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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비핵화 수싸움, 정상 회담 뒤가 진짜다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오늘 펼쳐질 북·미 정상회담이란 드라마가 어떻게 막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건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때 장담했던 일괄타결식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는 사실 말이다. 그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단칼에 비핵화를 이루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그러니 진짜는 이번 정상회담 후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언제, 어떻게 끝낼지를 놓고 북·미 간에 치열한 수 싸움과 지루한 합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진이 빠진 미국이 두 손 들 때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게 북한의 전략일 수 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지루한 협상 투쟁 끝에 원하는 바를 얻는 게 공산국가의 특기다. 베트남전을 끝낸 파리 평화협상이 딱 그랬다. 1968년 시작된 협상을 앞두고 미 대표단은 호텔을 일주일간 예약했다. 북베트남 측은 달랐다. 파리 근교의 낡은 성을 1년 빌렸다. 그러면서 “의자가 썩을 때까지 앉아 있겠노라”고 선언한다. 결국 협상은 5년 뒤인 1973년 끝났다.
 
이 협상에서 북베트남 측은 툭하면 미 제국주의의 병폐를 회담 시간 내내 늘어놓기 일쑤였다. 중요한 건 이게 북베트남만의 전매 특허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한술 더 뜬다. 그동안 협상장에 나온 북한 대표들 역시 회담 내내 미국을 헐뜯은 것은 물론이고 단 한마디 없이 두 시간 넘게 앉아 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챙길 만큼 챙긴 까닭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의 만남을 통해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얼마나 계속될진 모르지만, 상당 기간 미국의 공격 걱정 없이 발 쭉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동시에 대북제재를 늦출 계기를 마련한 것도 큰 수확이다. 이런 터라 북한이 굳이 서둘러 협상을 매듭지을 까닭이 없어진 것이다.
 
설사 이번 정상회담에서 굵직한 합의가 도출돼도 구체적 조치로 현실화되느냐는 전혀 다른 얘기다. 당장 앞길을 막는 건 미 상원에서의 비준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미 간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미 상원에서 비준받겠다고 공언해 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북한의 체제 보장 약속이 지켜지도록 합의 내용을 법률화하겠다는 뜻이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임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약속이 깨진 걸 본 북한으로서는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합의가 상원에서 비준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개헌을 위한 의결정족수와 같은, 쉽지 않은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측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북·미 협상을 망칠 또 다른 위험 요소도 있다. 바로 중국이다. 얼마 전 시진핑 정권의 속내를 대변하는 환구시보는 “중국이 빠진 북·미 또는 남·북·미 간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의 국익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훼방꾼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렵지도 않다. 슬며시 대북제재의 뒷문을 열어 주면 그만이다. 중국 제재가 풀리면 아쉬울 게 없어진 북한이 배짱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듯 아직도 비핵화 앞길은 여기저기가 지뢰밭이다. 그러니 이번 정상회담 한방으로 모든 게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 극락에 이르는 저승의 열두 대문 중 하나쯤 통과한 셈이랄까. 회담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갈 굳센 심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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