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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 하나로 … 1·2차 대전 때 독일군 치 떨게 한 ‘어둠의 사자’

10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을 지키는 구르카 무장경찰. [뉴스1]

10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을 지키는 구르카 무장경찰. [뉴스1]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여는 싱가포르는 제복의 나라다. 서울 면적의 1.2배인 721.5㎢의 좁은 땅에 561만 명이 몰려 사는 작은 도시국가임에도 7만1600명의 군 병력을 유지한다. 18세 이상의 싱가포르 남자는 22~24개월간 의무 복무해 병력의 80% 정도가 징집병이다. 공식명칭이 ‘싱가포르 경찰부대(The Singapore Police Force:SPF, 新加坡警察部隊)’인 경찰도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합쳐 4만2000명의 병력을 운용한다. 군인과 경찰을 합쳐 11만3000명 이상의 무장인력이 도시를 지킨다.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를 회담 장소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주요 요인이다.
 
그런 가운데 북미정상회담 관련 경호를 싱가포르 경찰 소속의 네팔 출신 구르카족 부대가 맡는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싱가포르 경찰은 왜 네팔 출신 외국인인 구르카족을 고용하는 것일까? 네팔의 한 부족인 구르카족은 1965년 싱가포르 독립 이후 계속 싱가포르 경찰에 ‘해외 취업’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찰에는 ‘구르카 경찰단(Gurkha Contingent:GC, 辜加警察團)’이라는 조직이 별도로 있어 1800명의 병력이 특수 경호·경비를 전담해 왔다. 최근엔 첨단장비와 무장·훈련을 바탕으로 대테러 임무의 선두에 서고 있다. 이들은 네팔 현지의 구르카족 청년 중에서 선발돼 고도의 특수 훈련을 받은 뒤 헌신성과 업무 적합성 심사를 통과하면 싱가포르 경찰로 임용된다.
 
왼팔에 전통 단검 쿠크리를 겹친 구르카 상징이 보인다. [뉴스1]

왼팔에 전통 단검 쿠크리를 겹친 구르카 상징이 보인다. [뉴스1]

구르카족은 200년 전 영국의 식민지 군대에서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인연을 바탕으로 지금도 영국과 옛 영국 식민지 국가의 군대와 경찰에서 활약한다. 구르카족은 1814~16년 영국-네팔(당시엔 고르카 왕국) 전쟁에서 용맹성과 전투 능력을 보여줬다. 네팔은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구르카족을 눈여겨본 영국군은 이들을 적으로 두기보다 아군으로 포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일정 병력을 직업군인으로 임용했다. 식민지 군대였던 ‘영국인도군’에 구르카족 부대를 배치했다. 1·2차 대전에 참전해 야간 경계근무를 서다 잠든 독일군의 머리를 전통 단검 쿠크리로 몰래 베어와 적진을 공포에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때문에 어둠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면서 영국인도군은 해체되게 됐다. 인도인도, 영국인도 아닌 네팔 출신의 구르카족 부대원들은 49년 4월 영국-인도-네팔 삼각 합의를 통해 인도나 영국을 선택해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을 격퇴한 임팔 전투 등에서 보여준 구르카족의 용맹성을 영국은 물론 인도도 높이 샀다. 이 때문에 구르카족 청년들은 대를 이어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0개의 구르카족 연대 중 6개가 인도군으로 가고 4개가 영국군 소속이 됐다. 인도군은 독립 뒤 설치한 1개 연대를 더해 현재 7개 연대, 39개 대대를 운영한다. 영국군에 배속된 4개 연대는 당시까지 영국 식민지이던 말라야(말레이시아의 한 부분)나 싱가포르로 전환 배치됐다. 이들은 이 지역에 근무하다 인도 독립으로 귀국한 인도인 시크족 부대를 대신해 군대와 경찰로 활동했다. 이들은 48년부터 진행되던 ‘말라야 비상사태’에 투입됐다. 말레이 공산당 산하 무장조직인 말라야 민족해방군(MNLA)이 독립을 요구하며 게릴라전을 벌인 사태다. 말레이시아 독립(57년) 이후인 60년까지 계속된 이 사태로 말레이 지역은 혼란에 휩싸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구르카족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구르카족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구르카족은 종교·민족 갈등이 심했던 싱가포르의 식민지 경찰에 배치돼 치안을 담당했다. 이들은 50년 12월 11~13일 싱가포르에서 ‘마리아 허토흐 폭동’이 발생했을 당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사건은 싱가포르 법원이 ‘체 아미나 빈트 모하마드’라는 이름으로 말레이계 무슬림 가정에서 키운 13세 소녀를 생물학적인 부모인 네덜란드계 가톨릭교도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벌어졌다. 무슬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이 어린이가 성모마리아상 앞에 무릎을 꿇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태는 종교 갈등으로 번졌다. 18명이 사망하고 173명이 부상했다. 구르카족의 헌신적인 대처 덕분에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됐다. 다민족·다종교·다문화 지역인 싱가포르에서 기독교도도 아니고 무슬림도 아닌 구르카족 경찰은 완충작용을 톡톡히 했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연방을 형성하고 있던 64년 대규모 민족 폭동이 터지면서 다종족 사회인 싱가포르에서 제3자인구르카족 경찰의 존재 필요성이 다시금 각인됐다. 그해 7월 21일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생일을 맞아 싱가포르 전역에서 무슬림인 말레이계와 중국계가 감정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은 그해 9월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계든 말레이계든 어느 한쪽에 속한 경찰이 나서면 자칫 사태가 더욱 악화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 1923~2015)는 구르카족의 규율 및 충성심과 함께 이런 요소를 고려해 싱가포르 경찰에 구르카족 경찰단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리 총리는 “중립적일 수 있는 제3의 종족인 구르카족 경찰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구르카 군인들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독립 이후 홍콩으로 갔다가 97년 7월 홍콩 회귀 이후 영국으로 이동해 현재 정예 구르카 여단에서 근무한다. 병력은 3500명 정도다. 브루나이는 영국군에서 전역한 2000여 명의 구르카족을 고용해 왕실 경호를 맡기고 있다. 영국군 구르카족 부대는 74년 키프로스 사태, 99년 코소보 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 선봉으로 투입됐다. 위험한 작전에서 항상 최전선에 선다는 구르카족의 전통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대부분 나라의 국내법과 국제법에서 외국을 위해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은 불법이다. 구르카족 부대는 프랑스 외인부대와 더불어 국제법상 특수성을 인정해 용병으로 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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