기가 특히 어렵다.
 
6. 물속에서 소리가 전파되는 속도는 섭씨 74도까지는 점점 빨라지고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다시 느려진다.
 
7. 물 분자는 고압에서 오히려 더 쉽게 확산한다.
 
8. 다른 많은 액체와 달리 물은 고압에서 점성이 오히려 줄어든다.
 
9. 압력이 높아지면 열을 가할 때 더 많이 팽창한다.
 
10. 중수(무거운 물)는 점성, 끓는 점, 녹는 점이 보통 물과 크게 다르다. 중수란 중성자가 한두 개 더 많은 수소 동위원소를 지닌 물을 말한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서울대 졸업.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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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