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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주 52시간 공약 … 자의반 타의반 야근은 어쩌나

D-15 긴급 진단
주당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연간 근로시간이 2052시간(2016년 기준)에 달하지만, 생산성이 낮은 한국의 취약한 노동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꿀 기회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위반할 경우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할 정도로 처벌 규정이 엄격한데 아직도 근로시간의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아 사용자들은 처벌 등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근로자는 일은 일대로 하고 급여는 감소하는 일명 ‘공짜 야근, 몰래 근무’ 사태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경쟁력 약화와 임금 감소 등의 문제를 풀 대안도 마땅치 않다.

5년 진통 끝 여야 합의로 도입
내달 1일 시행되지만 기준 모호
상황에 따라 ‘일’ 정의 들쭉날쭉
“시범 케이스 걸릴라” 기업 몸사려

 
현행 근로기준법은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씩 40시간으로 정하되 연장근로를 한 주에 12시간씩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을 ‘근로일’에서 제외해 토·일요일 각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를 허용해 왔다. 따라서 사실상 최장 허용 근로시간은 7일 기준 68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음달 1일부터는 토·일을 포함한 주 7일을 모두 ‘근로일’로 정의하기 때문에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된다.
 
 
근로시간 단축, 20대 국회서 가까스로 합의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대 국회 중인 2012년 7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동조했다. 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한국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각론으로 들어가자 여야 이견은 생각보다 컸다. 근로에 대한 정의, 근로자 임금 손실 보전 방식에 대한 해결책은 불분명했다. 여기에 재계에서 생산성 차질 등을 들어 반대를 표명하면서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지지부진한 논란이 계속됐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은 20대 국회로 넘어왔다.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다. 여당이 휴일수당 할증률을 1.5배로 하자는 야당 주장을 수용하면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합의로 2월 28일 기초연금법, 5·18특별법 등 70여 개 법안과 함께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표결 결과는 재석 194인 중 찬성 151인, 반대 11인, 기권 32인이었다. 자유한국당 의원 일부가 시기상조라며 반대표를 던졌고, 정의당 의원들은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상에서 빠졌다며 기권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근로시간 단축이 정착된 유럽 국가들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유럽연합(EU)은 1993년부터 연장근로를 포함해 4개월 평균 주당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2003년에는 노동자가 원하면 초과 근무할 수도 있다는 예외규정을 마련하고 탄력적 근로 가능 기간은 12개월로 늘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이 2주에 불과하다.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해도 3개월 이내로만 가능하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여지가 적은데도 처벌규정은 강력하다. 근로시간 규정을 위반할 경우 대표 이사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경직된 근로시간과 엄격한 처벌 규정에도 업무 시간의 범위는 불확실하다. 애초부터 ‘근로시간’ ‘일’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종과 직무에 따라 업무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업무를 해야 하는 직종이 있고, 일터를 떠나는 순간 업무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직종도 있다.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 살피는 어려움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시간이란 대체로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볼 수 있느냐’의 여부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흡연 시간을 대체로 근로시간으로 보지만, 회식은 근로시간이 아니다. 흡연 중에는 상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자리로 복귀해 일할 수 있지만 회식은 상사가 참석을 강제한 경우에도 근로계약 상의 노무 제공의 일환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업 시간이 아니더라도 작업을 위해 필요한 준비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 요금통 반납과 재설치에 필요한 시간은 근로시간이 된다.
 
휴식이나 수면 시간이 근로 시간에 속하는지는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 근로 계약의 내용, 취업 규칙과 단체협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휴식 시간이라고 해도 상급자가 불러 일을 시킬 수 있는 경우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가령 경비원의 경우 근무 초소 내의 의자에서 수면 중이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즉각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휴게 시간이 아닌 대기 시간으로 본다는 판례가 있다. 결국 다툼이 생기면 사안에 따라 개별 판단해야 한다.
 
 
노동부 가이드라인도 명확하지 않아
 
문제는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이 주로 생산직이나 일반 사무직, 단순 노무직 중심이라는 점이다. 스타트업 종사자, 연예인 등 다양한 업종을 반영하지 않았고, 별다른 지침조차 없다. 잘못 판단했다가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사용자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가령 정보기술(IT) 기업의 경우 출시 직전 이른바 ‘크런치모드’에 돌입해 집중적으로 근무해 왔다. 이는 업계의 악습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출시가 임박해 결과물이 쌓이고 수정이 몰리는 업종 특성을 반영한다. 강제로 시간을 단축하면 업무 흐름, 일정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밖에 드라마나 영화, 연예 산업 종사자의 근로시간 제한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급여 감소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도가 줄어들면 급여 수령 총액은 감소한다. 추가근무가 많지 않고 기본급 중심인 직종은 큰 문제가 없지만 기본급이 낮은 대신 수당으로 목돈을 보전해 줬던 중소 제조업체 근로자는 타격이 클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폭은 종업원 수 300명 이상 기업이 7.9%(41만7000원), 중소기업(30~299명)은 12.3%(39만1000원)였다. 대기업 직원의 임금이 더 줄어들지만 감소폭은 중소기업이 더 큰 셈이다. 고용노동부도 근로시간 감소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퇴직금 등을 중간 정산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26만6000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연간 12조3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부담이 총비용의 70%에 달한다. 당장 다음달부터 생산량을 줄인다는 중견 업체가 많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후 중소기업들은 평균 6.1명의 인력이 부족하고 생산량도 20.3%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인력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은 해외 이전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기업은 경쟁력, 근로자는 ‘공짜 야근’ 걱정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일찌감치 52시간 시대 예행에 들어갔다. 올 2월부터 사무직 직원 대상 자율출퇴근제를 시험 도입한 LG전자는 PC에 ‘개인시간 입력’ 항목을 신설해 근로자의 시간을 관리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14년부터 오후 6시에 PC가 꺼지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2시간 휴가제(반반차)를 운영 중이다.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폐점시간을 오후 11시로 1시간 앞당겼다. 신세계백화점 일부 점포의 개점시간을 오전 11시로 30분 늦췄다. 롯데물산 등도 PC 자동 오프제를 실시하고 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일부 임원은 처음에는 어색해하면서 계속 새벽에 나와 독서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제시간에 온다”고 말했다.
 
업종·부서·직급에 따라 52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뚜렷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기업 112곳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시간에 따라 가장 애로를 많이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부서는 생산현장인 공장이었다. 연구개발 부서와 영업 부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 그룹 계열사 홍보실 관계자는 “회사가 ‘칼퇴근’을 강조하지만 24시간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홍보실은 예외로 하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있다”며 “당장 1일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단축 근무에 신경을 쓰는 배경에는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곤란하다”는 몸사리기도 일조했다. 한 그룹 관계자는 “근로시간 초과가 적발되면 대표에 대한 처벌이 진행될 수 있는 데다 바로 악덕 기업으로 찍힐 것”이라며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급이 낮은 사원급 직원은 할 일은 그대로이고 충원이 없는 ‘자의반 타의반 몰래 야근’을 걱정한다. 이미 시범 기업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눈치가 보여 사무실 불을 끄고 개인 노트북으로 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만큼 생산성 향상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07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348시간)에 이어 둘째로 길다.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은 34.3달러로 22개 회원국 중 17위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산업 특성에 맞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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