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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레터]보수의 몫이 된 '폐족'

내가 느낀 가장 큰 딜레마는 지지율이 올라야 일할 수 있는데, 일하면 지지율이 깨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점이다.”

아직 우리는 실컷 울 여유가 없다. 우리는 폐족(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이다. 상을 치루는 3일 내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다가 삼우제를 끝내고 부모님이 계셨던 빈방에 들어와 비로소 펑펑 울어버리는 어느 효자의 눈물처럼, 그렇게 모진 마음으로 이 슬픔과 패배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11년 전 기사로 레터를 시작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26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송년만찬회에서 임기말 대통령의 회한을 토로하며 한 발언과, 같은 날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인 안희정씨가 홈페이지에 올린 ‘폐족’ 글입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정치에는 10년 보수정부가 펼쳐집니다. 진보는 그 10년을 쓸개를 핥으며 별렀습니다.  
  
엘리베이터 탑승한 홍준표 대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사퇴 의사를 밝히고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다. 2018.6.14   jjaeck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엘리베이터 탑승한 홍준표 대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사퇴 의사를 밝히고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다. 2018.6.14 jjaeck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년 6월 셋째주가 저뭅니다. 6월12일과 13일은 이제 역사 속에 적힐 겁니다. 오늘의 보수는 이 날들을 절망과 분노로 기억해야할 겁니다. 11년 전 참여정부로 대표되는 진보가 그랬듯이. 하지만 민심은 윤회합니다. 지금은 14대2지만, 10년의 기간 속에서 14대2가 지속되진 않습니다. 변화한다면 14대2는 2대14로도 뒤바뀔 수 있습니다. 실패와 실수를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6ㆍ13 지방선거 결과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탄핵이 첫 경고였습니다. 지난해 대선 결과가 둘째 경고였습니다. 모진 부모라도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매를 세 번 들진 않습니다. 하지만 들었습니다. 변해야 한다고 그토록 잔소리를 했는데도 변하지 않아서입니다.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는 홍준표 대표의 사퇴 기자회견은 11년 전 안희정의 ‘폐족’ 발언과 맞닿아 있습니다. 2018년 보수의 궤멸은 폐족보다도 더 황폐하고 치명적입니다.
 2004년 국회 탄핵안 가결의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섰을 때 ‘장외’엔 박근혜라는 신상품이라도 있었습니다. 다 쓰러져 가던 한나라당은 그 신상품을 앞세워 콘테이너 당사에 입주하고, 변하겠다고 읍소하고, 윤여준ㆍ원희룡ㆍ남경필 등 젊고 새로운 보수 이미지로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엔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게 없습니다. “핵폭탄을 맞았다”는 유승민 전 대표의 말마따나 온통 폐허입니다. 매를 든 부모는 절반은 미안한 마음으로, 절반은 어찌하나 보자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알량하게 113석의 당 대표 자리를 놓고 욕심을 부린다면 보수 정치는 수렁 속으로 더 깊이 추락할 겁니다. 폐허에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새로운 설계도로 오래 갈 튼튼한 새 집을 짓는 게 답입니다. '그들만의 욕심'을 넘어서 여의도 밖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걸 해낼지 못 해낼지에 따라 보수의 위기는 5년으로 끝날지, 10년을 더 갈지 기간이 정해질 겁니다.
  
자유한국당이 15일 오후 국회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15일 오후 국회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싱가포르 TK(트럼프ㆍ김정은) 회담은 우리를 일깨웠습니다. 한미동맹의 현실 말입니다. 오래된 보수에게 한미동맹은 ‘혈맹’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가치동맹이고 맹목적 동맹입니다. 태극기 집회 때마다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걸고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미동맹이 절대가치동맹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김정은이 요구한 한ㆍ미 군사훈련 중단을 한국 정부에 물어보지도 않고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선선히 양보한 게 증명입니다. 회담의 본질인 비핵화마저도 CVID 대신 CD로 봉합해 버렸습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 충분히 실리를 확보했다고 본 겁니다.
 우리가 트럼프의 협상력을 “실패”로 규정해도 그건 허공에 빈 주먹 날리기입니다. 우리가 참석하지 않은 북미회담에서 동맹인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 우리의 이익을 대신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어쩌면 순진했습니다.
 트럼프뿐이 아닙니다. 이런 트럼프를 보통의 미국인들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미국인들 중 51%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을 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번 회담이 핵 전쟁 위험을 낮췄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39%가 그렇다고 답해, 변하지 않았다는 37%보다 많았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outfox’라는 표현으로 트럼프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미 선택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으면, 바뀐 환경에 맞춰야 합니다. 내가 바꿀 힘이 있을 때 그건 바뀔 겁니다. 트럼프는 그걸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습니다.  
 
 중앙SUNDAY는 이번 주 ‘민심이 보는 보수’를 스페셜리포트로 준비했습니다. 보수의 시각으로 선거 현장을 뛴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본 민심과, 진보의 시각으로 선거 현장을 뛴 이철희 민주당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이 본 민심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었습니다. 진보 교육감 시대를 맞아 위기에 몰린 ‘경쟁 교육의 철학’도 교육전문기자인 강홍준 사회에디터가 진단했습니다. 싱가포르 회담의 현장을 누빈 차세현 기자가 정리한 '현장의 TK(트럼프-김정은) 회담'도 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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