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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더 좋아? 행운이 더 좋아?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 구독신청
 
산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풀밭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땅바닥에는 ‘네 잎 클로버’가 곳곳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야, 여기 네 잎 클로버가 널렸어!”
친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와! 정말이네.”
다들 쪼그리고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멀뚱멀뚱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안 따? 얼른 이리 와서 따.”
그러자 서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세 잎 클로버가 더 좋아.”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때 왜 세 잎 클로버가 좋다고 했어?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잖아. 다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좋아하던데.”
그러자 그 친구가 답했습니다.  
“나도 알아. ‘네 잎 클로버’를 따면 굉장히 좋은 일이 나에게 생길 것 같잖아. 실제 네 잎 클로버의 꽃말도 ‘행운’이고. 그런데 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게 더 좋아.”
친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왜 일상적인 게 더 좋은데?”
“‘네 잎 클로버’는 지금 내게 없는 거잖아. 내게 없는 걸 바라는 게 뭐야? 일종의 운이고, 요행이잖아. 로또 당첨 같은 거지. 클로버를 따는 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거잖아. 그런데 그런데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아주 낮아질 걸. 생각해 봐. 로또에 당첨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잖아.”
 
 
그제야 저는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친구는 다시 제게 물음을 던졌습니다.  
“너,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뭔지 알아?”
저는 친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친구가 말하더군요.
“세 잎 클로버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어. 굳이 찾으려고 애 쓸 필요도 없어. 웬만한 풀밭에 가면 다 있으니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야. 나는 행복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 가장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 숨어 있는 것. 여기저기, 곳곳에 피어 있는 것. 볼 줄 아는 눈만 있으면 어디서든 딸 수 있는 것. 나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행운’보다 ‘행복’이 더 좋아. 네 잎 클로버보다 세 잎 클로버가 더 좋아. 내게는 그게 더 값진 거니까.”
 
 
황벽 선사는 왜 스님의 뺨을 때렸을까 
 
중국 당나라 때 황벽 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임제종을 창시한 임제 선사의 스승입니다. 황벽 선사가 복건성 복주의 황벽산에 머물 때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하루는 황벽 선사가 불전에 모신 불상에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사미가 황벽 선사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부처를 구할 필요도 없고, 법을 구할 필요도 없고, 중생을 구할 필요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절을 하며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아직 비구계도 받지 못한 사미가 참 당돌하지 않나요. 그래도 저는 그런 기백이 무척 좋아보입니다. 왜냐고요? 궁금한 건 굳이 참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궁금한 건 물어야지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깨달음은 늘 문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요.  
 
그러자 사미가 다시 따지며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황벽이 말했습니다.  
“부처를 구할 필요도 없고, 법을 구할 필요도 없고, 중생을 구할 필요도 없지만, 일상의 예법이 이와 같은 일이다.”
이 말끝에 황벽 선사는 손바닥으로 사미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사미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너무 거칠지 않습니까?”
그러자 황벽 선사가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면) 여기에 무엇이 있다고 거칠다 미세하다 하는가?”
그리고 황벽 선사는 손바닥으로 다시 사미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사미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사미의 물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게 ‘공(空)’이라고 합니다. 비어 있다는 뜻이지요. 부처도 비어 있고, 법도 비어 있고, 중생도 본래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미 다 비어 있는 데, 굳이 다시 ‘비어 있음’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미는 그걸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미의 눈에는 참 이상하게 보였던 겁니다. ‘삼라만상이 다 비어 있다면, 굳이 불전에 모신 불상에 절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황벽 선사에게 도발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럼 황벽 선사는 왜 사미를 때렸을까요. ‘공(空)’에 갇혀 있는 사미를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부처를 구할 필요도 없고, 법을 구할 필요도 없고, 중생을 구할 필요도 없지만, 일상의 예법이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모든 게 비어 있는 ‘공(空)’이지만, 그 ‘공(空)’이 또한 예법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작용한다. 그게 바로 ‘색(色)’이다.” 황벽 선사는 사미에게 ‘죽어 있는 공(空)’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空)’을 일러준 겁니다. 그게 이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의 생명력이니까요.  
 
 
그래도 사미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황벽 선사에게 따졌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절을 해서 무엇을 구하려는 겁니까?” 사미는 아직도 ‘모두가 비어 있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굳이 절을 하고, 굳이 무언가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황벽은 그런 사미의 착각을 다시 한 번 때렸습니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사미를 또 때린 겁니다.  
 
모든 게 비어 있고, 아무 것도 없다면, 손바닥으로 맞을 때 아픔도 없어야지요. 그런데 사미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게 싫었던 겁니다. 그래서 도망가 버린 거죠. 사미는 왜 아픔을 느꼈을까요. 그 아픔도 비어 있는데 왜 도망을 쳤을까요? 여기에 사미가 보지 못한 ‘동전의 뒷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공(空)’의 뒷면입니다. 그게 바로 ‘아이고, 아프다!’라며 작용하는 색(色)입니다. 그런데 그 색(色)을 가만히 살펴보면 또 비어 있습니다. 그 아픔도 비어 있습니다. 그렇게 빈 채로 작용하고, 작용하면서 비어 있고, 빈 채로 또 작용하고….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어마어마한 신비입니다.  
 
 
숨은 행복 찾기-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신비를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 합니다. 히말라야의 거칠고 아찔한 설산이라든지, 아무도 살지 않는 산 속의 토굴이라든지. 뭔가 평범하지 않고, 뭔가 일상적이지 않고, 뭔가 특별한 곳에서 찾으려 합니다. 찬찬히 생각해 보세요. 그건 결국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겁니다. 다시 말해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겁니다.  
 
 
나의 주머니에 없는 것을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나의 주머니에 이미 있는 것을 꺼내기는 쉽습니다. 행복도 그렇고,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나의 주머니에 없는 ‘네 잎 클로버 찾기’가 아닙니다. 나의 일상, 나의 하루, 나의 주머니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행복찾기는 ‘세 잎 클로버 찾기’입니다. 내게 없는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내게 이미 주어져 있는 행복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불교의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세 잎 클로버 찾기입니다. 내게 이미 있는 불성(佛性)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역대 선지식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본래 부처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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