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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시건방? 벽보 사진, 누군가에겐 쾌감 줬을 것”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15일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15일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청소년들이 뽑은 서울시장은 누구였을까.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3일 투표권이 없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 4만5765명이 한국YMCA 등의 주관하에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박원순 후보는 2위였다. 그럼 김문수 후보나 안철수 후보? 아저씨들은 모두 탈락. 당선자는 36.6%를 얻은 기호 8번 신지예(28) 녹색당 후보였다. 1990년생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로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도발적’ 슬로건에 ‘삐딱한’ 시선과 ‘도도한’ 표정의 얼굴 사진으로 선거 초반부터 화제를 모은 터였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내걸고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4위 기염

청소년 모의투표는 당당히 1위
TV토론 하면 김문수 이겼을 것

벽보 훼손 논란에 맘고생 컸지만
“결국 사랑이 혐오 이길 것” 확신
소외된 약자 배려하는 정치가 꿈

워낙 튀는 선거 포스터에 훼손 논란이 겹치면서 어느 후보 못지않게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또한 맘고생이 적잖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완주했고, 개표 결과 8만2874표(1.7%)를 얻으며 9명의 후보 중 ‘빅3’에 이어 당당히 4위에 올랐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20대 군소정당 후보가 8만 표 넘게 받다니, 청소년 모의투표 1위만큼 쇼킹한 결과였다. 선거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을 15일 오전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청년기업 오늘공작소에서 그를 만났다. 1시간 넘게 이어진 그의 답변은 차분하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벌새 같은 사람 있어야 세상도 바뀌어
선거 결과에 만족하나.
“만족스럽지 않다(웃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싶었다. 물리적 한계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북ㆍ미 정상회담에 가려 유권자들이 선거가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분위기가 좀 늦게 떴달까. TV토론에라도 나갈 수 있었다면 김문수 후보는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득표를 예상했나.
“목표는 5%였다. 그래도 저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정치를 내걸고 평등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는 첫 발자국을 뗐다는 점에서 기쁘게 생각한다. 사실 지난해 12월 시작할 때만 때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녹색당이 광역단체장 후보를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탁금 5000만원도 모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셔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선거였고 용기도 많이 얻었다. 어떤 정치를 해야 할까 확신도 섰고.”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나.
“2012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녹색당 창당 소식을 듣고 내가 꿈꾸던 정당이다 싶어 가입했지만 정치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신 2013년 동료들과 청년기업을 만들었다.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청년들이 주체가 되는 사업을 해보자는 게 목표였다. 사실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벌기 위해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없다 보니 살림과 육아, 건강을 챙기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 않나.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시장 출마까지 했다.
“사무실 옆에 1970년대 지어진 주택들이 있었다.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분들이 많아 정이 넘치는 동네였다. 그런데 2년 전 재건축 바람이 돌며 집값이 뛰니까 자의 반 타의 반 뿔뿔이 흩어지더라. 뭐가 단단히 잘못됐구나,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본인들의 기득권만 공고히 하는 데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며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결국 2016년 총선 때 비례대표로 출마하면서 현실 정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김경빈 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김경빈 기자

그러면서 그는 어릴 적 경험을 소개했다. “1990년생 백말띠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백말띠 여성은 남성을 잡아먹을 거라는 등 온갖 험한 소리를 듣고 자라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해 낙태가 가장 많았고 성비도 최악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자기가 선택해서 태어난 성별이 아니잖느냐. 그런데 그 성 때문에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는 게, 그리고 그런 상황을 정치가 풀어주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강남역 사건도 그렇듯이 그때그때 미봉책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면 당신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말해주고 싶었다. 정치가 바로 서면 개인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렵진 않았나.
“(잠시 말을 멈춘 뒤) 밀림에 큰불이 나자 모든 동물이 달아나는데 벌새 한 마리가 물을 머금고 바쁘게 오갔다. 코끼리가 물었다. 그 정도 물로 불을 끌 수 있겠어? 벌새가 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가냘픈 목소리에 불과하겠지만 벌새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도 바뀌지 않겠나.”
 
