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두 정상의 기이하게 뒤바뀐 이미지
트럼프 고립이 ‘싱가포르 후’ 최대변수
트럼프가 G7 개최국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를 향해 “미 대표단에 (트뤼도가 발표한) 공동성명 내용을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트뤼도는 매우 부정직하고 약해 빠졌다”고 직격탄을 날린 건 솔직히 기자 입장에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길들여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G6 정상들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일 게다. 그러니 서로의 뒤통수를 계속해서 때린다. 이처럼 서방세계가 두 편으로 나뉘어(사실 1대6이지만)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는 불편하고 기이한 관계가 그동안 있었을까.
국제사회의 고립뿐이 아니다. 광적인 지지층 30%가 있다고는 하지만 미 국내에서도 트럼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립돼 가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의회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버티고 있지만 5개월 후 중간선거에서 예상대로 민주당이 승리하면 양상은 또 달라진다. 문제는 트럼프의 고립이 향후 북핵 문제에도 큰 변수가 될 것이란 점이다.
차기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유력한 메넨데스 민주당 외교위원회 간사는 트럼프가 넘어야 할 벽이다. 하지만 메넨데스는 ‘트럼프 스타일’에 정색, 아니 기겁을 한다. 최근에는 ▶영구적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합의 ▶모든 핵·화학·생물학 무기 해체 ▶군사 목적 우라늄 및 플루토늄 생산·농축 중단 ▶핵실험장과 연구 및 농축시설 등 핵무기 기반시설 영구해체 ▶탄도미사일 해체 5가지를 대북제재를 풀 ‘절대 조건’이라 못 박았다. 12일 북·미 회담에서 나온 결과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미 의회의 비준 동력도, 북한의 ‘담대한 조치’의 동력도 벽에 부닥치게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고립의 여파는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고립’의 대명사이던 북한 김정은은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야간시찰에서, 센토사섬 회담에서 화려하게 국제사회 무대에 데뷔했다. 그런데 정작 그를 고립에서 끄집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고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핵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트럼프의 고립이 역설적으로 북핵 해결 시계(視界)를 흐리는 최대 변수가 되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싱가포르 밤 구경에 나선 김정은의 환한 얼굴과, 그 시간 성난 분노의 트위터 올리기에 혈안이 된 트럼프의 대조적 모습은 인생도 역사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언을 다시금 음미하게 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싱가포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