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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출구전략 고민해야 할 소득주도성장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지금 청와대는 너무 크고 무겁다. 박상훈의 『청와대 정부』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490명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 백악관은 377명밖에 안 된다. 백악관의 법정 정원 450명을 훨씬 밑돌지만 미국 언론들은 “377명도 많다”고 난리다. 청와대는 워낙 몸집이 큰 데다 권력마저 집중돼 있다. 내각을 누르고 독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동종교배(同種交配)다. 특히 청와대 경제라인은 정책실장 이하 경제수석·사회수석, 그리고 경제보좌관·과학기술보좌관까지 거의 대부분 대학교수 출신이다. 그것도 진보 성향 일색이다.
 
동종교배의 문제점은 집단사고의 함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이 90%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며 선을 그어버렸다. 누군가 최저임금 효과를 잘못 입력시킨 게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의 언급 이후 소득주도성장은 성역이 돼버렸다. 더 이상 논쟁은 금지되고 반드시 완수해야할 목표가 됐다. 경제수석은 그 후유증을 가리기 위해 자영업자와 실직자를 빼고 가계소득 통계를 조작했을 정도다. 지금 청와대 경제라인은 큰 정부를 신앙 삼아 시장과 싸움도 불사하는 입장이다. 노동은 대접받아야 하고 기업은 손봐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어느 정부보다 이념적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기업들은 납작 엎드리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요즘 기업이 중시하는 두 가지를 청와대는 애써 외면한다”며 푸념한다. 그 첫째가 글로벌이다.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혈안인데 청와대는 국내만 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이익 공유제를 압박할수록 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부품 구매선을 아예 외국 중소협력업체로 돌려버리고 있다. 둘째가 미래다. 기업은 미래에 목숨을 거는데 청와대는 대기업의 과거 잘못만 파고드는 ‘적폐청산’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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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들은 투자를 매우 보수적으로 잡고 깊은 동면에 들어갔다. 생존을 위한 숨쉬기운동만 하는 분위기다. 설비투자가 최근 마이너스의 늪에 빠진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수출증가율이 세계 교역 평균증가율을 밑도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수치로 보면 수출이 늘어났지만 국제원유 값 급등으로 유화제품의 수출단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여기에다 정부만 “3% 성장 끄떡없다”고 우기지만 대부분의 경제연구기관이 올 성장률을 2.7~2.9%로 낮춰잡고 있다. 모두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들이다. 한국 경제가 침체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통계 수치는 거짓말을 못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하반기 신규 취업자를 10만 명대 후반으로 낮춰잡았다. 계획의 절반 수준이다. 사실상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 1호인 일자리 정책이 파산 직전에 몰린 것이다.  경제는 언제까지 속일 수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면서 그 후유증을 메우기 위해 또 세금을 퍼줄 태세다. 이런 땜질 요법은 오래갈 수도 없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돌아보면 경제 정책 부작용이 정치의 지각변동을 초래한 경우는 흔했다. 무리하게 대선 공약에 집착하다 몰락한 실패 사례는 차고 넘친다. 노무현 정권은 지역균형 개발에 목을 맸다. 하지만 혁신도시 토지보상비로 풀었던 87조1000억원이 한꺼번에 서울 강남 아파트로 부메랑처럼 되돌아 왔다. 강남 아파트가 폭등하자 속수무책으로 민심이 돌아섰다. 박근혜 정권 역시 대선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가 불행의 씨앗이었다. 여기에 반대한 친박 출신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삭탈관직을 당하고 야당으로 쫓겨났다. 이뿐 아니다. 2015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국회 연설로 미운털이 박혔다. 유 대표가 거세당한 뒤 박근혜의 몰락도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정책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늘 지방선거가 끝나면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의 물갈이가 예고돼 있다. 경기 침체의 문턱에 서서,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소득주도성장을 감당할 체력이 되는지부터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세계가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가 정신 살리기에 혈안인데 한국만 얼치기 실험으로 삐걱대고 있다. 더 이상 진보 학자들이 골방 책상에서 궁리한 설익은 정책으로 한국 경제를 생체 실험하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가 결코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될 수는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출구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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