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정은 55층 전망대 갈 때 경호원들은 뛰어 올라간 까닭

싱가포르서 본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메르리온 파크를 방문했다. 북한 경호원들이 김 위원장을 에워싼 채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메르리온 파크를 방문했다. 북한 경호원들이 김 위원장을 에워싼 채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새로운 길에 들어서기로 결정한 것인가, 아니면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양보를 얻어내고 정작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북한 외교 전술의 반복인가 여부다. 많은 이들이 이번 정상회담이 답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 엘리베이터
공간 좁아 계단으로 허둥지둥

북 비핵화 과정 늦추려 한다면
정상회담 부정적 해석 정확해져

한·미 훈련 중단 명시는 다소 성급
북이 핵보유 자산 명단 내면 진전

 
양국 모두 이번에는 “새로운 관계가 구축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얇은’ 공동성명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회담 후 내놓은 말에선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정상 회담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김 위원장이 이번에 북한의 진로를 바꿔야 한다고 진정 결정한 것이라면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이다. 공동성명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두 지도자가 신뢰를 구축하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정말로 비핵화할 것이라면 한·미 간 연례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을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도 그리 중요한 게 아니게 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결행하면 정상회담의 명성을 누릴 자격이 있다.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통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줄어들고 한·미 군사훈련과 대북 제재 역시 불필요해진다.
 
김 위원장이 방향을 바꾸었다고 믿는 건 그가 갑자기 따뜻한 가슴을 지닌 민주주의자가 됐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할 만한 이유가 있다. 정권의 정통성과 국민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건 골치 아픈 일이다. 김일성은 자신이 국민을 위해 지상낙원을 조성했다고 주장하면서 남한은 ‘살아 있는 지옥’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기근으로 북한이 낙원이 아니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더구나 ‘정보 장벽’이 붕괴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부유한 외부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김정일은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북한이 공격적인 외세에 둘러싸인 희생자이고 지도자의 지혜와 핵무기의 보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바깥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높은 수준의 삶에 대해 갈망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으론 충분치 않았다. 경제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미국 대통령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국제적 정치인으로, 또 주민들을 위해 보다 밝고 번영된 미래를 위해 애쓰는 것으로 선전하는 게 그의 정통성과 북한 내 권력을 강화할 것이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북한이 근본적으로 입장을 바꾸진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이 비핵화를 향해 단계적으로 협의하기로 한 이상 협상을 위해 마지막까지 강력한 카드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작 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찬사와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명시함으로써 강력한 카드 중 두 개를 써버렸다.
 
미국의 또 다른 강력한 카드인 대북제재도 허술해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것처럼 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만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말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북한에 대한 모든 제재는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정상 회담 이후 제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회담 뒤 양국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고 했다. 중국은 또 북한과 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몇 시간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 제재에 대한 “조정”을 요구했다. 중단됐던 북·중간 항공 운항도 조용히 재개했다. 둘째 북·미 공동성명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한이 북한과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북한의 조선소 건립을 지원한다는 약속이 포함돼 있다. 긴밀한 경제 협력이 경제 제재 이행과 양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만약 김 위원장이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라고 우리가 잘못 결론 내면 황금 같은 기회를 망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가 진실하지 않은데 우리가 기회를 준 것이라면 국제사회는 약화하고 긴장국면으로 돌아갔을 때 더 큰 위협을 낳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다음 행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공동 성명은 “가능한 한 빨리” 후속 협상을 할 것을 명시했다. 만약 이어지는 협상에서 북한 대표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고 비핵화 과정을 늦추려고 한다면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이 더 정확하다는 뜻일 게다. 반면 북한이 선의를 보여 주기 위한 조기 조치를 취한다면 김 위원장이 정말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엔 미국 등 외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엔진 시험 시설을 파괴하겠다는 정상회담 약속을 이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앞서 북한이 핵 실험장을 파괴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북한이 완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핵 보유 자산의 명단을 제공할 수도 있다. 과거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아 협상에 실패했다. 명단을 제공하는 것은 북한에 어려운 일이 아니며 실질적인 진전이 될 것이다.
 
어떤 해석이 정확하든 이번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재밌는 순간도 있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호텔 전망대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곳에 있었다. 김 위원장이 카메라와 군중들을 향해 웃으며 호텔로 들어왔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뒤 경호원들이 나와 허둥대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공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호원들이 전망대까지 55층을 뛰어 올라간 후 어떤 상태였을지 궁금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