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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수백 년 한결같은 선율, 명품 바이올린 4대 한자리에

이태리 월드 고전 바이올린 소장전
배가 침몰하는 순간 한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다. 불안에 떨던 승객의 표정이 이내 평화로워진다.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으로 1912년 당시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밴드의 리더인 월리스 하틀리의 실제 이야기다. 이로부터 약 100년 후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은 영국에서 열린 경매장에서 90만 파운드(약 1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명품 바이올린은 아니지만 악기에 얽힌 사연과 희소성을 높이 평가해 타이타닉호 유품 중 단품으론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처럼 역사를 품은 오래된 악기는 경매장에서 수억원대 몸값을 자랑한다. 장인이 만든 불후의 명품이거나 희소성이 있으면 가치는 더 높아진다. 최근 오래된 명품 악기 구입이 이색 재테크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축하합니다! 1590만 달러(약 170억원)에 낙찰됐습니다.” 2011년 온라인 악기 경매 회사인 타리시오의 경매에서 일본 음악재단이 내놓은 바이올린이 악기로는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그 주인공은 현대 바이올린의 창시자이자 최고의 바이올린 장인으로 불리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이탈리아)가 1721년 제작한 바이올린 ‘레이디 블런트’다.
 

명품 악기가 경매장에서 ‘억’ 소리 나는 몸값을 자랑하며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악기 중에서도 크기가 작아 보관이 쉽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깊어져 소장 가치가 올라가는 바이올린이 인기다. 경매 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자료에 따르면 70년대 평균 30만 달러에 낙찰 받았던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2010년 기준으로 평균 250만 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평균 가격이 매년 14%씩 오른 셈이다. 미술품으로 세계 경매 시장을 석권한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정기적으로 고악기 경매를 개최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처음으로 고악기 경매가 실시됐다. 미술품 전문 경매 회사인 케이옥션이 프랑스의 유명 악기 제작자인 오노레 데라지가 1860년에 제작한 바이올린을 출품한 것. 추정가는 2000만~6000만원이었지만 2600만원에 낙찰됐다.
 
이처럼 미술품 경매로 유명한 경매 회사가 고바이올린 경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웬만한 미술품의 경매가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2012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갖고 있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우리나라에서 거래된 최고가 미술 경매품보다도 비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67년 당시 미국 뉴욕에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인 4만 달러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매입했다고 한다.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명품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7~18세기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수제 바이올린으로 명품 바이올린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만드는 비법을 아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스트라디바리는 94세까지 총 1116개의 바이올린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지만 전쟁 등으로 파손·손실되고 지금까지 500여 점만 남아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희소성뿐 아니라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사랑을 받는다.

 
이일춘 대표가 보관 중인 과르네리의 보증서.

이일춘 대표가 보관 중인 과르네리의 보증서.

미국의 바이올린 거장 아이작 스턴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두고 “마치 바이올린이 몸에 파고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은 “손을 대는 순간 몸에 전율이 흐른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지만 현대의 첨단 기술로도 300년 전의 수제 바이올린의 음색을 따라가지 못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외에도 17~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과르네리’ ‘아마티’ ‘과디니니’ 같은 명품 바이올린이 제작됐다. 이들 모두 희소성뿐 아니라 음색도 훌륭해 연주자에겐 ‘꿈의 악기’로 불린다. 국내외 유명 기업과 단체에서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같은 고바이올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에는 과르네리 2대와 스트라디바리우스 3대,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에는 과르네리 1대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6대 있다. 국내에는 삼성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갖고 있다. 재력이 있다면 개인이 소장할 수도 있다.
 

영미 경매장 30여 년 다니며 수집
우리나라에는 앞서 언급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뿐 아니라 이일춘 갤러리 서호 대표가 명품 바이올린 4점(과르네리·베르곤치·마치니·스토리오니)을 보유 중이다. 이 대표는 “오래된 명품 바이올린이 경매장에서 비싼 가격에 낙찰되는 것을 보고 재테크를 위해 30여 년간 미국과 영국에서 수집했다”며 “연주가에게 대여하면 임대료를 꽤 비싸게 받을 수 있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바이올린은 국내와 일본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회를 위해 일정 기간 임대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자신이 소장하는 4점의 바이올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태리 월드 고전 바이올린 소장전’을 연다. 오는 14일부터 23일까지 자신이 서울 인사동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서호에서 전시한다. 바이올린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해외에 가지 않고도 명품 바이올린을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현직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도슨트(박물관·미술관 등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처럼 각 바이올린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고 시연을 통해 소리를 들려준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전문가라면 직접 연주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전시품 미리 보기
과르네리 요셉 과르네리우스 델제수(1698~1744)의 바이올린(사진). 스트라디바리와 비견할 만하다. 저음의 울림이 크고 힘 있는 소리가 나지만 전체적으로 섬세함이 느껴지는 음색. 그가 남긴 바이올린은 170대 정도로 매우 적다.

 
베르곤치 카를로 베르곤치(1683~1747)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의 수제자로 공구와 수치, 디자인까지 이어받아 그의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의 수준에 이른다고 평가받는다.
 
마치니 마치니 조반니 파올로(1580~1630)의 바이올린. 투명하게 뻗어가는 음향 속에 우울하면서도 애절함이 깃든 감미로운 소리가 특징. 17세기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니콜라 코시미가 마치니의 바이올린을 사용했다고 한다.
 
스토리오니 스토리오니 로렌조(1751~1802)의 바이올린. 악기가 다소 길고 가운데가 넓은 것이 특징. 소리는 잘 뻗어나가고 힘이 있지만 감미로움과 애절함도 느껴진다. 
 
문의 02-732-3121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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