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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등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

속 터진다. 하찮은 가려움인데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보다 더하다. 내 것인데도 보이지 않고 손이 닿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 등에서 일어난 일은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해도 시원하지 않다. 곁의 사람에게 부탁하면 엉뚱한 곳까지 긁어버린다. 결국 덧나서 병원에 다녀왔다. 깨알 같은 뾰루지이지만 넓적한 밴드를 붙여주더라. 결국 더 넓은 면적의 가려움을 지닌 채 며칠을 견뎌야 할 것 같다.
 
손길이 닿지 않고 보이지 않아서 등은 항상 왕따의 처지다. 다른 신체 부위들은 매일 혹은 매시간 점검을 받고 적절한 대접을 받는다. 눈은 때에 따라 안경이 마련되거나 아이섀도 칠을 받는다. 가슴은 브라로 보호받거나 풀린 단추 몇 알로 예쁨 받는다. 배는 아프면 할머니의 손이 비벼주고 멋진 장식이 달린 벨트로 치장된다. 엉덩이는 봉긋한 맵시가 유지되는지 항상 관심받는다. 하지만 등은 오직 몇 겹의 천으로 가려질 뿐이다.
 
혹여 레드카펫을 밟는 여배우나 이브닝 파티에 초대된 멋쟁이 여인들이 등 파인 의상으로 그 아름다움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어깨나 허리의 공(功)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처럼 등은 제대로 된 대접 없이도 온갖 장기를 방패처럼 보호하며 우리의 몸을 지탱해준다.
앵그르,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808년.

앵그르,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808년.

 
앵그르(Jean-Auguste Ingres, 1780~1867)가 그린 ‘발팽송(Valpinçon)의 목욕하는 여인’은 등에 대한 화가의 관심을 잘 드러낸다. 인물화에서 얼굴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항상 강조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얼굴을 희생시키는 대신 캔버스의 면적 중 상당 부분을 등에 배려한다. 관객은 여인의 얼굴 표정과 앞모습에 관한 그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열어젖힌 커튼 너머에 밋밋한 등을 드러낸 동방의 성숙한 소녀와 갑자기 대면하게 된다.
 
목욕을 마친 여인은 끈 풀어진 샌들을 벗은 채 막 뽀송뽀송한 침대에 앉아 몸을 틀어 휴식할 자리를 잡는 중이다. 높다란 창에서 내리는 빛이 터번과 어깨에 부딪혀 아래로 흩어지다 침대의 시트를 밝힌다. 왼발 넘어 샘에서 가는 물줄기가 졸졸 흐르고 커튼 뒤편에는 여전히 목욕을 즐기는 다른 여인들의 첨벙대는 소리와 그들의 대화가 알 수 없는 이방의 언어로 메아리치는 듯하다. 이 모든 것들이 매끈하고 명료하게 묘사된 여인의 등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은판사진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앵그르만큼 노출된 등을 많이 그린 미술가는 드물었다. 이후 사진의 보급과 함께 그의 후배에 해당하는 로댕이나 쿠르베에 이르러 등은 훨씬 사실적이고 생생한 단계로까지 발전해갔다. 오늘날 등은 그 자체만으로 다양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얼굴이나 매혹적인 몸의 앞부분을 능가하는 소재로 선택된다. 이때 등은 인물의 내면과 그 본질을 표현하거나 위기에 처한 인간의 현실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10년 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아기를 안은 채 숨을 거둔 엄마가 발견되었고 그 모습이 사진에 담겨 전 세계로 퍼졌다. 날아드는 날카로운 잔해들을 등으로 온전히 막아내려 했던 절박하고 처절한 모성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등 쪽 혹은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부정적인 일을 뜻한다. “등 뒤에서 손가락질한다”, “등에 칼을 꽂다”, 배신(背信), 배반(背反). 이들은 파악되지 않는 위기나 불편한 일들이다. 그 엄마는 아기를 품음으로써 자신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아이에게 그 불편한 세계의 것들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술가들이 등을 자신의 화면에 중요하게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 불편한 면마저 밝혀보자는 것이다. 이는 좀체 포착되지 못한 인간의 깊은 곳까지 살피고 헤아리는 탐구이다. 앵그르의 밝게 노출된 등을 통해 미술가들은 누구보다 앞서 인간의 이면에 관심 갖게 되었고 그것은 80여년 뒤 결실을 맺을 정신분석학의 앞선 동기가 되었다. 내 등의 가려움은 사랑해온 이웃의 그늘진 곳을 살피지 못한 태만에 씌워진 귀여운 형벌로 여전하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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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