‘페미니즘=여성 우월주의’는 오해일 뿐
실제로 선거를 뛰어보니 느낌이 어땠나.
“정치가 변하길 바라는 시민이 정말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제 연설을 20~30분간 끝까지 들어주시고 손편지도 건네주시고. 어떤 분은 ‘정치가 나와는 상관없는 거라 생각했는데 와서 들어보니 나와 정말 가까운 것이란 걸 깨달았다’며 고마워하셨다.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에서도 20대 청년 지지율에서 제가 김문수 후보를 앞섰다. 사회 변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 아니겠나. 1.7%였지만 이제 시작이다. 함께 걸어갈 것이다.”
어려웠던 점은.
“군소정당 후보의 비애가 컸다. 한국의 선거법엔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 후보 기탁금 5000만원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영국은 95만원, 네덜란드는 16만원에 미국은 아예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만큼 한국 정치의 문턱이 높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선거권을 갖고 있는데 기탁금이란 장벽으로 청년과 서민들이 정치를 할 수 없게 해놓은 거다. 법을 만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니 근거도 전혀 없이 액수를 정했더라. TV토론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이 TV토론을 통해 후보들의 정책을 평가하도록 하고 여론조사를 하는 게 순리 아닌가. 그런데 거꾸로 여론조사를 먼저 하고 그 기준에 따라 주요 정당 후보들만 TV토론에 나가는 게 현실이다.”
벽보 훼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편으론 그런 현상이 신기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시건방? 의도한 건 전혀 아니었다. 당당한 눈빛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층에겐 시건방지게 느껴졌다는 게 오히려 재밌었다.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상(像), 정치에 대한 상이 시건방지다는 단어에 담겨 있다고 본다. 반면 어떤 세대에게 제 사진은 쾌감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정치를 읽는 세대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더욱 당당하게 정치를 해나가려 한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훼손된 벽보(왼쪽)와 선거 유세 중인 신지예 후보. [연합뉴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훼손된 벽보(왼쪽)와 선거 유세 중인 신지예 후보. [연합뉴스]

그는 “오히려 더욱 걱정스러웠던 건 그걸 지켜보는 여성들이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한 지인은 자기랑 같이 사는 주민이 벽보를 훼손했다면 나 또한 일상에서 아무 이유 없이 공격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하더라. 일상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범인을 빨리 잡을 필요가 있다. 강남에서만 21개 벽보가 훼손됐는데, 전국에서 폐쇄회로TV(CCTV)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범인을 잡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원래 출마 목표가 이거였나.
“페미니즘만을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간 건 물론 아니었다. 페미니스트를 전면에 내건 것은 서울도 이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경제발전을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차별하고 배제했던 게 그동안 서울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평등이다. 이만큼 성취했으면 그동안 배제됐던 약자를 배려하는 게 이 시대 정치인들의 소명이라고 봤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평등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성평등이 가장 큰 현안이라고 본 거고.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 않나.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가장 뜨거웠던 주제 중 하나가 성평등 아니었나.”
페미니즘에도 여러 시각이 존재하는데.
“공동의 목표는 같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과 성차별과 가부장적 요소를 없애자는 거다. 모든 사상에도 여러 이념적 분파가 있지 않나. 페미니즘도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뿌리는 같다. 그래서 연대가 중요하다. 특정화되지 않은 사실로 어떤 존재 그 자체에게 보내는 미움과 차별과 증오의 감정이 혐오다. 반면 어떤 존재도 편견 없이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페미니즘은 혐오와 싸우고 있고, 결국엔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도 적잖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고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 오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없애자는 거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 목소리 반영 위해 다당제 정착돼야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김경빈 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김경빈 기자

큰 정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나.
“그런 유혹도 굉장히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의회 정치에서는 한 사람이 당선되는 것보다 어떤 정당이 어떤 목소리를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다당제가 정착돼야 소수의 목소리가 더욱 잘 반영될 수 있다. 왜 더불어민주당에 가지 않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 정당에도 카르텔이 워낙 공고했다. 줄도 서야 하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실제로 그동안 많은 사람이 쇄신하겠다며 거대 정당에 들어갔지만 거의 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나.”
남자 친구는.
“하하하. 없다. 연애는 많이 해봤다. 그리고 나는 비혼주의자다.”
선거 포스터 사진은 맘에 드나.
“(스마트폰을 꺼내 정면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이 사진이 더 좋았는데 다른 분들은 이게 더 강렬하다며 반대하더라(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이 제 출마 목표였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정치인으로서 꾸준히 활동해 나갈 것이다. 녹색당도 2020년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원외정당으로 6년간 국고보조금 한 푼 없이 버텼다. 그 생명력을 살려 원내 진입을 성공시킨 뒤 약자들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게 꿈이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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