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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을 포기한 후 아버지 재산을 처분해도 되나요?

기자
배인구 사진 배인구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53)
생전에 아버지는 검소하게 생활하셨습니다.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어머니 돌아가시고 제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니 화를 내셨습니다. 아직 당신 몸 하나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다고 하시며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시골집에서 사시면서 가능한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4명의 아들딸이 용돈을 모아 드리면 고맙다고 받으셨지만 그것은 모두 명절에 손자들에게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고 저를 부르셔서 빚이 있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며 우셨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몸이 불편한 동생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삼촌이죠. 삼촌은 아버지보다 5년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자식들, 제게는 사촌 동생이 되는 그들이 아버지는 너무 불쌍했나 봅니다.
 
삼촌이 돌아가신 후 시골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사촌 동생들에게 주셨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에게 동생을 부탁한다고 했던 그 말씀이 평생 가슴에 짐이 됐던 것이죠.
 
저희를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병든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 같은 것이 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우셨나 봅니다. 그런데 그 대출금의 이자를 아버지는 감당하지 못하셨고, 이자를 갚지 않으면 경매에 들어간다고 하니 급기야 사채까지 쓰셨답니다.
 
그런 지경에 이르도록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자식들이 아닌 조카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자식들이 알면 무척 속상할 거라고 생각하시고 저희에게 모르게 하신 거죠. 어떻게든 당신이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자식들을 힘들게 했다고 미안해하시는 아버지께 저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잘하셨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계산을 해보니 시골집과 몇 평 안 되는 농토를 좋은 가격에 팔아도 사채까지 갚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저희 남매는 상속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상속을 포기하면 사촌 동생들이 상속인이 되니 사촌 동생들에게도 상속을 포기한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가정법원에 상속을 포기한다는 신고서를 접수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시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경운기를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저희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으니 경운기를 팔아야 하는데 그럼 그 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생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저희는 경운기 대금을 저희가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사용해야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여러 가지로 경황이 없을 텐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습하려는 사례자가 존경스럽습니다. 많은 분이 피상속인의 채권자에게 시달리기 싫어서 상속 포기를 합니다. 그런데 상속 포기를 신고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자의 질문처럼 상속 포기 후에도 상속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생기는데 이것을 잘못 처리하면 상속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모두 상속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민법은 제1026조에서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하거나, 상속인이 한정승인 또는 포기한 후에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 소비하거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한 때에는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의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상속 포기 신고 후 아직 가정법원으로부터 포기를 수리하는 심판을 받지 않았음에도 화물차를 매도하거나 폐차한 상속인들에게 상속 포기의 효력 발생 전에 처분행위를 한 것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따라 상속의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3다73520 판결 참조).
 
따라서 사례자가 상속 포기신고를 했지만 가정법원으로부터 그 신고를 수리하는 심판을 받지 않은 이상 사례자가 경운기를 상속인의 지위에서 매도한다면 그것은 상속재산을 처분한 것이 되어 상속 포기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비록 경운기가 방치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매도한 것이고, 그 대금을 채무변제에 사용하려고 한 것이라 하더라도 심판을 받기 전에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을 한 경우에는 상속 포기를 주장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처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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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